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게 강한 것, 힘을 빼고 몸의 움직임을 읽어라 [ESC]
힘으로만 이기려다 제풀에 꺾여
필요한 동작 절로 나올 수 있게
힘의 크기·방향 가늠하고 익혀야
몇년 전 힘 빼기에 관한 책이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어떤 일에 힘을 빼고 임한다는 건 가볍고 여유 있고 유연하고 대응이 빠른 것을 뜻한다. 반대인 힘주기는 어떤가? 한마디로 말해서 촌스러운 짓이다. 힘을 주면 무겁고 서툴고 뻣뻣하고 미숙해진다.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하고 반응 속도가 느려지며 피로가 쌓이기도 한다.
그래서 모두가 힘주기가 아닌 힘 빼기를 찬양한다. 이제 힘 빼기는 미덕을 넘어 절대 선으로 통한다. 운동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힘을 빼고 가볍게 움직이는 건 거의 모든 운동에 적용되는 불문율이며 주짓수라고 예외가 아니다. 아니, 주짓수야말로 수련 중에 가장 빈번하게 듣는 잔소리가 “힘을 빼고 부드럽게 움직여라”다.
그러나 주짓수 수련자가 도달하기에 가장 어려운 경지 또한 ‘힘 빼고 부드럽게 움직이기’이다. 신이 있어야 무신론도 있는 것처럼 힘 빼기는 힘주기라는 전제조건이 있어야만 성립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짓수 도장의 고만고만한 초보들은 대부분 힘으로 싸운다. 한쪽이 힘을 쓰면 나머지 한쪽도 힘으로 맞설 수밖에 없다. 또 숙련은 너무 어렵고 오래 걸리므로 당장에 믿을 거라곤 힘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힘을 뺀 채로 싸울 것인가? 상대의 힘과 맞부딪치지 않고 겨룰 수 있는가? 있는 힘껏 내 몸을 짓누르는 압박감은 또 어떻고? 나에게 힘을 빼라는 가르침은 ‘돈을 아껴라’, ‘저녁 7시 이후에는 먹지 말라’처럼 머리로는 알지만 행동으로 옮기기 어려운, 지나치게 이상적인 지침에 지나지 않았다. 구체적인 실행 방법은 실마리도 보이지 않는.
화려하고 멋진 기술만 좇았는데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는 게 힘주기가 카드 돌려막기 같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며 장기적으로는 성장을 방해하는 악습인 건 분명하다. 힘을 주면 동작과 동작이 매끄럽게 연결되지 못하고 정작 힘을 주고 싶을 때는 지쳐서 힘을 쓸 수 없다. 더욱이 이젠 마냥 초보라고 우길 수도 없는 처지다. 더 늦기 전에 힘 빼기의 기술을 익혀야 했고 나는 오래된 고민에 답을 줄 수 있는 권위자들을 찾아 나섰다.
첫번째 권위자는 중세 수도승처럼 주짓수에 모든 걸 바친 블랙 벨트였다. 초창기에 주짓수를 받아들인 이들이 거의 그렇듯 그도 주짓수는 물론 유도와 특공무술 등을 두루 섭렵한 실력자다. 어떻게 힘을 빼고 싸울 수 있느냐고 묻는 어리석은 블루 벨트에게 그는 위로가 될 법한 첫마디를 건넸다. “나도 아직 몰라.” 다음에 이어진 말은 ‘힘을 줘봐야 힘을 뺄 수 있다’였다. 힘주기라면 이미 갖은 몸부림을 다 익혔다고 하자 다른 답을 주었다.
저절로 움직이는 법을 터득하라고. 흔히 ‘드릴’이라고 하는, 단순한 움직임을 여러번 반복하는 훈련법을 익혀서 특정 기술을 쓸 때 필요한 움직임이 저절로 나올 수 있도록 몸을 자동화하라는 것이다. 스위치만 누르면 작동하는 가전제품처럼 저절로 움직이는 몸은 그렇게 많은 힘이 필요하지 않다.
