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낚시 도전…“더워서 물고기가 입맛 없는 걸까” [ESC]

한겨레 2024. 9. 28.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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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백패킹 전북 군산 관리도
추석 연휴 섬에서 가족 4명 1박
9월 폭염 속 낚시에 나섰지만
아쉬움 안고 돌아와 노을 속 캠핑
전북 군산 관리도에서의 인생 첫 낚시, 바다와 마주선 8살 아들과 3살 딸.

“서진아, 서하야, 일어날 시간이야. 배 시간 맞춰가려면 곧 출발해야 해.” 아내의 목소리에 눈을 뜬 8살 아들이 기지개를 켜며 벽시계를 바라봤다. 출발 시간이 임박했음을 깨달은 아들은 여전히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여동생의 이름을 나지막이 부르며 흔들어본다. 뒤이어 3살 동생도 눈을 끔벅이며 한 바퀴 몸을 굴리고는 고개를 들었다. 각자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선 아이들은 나란히 카시트에 앉아 재잘거리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 텀블러에 담아 온 커피를 홀짝이던 조수석의 아내마저 잠들자, 차 안에는 고요함이 감돌았다. 혹시 모를 교통체증을 염려하며 서둘렀지만, 추석을 사흘 앞둔 토요일 아침의 도로는 여유로웠다. 정신없이 회사와 집을 오갔던 지난 한 주를 돌아보며 상념에 젖은 채 운전에 몰두하다 보니 어느덧 목적지에 가까웠다.

고군산군도 63개 섬 중 하나

오전 9시30분, 전북 군산 ‘장자도 차도선 선착장’에 도착했다. 선착장 앞 좁은 매표소 안에는 여행객과 귀성객이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차근차근 줄이 줄어드는가 싶었는데, 내 앞에서 한바탕 실랑이가 일었다. 일행이 9명인 어르신들이었는데, 그들의 차량(카니발)은 선적이 안 된다는 게 문제였다. 하체가 높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나 1t 트럭만 선적할 수 있다는 선사 직원의 설명에 한 여성이 ‘어떻게든 짐을 이고 지고 들어가 보자’며 일행을 진정시켰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어디 들어가세요?” 매표소 직원의 물음에 난 신분증을 내밀며 답했다. “관리도 4명이요. ‘가보고 싶은 섬’(한국해운조합의 여객선 예매 누리집)에서 오전 10시40분, 첫 배를 예매했어요.”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군산시 고군산군도(유인도 16개, 무인도 47개로 이뤄진 섬의 군락) 중 하나인 관리도다. 곶리도라고도 불리는 관리도에는 섬 주민들이 운영하는 캠핑장이 있다. 백패커들과 미니멀캠퍼들이 즐겨 찾는 이곳은 1991년 폐교된 ‘선유도 초등학교 관리도 분교’가 있던 자리에 주민소득 사업의 일환으로 2017년 조성된 캠핑장이다. 장자도를 출발해 관리도와 방축도, 명도, 말도를 기항하는 ‘고군산카훼리호’에 몸을 실었다. 장자도 차도선 선착장에서 관리도 선착장은 불과 3㎞ 거리. 육중한 엔진음을 뽐내며 장자도를 출발한 차도선이 관리도에 닿기까지는 불과 1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여느 백패킹과 달리 이번 여행은 아이들과 섬마을의 먹거리를 즐겨볼 요량으로 식음료를 챙겨오지 않았다. 지역경제 활성화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섬 내 식당과 상점을 이용할 계획이었다. 배에서 내린 우린 해안선을 따라 걸었다. 듬성듬성 놓인 민박과 펜션 입간판을 지나쳐 마을 끝자락에 다다르자, 유리문을 밀고 나온 빨간 앞치마를 두른 여성이 나와 둘째에게 인사를 건넸다. “귀여운 꼬마 아가씨 배낭엔 뭐가 들었을까? 몇 살이에요?” 둘째를 보니 28개월 된 손녀 생각이 난다는 중년 여성은 작은 가게와 식당을 운영하는 섬 주민이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저녁으로 먹을 만한 식사거리가 있는지 물었는데, 동그란 안경을 쓴 중년 여성은 “연일 이어지는 더운 날씨 탓에 식재료가 얼마 없다”며 미안해했다. “오늘 가능한 건 여기 수조에 있는 게 전부예요”라며 덮개를 걷는 순간 첫째와 둘째가 수조를 가리키며 외쳤다. “와, 문어다! 아빠 저기 문어가 있어! 나 문어 먹고 싶어 아빠!”, “나두 나두!” 아이들의 반응에 여성은 다행이라는 듯 웃으며 문어를 들어 보였고, 그렇게 이날의 저녁 메뉴는 결정되었다.

