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여유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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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브러햄 링컨은 유머에 진심이었다.
링컨은 소리 내어 유머 책을 읽어 주었다.
당과 국가가 맞닥뜨린 운명의 순간에, 링컨은 시시한 유머 책을 읽으며 낄낄대다니! 하지만 링컨은 웃음에 진심이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링컨이 유머를 좋아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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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브러햄 링컨은 유머에 진심이었다. 물론 대통령 일도 열심이긴 했다. 대통령에 당선된 얼마 뒤 남북전쟁이 터졌다. 전쟁이 한창일 때 첫 번째 임기가 끝났다. 정권이 넘어가면 노예 해방이 흐지부지되고 미국이 남북 분단 될 수도 있던 상황. ‘확실한 대선 승리를 위해 후보를 링컨 말고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자’는 주장도 있었다(조 바이든 생각난다). 그래도 링컨은 재선에 도전했다.
1864년 11월,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사람들은 개표 결과가 궁금해 국방부 건물로 모여들었다. 링컨은 저녁 늦게 나타났다. 손에는 책을 들고 있었다. 안절부절못하는 사람들을 향해 링컨은 말했다. “페트롤륨 내스비가 쓴 책을 읽어봤소?” 페트롤륨 베수비어스 내스비는 그때 유행하던 유머 작가.
링컨은 소리 내어 유머 책을 읽어 주었다. 어떤 사람은 옆방으로 건너가 분통을 터뜨렸다. 당과 국가가 맞닥뜨린 운명의 순간에, 링컨은 시시한 유머 책을 읽으며 낄낄대다니! 하지만 링컨은 웃음에 진심이었다. 그날만이 아니었다. 국무회의 때도 내스비의 유머 책을 들고 와 장관들에게 큰 소리로 읽어주곤 하였던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링컨이 유머를 좋아했다는 이야기다. 링컨의 웃음 코드가 궁금해 나도 내스비의 글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내스비에 대해 알고 나는 놀랐다. 링컨이라는 사람이 달라 보였다. 내스비는 단순한 유머 작가가 아니었다. 북부에 살았지만 남부에 동조했고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였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분노가 가득. 링컨을 매섭게 비판했다. 신문에 자주 투고했는데, 철자도 엉망진창, 논리도 뒤죽박죽. 이 사람의 신문 글을 묶어 책이 나왔거니와, 링컨은 이 책을 즐겨 읽었다. 비웃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사실 페트롤륨 베수비어스 내스비는 웃기기 위해 만들어진 가상의 인물이었다. 이름부터 우스꽝스럽다. 페트롤륨은 ‘석유’, 베수비어스는 유명한 화산의 이름.
내스비를 지어낸 사람은 데이비드 로스 로크라는 북부의 언론인. 노예 제도 폐지론자였고, 링컨의 열성 지지자. 자기와 정치적으로 입장이 다른, ‘남부에 동조하는 사람들’을 웃음거리로 만들기 위해, 일부러 반대 생각을 가진 인물을 지어냈다. 일부러 철자를 틀리고 일부러 앞뒤 안 맞는 이야기를 했다.
링컨은 둘로 쪼개진 미국을 다시 통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진지한 연설을 할 때는 자신의 비판 세력에게도 관대했던 대통령. 하지만 링컨의 웃음 코드는 공격적이었다. 아무려나 자정이 지나 개표 결과가 윤곽이 잡혔다. 링컨의 재선이 확실. 그제서야 링컨은 유머 책을 덮고 늦은 저녁으로 구운 굴을 먹었다. 남북전쟁은 이듬해 북부의 승리로 끝났다.
글·그림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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