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가장 어두운 밤을 통과하고 있는 이들에게, 《새벽의 모든》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2024. 9. 2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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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선사하는, 조심스러운 확신의 격려

(시사저널=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각자의 어려움을 가진 이들이 서로의 고통을 알아본다. 나아가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서로 도울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이것은 《새벽의 모든》을 설명하는 손쉬운 요약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지닌 진정한 색채와 온도를 알리기에는 한참 부족한 표현에 불과하다.

《새벽의 모든》은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2020),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2023)을 통해 일본 영화의 새로운 세대로 주목받는 미야케 쇼 감독의 신작이다. 기본적인 서사는 세오 마이코가 쓴 동명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하지만, 오직 영화 매체만이 선택하고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 어떤 영화는 러닝타임이 흐르는 동안 작고 가느다란 빛으로 촘촘하게 쪼개져 관객 각자의 몸과 마음에 확실하게 스며든다. 인생의 긴 시간이야 장담할 수 없지만 당장 며칠간은 그 온기를 지니고 일상을 버틸 수 있게 하는 조심스러운 확신의 격려. 가령, 《새벽의 모든》에는 그런 힘이 존재한다.

영화 《새벽의 모든》 포스터 ⓒ디오시네마 제공

이해하진 못해도 도울 수는 있는

후지사와(카미시라이시 모네)는 매달 PMS, 즉 월경 전 증후군 때문에 일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약을 먹으면 부작용에 시달리고, 좀처럼 억제되지 않는 짜증은 늘 의도치 않게 난처한 상황을 부른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회사에서도 증상이 발현돼 도망치듯 그만둔 이후, 후지사와는 아동용 과학 키트를 만드는 회사인 '쿠리타 과학'에 다니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극심한 공황장애를 앓는 야마조에(마쓰무라 호쿠토)를 만난다. 두 사람은 어느덧 서로의 고충을 이해하고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개인의 고통은 오직 그만의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온전히 이해받을 수 없는 타자의 통증과 불안에 다름 아니다. 미야케 쇼 감독은 그 지점을 이미 잘 파악하고 있는 듯 보인다. 영화의 초점은 두 사람의 발병 원인과 극복에 있지 않다. 어쩌면 현대사회의 많은 질병이 그렇듯이 계기는 명확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보다 중요한 건, 그 고통을 안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상을 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 그 자체다. 요컨대 《새벽의 모든》은 질병의 극복이 아니라 '안고 살아가는 법'에 귀 기울이려는 영화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은 무엇인가. 우리에게는 무엇이 필요한가.

인물들에게 드라마틱한 사건이 벌어지는 단 며칠이 아닌 수년간의 시간과 계절 변화를 포착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사려는 남다르다. 미야케 쇼 감독은 후지사와와 야마조에의 증상을 극적 클라이맥스로 활용하는 대신, 긴 시간에 걸쳐 이들에게 일어나는 변화들을 좇는다. 이는 자신이 창조한 인물에게 걸맞은 시간을 선물하고 들여다보려는 정성스러운 책임감의 표명이기도 하다. 죽을병은 아니지만 죽을 만큼 힘든 질병을 앓는 이들이라는 점에서 인물 묘사에는 한층 섬세한 접근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알려졌다간 사회적 구성원으로서의 결격 사유가 될 만한 비밀을 공유한 후지사와와 야마조에는 서서히 가까워진다.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필요한 도움을 주고받는 선에서 이뤄진다. 젊은 남녀가 주인공이지만 정해진 수순처럼 로맨스 관계로 엮이지도 않는다. 이동수단을 전혀 이용하지 못해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까지 홀로 집에서 해결하는 야마조에를 위해 후지사와가 이발을 돕고 쓰지 않는 자전거를 선물한다든가, PMS 증상으로 짜증을 억누를 수 없는 후지사와를 위해 야마조에가 눈치껏 자리를 마련해 주는 식이다.

영화는 관계의 필요를 긍정하면서도 적극적인 연대를 호소하지는 않는다. 대신 그저 연결을 감지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상대를 돕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남녀 간에 우정이 성립하네 아니네 하잖아요. 상대에 따라서도 다르고 정답도 없고 전 관심 없어요. 하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를 알았어요. 남녀 간이든 대하기 힘든 사람이든 도와줄 수는 있다는 겁니다." 야마조에의 말이다.

영화 《새벽의 모든》 스틸컷 ⓒ디오시네마 제공
영화 《새벽의 모든》 스틸컷 ⓒ디오시네마 제공

인간, 하나의 우주를 이루는 각각의 별

두 사람이 일하는 쿠리타 과학은 야심과는 거리가 먼 회사다. 회사 대표의 입버릇처럼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모든 것이 이뤄지는 이 회사는 누군가에게는 지루한 사무실일지 모르지만, 들여다볼수록 따뜻한 이상향의 공간처럼 보인다. 지역 공동체에 활짝 열려 있고, 각자를 존중하면서도 필요할 때 느슨한 연대를 이룬다. 기술의 발전이 모두를 연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소외와 단절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는 사회 분위기 안에서, 성과 대신 무사한 하루를 기원하는 풍경은 소박하지만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이 회사가 만드는 이동식 천체 투영기, 즉 '플라네타륨'은 원작에는 없는 설정이다. 쿠리타 과학의 일원들은 플라네타륨 이벤트를 통해 돔형 스크린에 별과 행성의 움직임을 띄워 관람객들에게 보여주고 해설을 덧붙인다. 실제의 하늘을 보는 일에서 멀어진 현대인들에게 밤하늘을 대체해 보여주는 것은, 공황장애 때문에 극장에 갈 수 없어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을 들으며 대리만족하는 야마조에의 상황과도 조응하는 면이 있다.

《새벽의 모든》은 밤하늘의 별도 주목하지만, 그것을 올려다보는 인간을 더 아름답게 바라본다. 별과 별 사이의 거리, 별의 빛이 지구에 당도하기까지를 추측해 보며 겪어본 적 없는 거대한 시간을 감지하는 사람들. 플라네타륨은 기실 하나의 우주를 이루고 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빛나는 이들 한 명 한 명의 의미와,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별자리로 연결된 이들을 은유하는 좋은 설정이다.

한편으로는 어둠 속에서 수많은 사람이 같은 곳을 바라보며 고양감을 느낀다는 점에서, 영화관의 장소성과 의미를 더 깊게 생각하게 만드는 면이 있다. 실제로 극장에서 《새벽의 모든》 속 등장인물들과 함께 플라네타륨을 경험하는 순간은 다른 어떤 장면보다 벅찬 감흥을 안긴다. 각자가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 통과하는 어둠은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을, 밤은 한없이 두렵지만 그 시간이 있기에 어둠 너머 무한한 세상을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상상이 불가한 인생의 시간 안에서 우리는 느슨하게 하나의 별자리가 된다. 쿠리타 과학의 대표는 수십 년 전 동생을 잃었고, 야마조에의 전 직장 상사는 누나를 잃었다. 

그리고 그들은 상실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그 우연한 인연은 야마조에를 쿠리타 과학으로 이끌었고, 그곳에서 야마조에와 후지사와는 서로의 별자리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후지사와와 야마조에는 수십 년 전 사망한 쿠리타의 동생이 남긴 메모를 통해 플라네타륨의 해설을 완성한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서로가 서로의 북극성이 되어 길을 찾는 시간. "기쁨으로 가득 찬 날도 슬픔에 잠긴 날도, 지구가 움직이는 한 반드시 끝난다"는 사실은 다가오는 새벽을 또 한 번 믿고 싶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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