덧붙여서 그는 웜업, 드릴, 기술 연습, 스파링, 쿨다운이라는 주짓수 수련의 다섯 단계 중에 어느 것 하나 빼놓지 않고 수행해야 힘을 제대로 쓸 수 있다고 했다. 그의 말에 웜업과 쿨다운은 무시하고 드릴은 지루하다고 등한시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화려하고 멋져 보이는 기술만 좇느라 정작 중요한 건 그냥 흘려보낸 셈이다.
끝으로 몸이 부위별로 어떻게 움직이는지 인식하는 경험도 필요하다. 움직임을 인식하는 운동이라고 하면 요가, 소마틱스(움직임을 의식하고 통제함으로써 몸을 회복하는 운동법) 등을 꼽을 수 있다. 문제는 정지한 상태에서 몸을 인식하는 이러한 운동과 주짓수의 스파링은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스파링은 그 자체로 역동이다.
그래서 가장 정적인 역동, 쉽게 말해서 무술계의 요가라고 할 수 있는 태극권의 권위자를 찾아갔다. 부드러운 원을 그리면서 느리게 움직이는 게 특징인 태극권을 가르치는 이는 놀랍게도 도시 한복판에 세워진 선원을 지키는 스님이었다.(격투기와 독신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걸까?)
느릿한 동작 속에 큰 힘이
태극권의 극히 일부분을 체험하며 얻은 인상은 힘을 빼고 느리게 움직임으로써 균형을 추구하는 무술이라는 거다. 스님은 안정적인 자세로 상대의 힘을 흘려보내고 그렇게 흘려보낸 힘을 타고 반격하길 반복했다. 순간 작은 힘으로도 큰 파장을 만들어내, 느리기만 한 동작 속 어디에 저렇게 큰 힘이 숨어 있었나 의아할 정도였다.
그러면서 내가 힘을 너무 단순하게 본다는 걸 깨달았다. 상대의 힘보다 더 큰 힘으로 이기려고만 했던 나에게 스님은 힘에는 강약이 존재한다고 일러주었다. 태극권은 강함이 약함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강약의 상대성을 이해하는 무술이다.
예를 들어서 가위바위보 게임에서 가장 강한 것은 무엇인가? 애초에 절대적으로 강한 건 없다. 가위, 바위, 보는 모두 상대적이다. 그 돌고 도는 상대성 속에서 상대가 어떤 기술을 구사할지 빠르게 알아차리고 대응하는 게 최선이다. 그러자면 힘을 빼고 온몸의 감각을 곤두세워 나에게 작용하는 힘의 크기를 가늠하고 그 힘이 어디로 향할지 예측해야 한다.
힘 빼기의 비결을 알아내고 싶었는데 결과적으로 더 큰 혼란에 빠졌다. 혹을 떼려다가 혹을 두개나 더 붙였다고나 할까. 그렇지만 나에게도 성장의 문턱을 넘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내야 할 때가 왔다. 반복적이고 지루한 훈련을 견디고 복잡한 상대성을 깨우쳐야 할 때가.
여전히 힘 빼기를 잘해낼 자신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망하기엔 이르다. 주짓수를 떠나서 생각해보면 나는 이미 힘 빼기에 익숙하다. 초등부 글쓰기 대회에서 크고 작은 상을 수집할 때부터 나는 글에서 재미를 확보하려면, 그리고 내가 쓴 글을 남에게 읽히려면 힘부터 빼야 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때 나는 얼마나 날렵했던가. 과감하게 무의식으로 뛰어들어 과거의 파편을 건져 올리고 무의미해 보이는 사건들을 놓치지 않고 포착해냈다. 한순간 휘발돼 사라지는 재미를 붙잡기 위해서라면 두려움마저도 뛰어넘었다. 힘 빼기의 기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발현되지 않은 채 몸 어딘가에 내재돼 있을 거라고 나를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양민영 작가
사회적기업 운동친구의 대표이며 ‘운동하는 여자’를 썼다. 페미니즘과 여성의 운동에 관한 콘텐츠를 만들고, 못 하는 일에 도전하기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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