핑계대지 않은 장윤정의 ‘품격’

안진용 기자 2024. 9. 28.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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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장윤정

장윤정 씨가 가수로서의 품격을 보여줬습니다. 아니, ‘가수’보다는 ‘인간’으로서의 품격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해 보입니다.

최근 장윤정 씨의 콘서트 티켓 판매가 부진하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28일 대구에서 공연을 두 차례 진행하는데, 공연 하루 전까지 팔리지 않는 티켓이 많다는 지적이었죠. 그러면서 ‘트로트의 인기가 정점을 지났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댔죠.

트로트의 인기가 전성기 때 같지 않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2020년 ‘미스터트롯’의 성공과 더불어 ‘트로트 공화국’이라 불릴 정도로 앞다투어 유사 프로그램을 쏟아졌고, 새로운 얼굴이 발굴됐죠. 하지만 한 때 스타의 등용문으로 뜨거웠던 비(非) 연예인 오디션 ‘슈퍼스타K’, 래퍼를 선발하는 ‘쇼미더머니’, K-팝 그룹을 배출하는 ‘프로듀스101’, 댄서 경연을 앞세운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의 인기가 시들해졌듯 이는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게다가 트로트 시장은 파이가 정해져 있는데요. 아이돌 그룹을 앞세운 K-팝은 세계 무대로 눈을 돌리며 파이를 키웠지만, 트로트는 여전히 국내 시장이 주요 무대죠. 결국 새로운 스타가 등장하면 기존 스타들은 그들의 몫을 어느 정도 내어줄 수밖에 없는데요. 중요한 건, 장윤정은 이 냉혹하고 치열한 시장에서 트로트의 자존심을 지켜온 상징적인 인물이라는 겁니다.

장윤정은 1999년 ‘강변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실력파죠. 하지만 정작 그가 빛을 본 건 2004년 정규 1집 ‘어머나’를 발표하면서였는데요. 그 당시 트로트 시장은 현철·송대관·태진아·설운도 등 일명 ‘4대 천왕’이 긴 시간 시장을 쥐락펴락하던 때였죠. 하지만 장윤정이 등장하며 판도는 바뀌었습니다. ‘세미 트로트’ 시장이 부흥했고, 박현빈·홍진영 등 후배 가수들을 위한 멍석이 깔렸죠. 이후에도 장윤정은 선배 트로트 가수들에 대해 깍듯한 예의를 갖추는 동시에 몇 명 되지 않는 또래, 후배 가수들과 트로트 시장의 명맥을 이어왔습니다.

그리고 다시 20년이 흘렀는데요. 이제는 장윤정이 과거 4대 천왕의 위치에 서 있습니다. 20년 전 장윤정이 파이를 키우는 동시에 ‘내 몫’을 쟁취해야 하는 입장이었다면, 이제 장윤정은 후배들의 도전으로부터 ‘내 몫’을 지켜야 하는 입장이 됐죠. 이 때 장윤정의 선택은 후배들을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발굴’하는 것이었습니다. 최근 4∼5년 사이 트로트 오디션이 배출한 최고의 남녀 스타는 단연 임영웅·송가인인데요. 이들 모두 장윤정이 직접 뽑은 ‘새 얼굴’들이죠. 그 결과 트로트 시장과 팬덤은 크게 확대됐고, 나눠 먹을 파이의 크기가 넉넉해졌습니다. 모두가 공생할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된 셈이죠.

하지만 영원한 건 없습니다. 트로트를 향한 대중의 열정도 예전만 못하죠. 인기가 하락하고, 매출이 줄면 모두가 고민에 빠집니다. 이유를 찾기 시작하죠. 하지만 그 화살을 자신에게 돌리는 이는 드뭅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핑계를 찾는데요. 장윤정은 달랐습니다. 모든 이유와 원인을 자신에게 돌렸죠. 핑계란 없었습니다.