‘캠핑장’ 이정표를 따라 마을회관 뒤편의 언덕을 올랐다. 200m 남짓한 짧은 언덕이지만, 9월의 폭염은 녹록지 않았다. “일찍 오셨네요! 예약자분 성함이?” 우리 가족이 하룻밤 머무를 자리는 해안 협곡 너머로 바다를 조망하는 데크사이트다. 예약 정보를 확인한 캠핑장 관리인은 우리를 캠프사이트로 안내하며 말을 이었다. “지금 여긴 한창 더울 시간이니 배낭만 내려놓고 낙조 전망대에 올라가 봐요. 거긴 그늘도 있고 바람이 살랑살랑 부니께, 아이들이랑 거기서 좀 쉬다가 내려와서 텐트를 설치해도 좋을 거예요.” 언덕 위 새하얀 지붕의 전망대에 올라서자, 망망대해가 눈앞에 펼쳐졌다. 먼바다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은 선선했고, 찜통더위에 지쳐가던 아이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해식애 너머로 펼쳐진 붉은 하늘

관리도 캠핑장에서의 일출.

“아빠, 우리 오늘 낚시하는 거지?” 얼마 전부터 낚시를 해보고 싶다던 아들이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엔 낚시를 하기로 약속했다. 8살 인생 첫 낚시 도전이다. 캠프사이트에 텐트와 타프 설치를 마친 우리는 작은 낚시 가방을 손에 들고 방파제로 내려갔다. “그런데, 아빠는 물고기 잡을 줄 알아? 엄마는?” 아들이 물었다. 아내는 자신이 ‘못하는 것 빼고는 다 할 줄 아는데, 안타깝게도 낚시는 못하는 것’이라며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고, 나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실 나 역시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어깨너머로 배웠던 민물낚시 경험이 전부였다. 아들과의 낚시 약속은 사실 꽤 큰 용기를 낸 도전이었던 셈이었다.

오래된 기억을 더듬으며 낚싯대에 묶음추를 꿰었고, 낚싯바늘에 미끼를 거는 데까지 성공했다. “퐁당”하는 소리와 함께 바다에 힘껏 던져 넣은 낚싯대를 아들과 딸에게 하나씩 건넸다.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낚싯대를 받아 든 첫째와 둘째는 나의 신호에 맞춰 릴을 조금씩 풀고 감기를 반복하며 제법 그럴듯한 낚시꾼의 모습으로 바다와 마주 섰다. 하지만, 바다는 쉽게 응하지 않았다. “아빠, 물고기들이 왜 먹이를 안 먹지? 날이 더워서 입맛이 없는 걸까?” 릴을 거두었다가 다시 던져 넣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입질은 없었다. “아무래도 지금은 물고기들이 배가 고프지 않은가 봐. 아쉽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우리 시원한 거 먹으러 갈까? 아이스크림 어때?” 아이스크림이라는 말에 둘째는 바로 눈을 반짝이며 낚싯대를 내게 내밀었고, 첫째는 못내 아쉬운 듯 낚시가 드리워진 바다 한가운데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소다 맛 쭈쭈바와 콜라 맛 쭈쭈바를 입에 물고 캠프사이트로 돌아온 우리는 옹기종기 둘러앉아 카드게임을 펼쳤다. 손에 쥔 카드를 모두 내려놓으면 이기는 게임인데, 늘 깍두기 신세였던 둘째도 이번엔 1인분 몫을 자청했다. 아직 숫자를 읽고 반응하는 속도는 느리지만, 열정만큼은 딸이 나보다 한 수 위다. 카드게임에 열중하는 사이 좌우로 높이 솟은 해식애 너머로 펼쳐진 하늘은 서서히 붉은 빛으로 물들어 갔고, 바다 위에는 금빛 물결이 일렁였다. 일몰의 감상에 빠져들던 찰나, 아들이 자신의 카드가 한 장 남았음을 외쳤다. “원-카드!” 이번 게임은 아들의 승리다. 입이 삐죽 나온 둘째에게 다음 게임은 오빠를 이겨보자며 토닥여줬고, 잔잔하게 저물어가는 노을과 함께 관리도의 밤은 깊어갔다.

글∙사진 박준형 작가

평일에는 세종시와 여의도를 오가며 밥벌이를, 주말에는 아이와 함께 배낭을 메고 전국의 산과 섬을 누비고 있다. 더 많은 아이들이 자연으로 한 걸음 나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책 ‘오늘도 아이와 산으로 갑니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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