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딱따구리' 보호종 목록서 제외…환경단체 반발 이유는
"생태변화 모니터링할 수 있는 종인데…조사근거 부실"
(서울=연합뉴스) 홍준석 기자 = 녹색 정장을 맞춰 입은 숲속의 건축가 청딱따구리.
한반도 전역에서 비교적 흔하게 볼 수 있는 텃새다.
몸길이는 30㎝ 정도로 한국에 사는 딱따구리류 중에서는 큰 편이다.
청딱따구리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오색딱따구리, 큰오색딱따구리, 쇠딱따구리와 함께 서울시 보호 야생생물 목록에 올라가 있었다.
그러나 서울시는 지난 26일 시보에 고시한 보호 야생생물 목록에서 청딱따구리를 제외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환경단체가 서울시에 '재검토'를 촉구하는 등 반발하고 있다.
서울시는 청딱따구리를 보호 목록에서 제외한 이유를 "서울시 전역에서 출현하는 일반종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개체수가 늘었다'는 것인데, 정작 개체수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등 근거가 부실하다는 것이 환경단체 주장이다.
딱다구리보전회 등 98개 환경단체는 성명에서 "서울시 결정에 과학적 근거가 부실하고 딱따구리의 생태적 지위와 역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2007년 청딱따구리를 보호 야생생물로 지정할 당시 서울시는 '환경변화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종'이라고 설명했는데, 단순히 개체수가 많아졌다는 이유로 이를 무시하고 일반종으로 변경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서울시가 보호 목록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참고한 서울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1996년부터 작년까지 서울에서 청딱따구리는 182개 지점에 출현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 한 자릿수에 불과했던 출현지점은 2022년 기준 17개로 늘어났다.
하지만 정밀한 개체군 밀도 조사를 실시한 것은 아니다.
보고서는 "서울시는 보호 야생생물만을 대상으로 모니터링을 하고 있지 않다"며 "한강생태계 조사, 생태경관보전지역 정밀변화 관찰 등 정기 조사와 시민단체 연계 생물종 조사 등 비정기 조사로 서식 여부 등을 확인하는 정도"라고 밝혔다.
관련 조례에 따르면 멸종위기에 있거나 개체수가 감소하는 종, 일정 지역에 국한해 서식해 보호할 필요가 있는 종, 학술적·경제적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종, 이외에 시가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는 종이 보호 야생생물로 지정된다.
동네 하천에서 쉽게 볼 수 있지만 선조들로부터 사랑받은 진귀한 새라는 이유로 원앙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처럼, 멸종위기에 처하지 않았더라도 서울 생태계를 상징하는 깃대종(지역의 생태나 지리적 특성을 대표하는 종)이라면 보호 야생생물로 지정될 수 있는 것이다.
서울시는 2000년 노루, 오색딱따구리, 두꺼비, 황복, 넓적사슴벌레, 서울오갈피 등 35종을 보호 야생생물로 처음 지정하고 2007년 보호종을 49종으로 늘려 관리해왔는데, 이번에 그간의 기후와 생태계 변화를 반영해 55종을 재지정했다.
딱따구리류를 단순히 개체수로만 평가해선 안 된다는 것도 환경단체가 반발하는 이유다.
나무에 구멍을 뚫어 집을 짓기 때문에 울창한 숲이 있어야 번식할 수 있고, 주로 나무에 해로운 벌레를 먹기 때문에 숲을 건강하게 만들며, 나무구멍은 다른 새와 동물에게도 터전이 된다.
서울시가 2007년 청딱따구리, 큰오색딱따구리, 청딱따구리를 보호 야생생물로 추가 지정할 때 "환경변화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종"이라고 평가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왔다.
전문가들은 보호 야생생물 목록 제외는 정밀한 개체군 조사에 근거하는 것이 좋다고 제언한다.
최창용 서울대 산림과학부 교수는 "보호종을 지정하는 근본 목적은 보호종에서 해제시키는 데 있다"면서도 "보호종 해제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면 목록을 재개정할 때 정확한 자료와 근거를 포함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서울시가 어떤 기준에 따라 보호종을 지정·해제했는지가 중요하다"며 "야생생물법에 따라 모든 야생생물이 법적 보호를 받는 만큼 보호종 해제가 곧 청딱따구리를 보호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honk0216@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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