그는 27일 "‘모든 문제의 이유는 나에게서 찾는다’ 제가 자주 생각하고, 하는 말입니다"라며 "트로트의 열풍이 식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공연 티켓 값이 문제의 이유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제 인기가 예전만 못해진 것이 분명한 이유입니다"라고 밝혔습니다.

‘말이 씨가 된다’고 하죠. 장윤정은 이를 경계했습니다. 나 자신의 문제일 뿐, 트로트의 문제가 공연 티켓의 문제가 아님을 강조했죠. 이 매체는 "OOO, OOO 들을 제외하고 트로트 가수 콘서트가 사전에 완전 매진을 기록하기는 어렵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지적했는데요. 이는 타 장르 가수도 매한가지입니다. 매진 행렬을 이어가는 이들은 손에 꼽죠. 빈자리 있는 수준을 넘어, 아예 콘서트를 연다는 것은 꿈도 못꾸는 K-팝 그룹도 부지기수죠. 그런데 마치 트로트 만의 문제인 것으로 치부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티켓값도 마찬가지인데요. 장윤정의 공연 관람료는 다른 가수들과 비교해 별다른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왜 비싸다고 생각할까요? 트로트여서일까요? 그건 장르에 대한 폄훼이자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아닐까요?

하지만 장윤정은 감정적으로 대처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랜만에 하는 공연, 설레는 마음으로 연습을 한 번 더 하고 짐을 싸서 출발할 채비를 마쳤습니다"라면서 "누군가에게는 감동과 울림, 추억으로 기억될 무대 만들도록 언제나처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약속했죠.

장윤정에게도 무명의 시절이 있었습니다. 배고파 죽을 것 같아서 라면 하나로 3일을 버텼고, "소금을 넣어서 국물을 엄청 많이 만들고 면은 주먹만큼 넣어서 먹었다. 그때 저에게 가장 큰 도움은 밥을 사주는 거였다"고 고백한 바 있죠. 시골 장터 공연을 마다않고 서너 명의 관객들과 눈을 맞추며 노래할 때입니다. 장윤정은 그 때를 떠올린 듯 해당 보도에 대해 "인원이 적을수록 한 분 한 분 눈 더 마주치며 노래하겠습니다"라는 자기다짐으로 대응했는데요. 무대 위 장윤정에게는 빈 객석보다 그를 보러 온 팬들의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올 것이 자명합니다.

장윤정은 지난해 12월 독감으로 인해 예정됐던 부산 콘서트를 연기한 적이 있는데요. 컨디션 난조로 팬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고 판단한 장윤정은 공연을 미뤘고 지난 3월 다시금 부산 팬들 앞에 섰습니다. 개인적인 이유로 연기한 것이기 때문에 대관료를 비롯해 섭외한 스태프 비용 모두 장윤정이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하지만 장윤정에게는 ‘돈’보다는 그를 보러 기꺼이 발걸음을 한 팬들을 위한 ‘공연의 질’, 그리고 "다시 돌아오겠다"는 팬들과의 약속이 더 중요했습니다.

장윤정은 그동안 ‘어머나’ 외에도 숱한 히트곡을 발표하며 대중을 웃게 하고, 또 울렸습니다. 과연 장윤정 콘서트의 빈 좌석을 세며 ‘트로트의 위기’를 논하는 기사 한 줄이, 장윤정의 노래 한 줄보다 더 대중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더 가치 있는지 자못 궁금합니다.

그리고 장윤정은 28일, 대구 팬들과 만나러 갔습니다. ‘관객이 몇 명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관객이 만족했냐?’가 중요하죠.

나이가 들수록 설렘을 잃어간다고 하죠. 그런데 장윤정은 "설레는 마음으로 연습을 한 번 더 했다"고 말했는데요. 어쩌면 이 날 대구 팬들은 절치부심한 장윤정의 역대 최고 공연을 만날 지도 모릅니다.

안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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