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군위로 귀촌한 30대 부부... 대한민국 최고 '촌캉스' 꿈꾼다

김광원 2024. 9. 2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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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군위군 화산마을에 귀촌한 김태현 신수빈 부부 
산촌서 '자연닮은 치유농장' 운영하며 자연 만끽 
"'치유정원' 만들어서 텃밭 체험도 할 수 있게"
김태현(왼쪽) 신수빈 부부가 집 마당에서 다정하게 웃고 있다. 아래로 군위댐이 보인다. 김광원 기자

"아침에 닭 울음에 잠을 깨고, 이마를 찧을 듯 가까이 떠 있는 별을 보다 잠자리에 드는 일상이 꿈만 같아요."

서른아홉 동갑내기 김태현·신수빈 부부는 2021~2022년 경기 파주에서 대구 군위군 화산마을로 귀촌했다. 신씨는 2021년 8월에, 김씨는 이듬해 2월에 들어왔다. 그때만 하더라도 완전 귀촌은 아니었다. 신씨는 임상병리사로 일하다가 병원에 사표를 썼지만, 대기업에 다니던 김씨는 2년 동안 육아 휴직계를 냈다. 일단 살아보고 나서 결정하기로 한 것이다. 2년 남짓 산골 생활을 경험한 후 부부는 귀촌으로 마음을 굳혔다.

터전은 신씨의 어머니가 먼저 닦아 놓았다. 어머니는 2016년에 화산마을에 들어와 텃밭을 일구다 2019년부터 '시골로 떠나는 바캉스'를 의미하는 '촌캉스' 사업을 시작했다. 손님들이 하룻밤 묵어갈 수 있도록 전망 좋은 곳에 오두막집을 지었다. 어머니가 터를 닦는 사이에 화산마을이 유명해졌다. 주민들 덕분이었다. 군위군농업기술센터에서 '정보화 농업인 프로그램'에 참여한 주민들이 마을 풍경을 촬영해 인터넷에 올린 것이 계기였다. 마을 사람들만 공유하던 절경이 바깥 세상에 알려졌다.

지금은 세 사람이 '촌캉스' 사업에 매달리고 있다. 각자 역할을 분담했다. 김씨는 숲을 통한 치유에 집중하고 있다. 숙소 뒤편에 치유 정원을 조성하는 중이다. 손님들이 조경수와 꽃들 사이를 산책하면서 명상을 즐기고, 텃밭에 키우는 채소를 직접 수확해 먹을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신씨는 꽃을 이용한 마음 치유를 맡았다. 어머니는 음식 치유를 담당하고 있다. 이른바 약선요리다.

집에서 키우는 닭과 개도 나름의 역할이 있다. 닭은 평화로운 '농가 풍경'의 방점을 찍는 역할이다. 밤에는 오소리 등 야생 동물들 때문에 닭장에 넣지만 낮에는 마당에 풀어놓는다. 꿩만큼이나 자유로운 닭들이다. 자유의 맛을 만끽한 녀석들은 새벽마다 '어서 꺼내 달라'고 아우성을 친다. 새벽 4시에 닭장 문을 열어주면 울음을 뚝 그친다. 처음에는 뒷마당만 맴돌다가 최근 앞마당까지 진출했다. 신씨는 "조만간 '새 가슴'을 극복하고 손님들 숙소까지 진출할 것 같다"면서 "용감한 닭에 등극하기 직전"이라고 소개했다.

부부가 키우는 개인 '복실이'는 사연이 있다. 복실이는 원래 군위 읍내에 있는 농업기술센터 사무실 앞에 묶여 있던 개다. 사람만 보면 짖어대는 통에 문제 강아지로 찍혔는데, 지금 지내는 곳으로 온 뒤로 성격이 180도 바뀌었다. 마당 한가운데 앉아 느긋하게 낮잠을 즐긴다. 예민한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손님들이 산책을 나서면 앞장서서 길을 안내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손님들과 함께 풍차전망대를 다녀온다. '자연닮은 치유농장'의 마스코트다. 김씨는 "닭도 곁을 내줄 만큼 온순해서 손님들이 다들 신기해 한다"면서 "치유의 의미를 몸소 보여주는 동물 친구"라고 말했다.

복실이. 군위 읍내에서 지낼 때는 사람만 보면 짖어대는 '문제 강아지'였지만 이곳으로 온 뒤로 조용하고 온순하기 그지없는 개로 바뀌었다. 김광원 기자
'자연닮은 치유농장'에는 닭들이 마당을 거닌다. 옛날 시골집 풍경 그대로다. 김광원 기자

부부에 따르면 손님들도 복실이처럼 '시골집' 분위기에 점점 동화된다. '치유농장'을 처음 방문한 이들은 짐을 한가득 등에 지고 대문을 들어선다. '도시의 일상'을 산속으로 옮겨오는 것이다. 방문 횟수가 늘어날수록 짐이 줄어든다. 김씨는 "어느 분의 말마따나 복작복작 사느라 마음에 굳은살처럼 박인 욕심, 미련, 고집을 하나둘 내려놓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복실이처럼 손님들도 이것저것 내려놓으며 원래의 자기 마음을 찾아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바쁘게 사느라 잃어버린 '내 마음'을요."

'마음 찾기'는 어렵지 않다. 천천히 걷기와 깊이 들여다보기가 마음을 찾는 비결이다. 부부가 실천하고 있는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신씨는 커튼에 나뭇잎 그림자가 비치면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감상한다. 바쁘게 또 효율성만 따지고 살 때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던 것들이다. 김씨는 새벽에 일어나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이 커튼 모양으로 퍼지는 모습에 감탄하며 산책한다. 그야말로 '자연 치유'다. 김씨는 삶이 달라졌다. 무엇보다 평소에 즐기던 독서의 방식이 변했다. 산책을 하듯 꼼꼼하게 읽고 풍경을 보듯 깊이 생각한다. 김씨의 말에 따르면 이 또한 '나'와 '내 마음'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살아지는 대로 살면 '사라진다'고 하잖아요. '나'를 잃어버리는 거죠. 이곳에 살면서 제 자신이 새벽 산책과 천천히 읽고 깊이 생각하기를 즐기고, 좋은 것들을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대기업에서 바쁘게 살아가던 때는 미처 몰랐던 저의 모습입니다. 복실이처럼 '나'의 원래 모습을 찾은 거죠. 여기에 오는 분들 모두 살아지는 대로 살다가 사라진 '나', 그리고 '내 마음'을 찾아서 돌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김광원 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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