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석 ‘두 개 국가론’은 김정은 체제의 존속 보장해 주자는 신호 [쓴소리 곧은 소리]

최경희 SAND연구소 대표·도쿄대 정치학 박사 2024. 9. 28. 10: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때 임종석의 동료가 탈북민을 “배신자”라고 불렀던 사건과 같은 맥락
한국에 ‘두 개 국가’ 추종세력 공식화되면 김정은에게 내정 간섭 빌미 줄 것

(시사저널=최경희 SAND연구소 대표·도쿄대 정치학 박사)

최근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남북한의 '두 개 국가론'을 주장하며 '통일하지 맙시다'라고 언급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견해를 넘어 반헌법적이며 반민족적 발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국토 분단의 고통과 민족 분열이 가져온 이산가족들의 아픔, 탈북민들의 처절한 현실, 그리고 북한 주민들의 억압된 삶을 외면한 무책임한 발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임종석의 발언이 특히 충격적인 이유는 그의 이력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 대한민국 국가 운영의 핵심 책임자였던 전직 대통령비서실장이 이러한 주장을 펼친다는 것은, 통일을 염원하는 많은 국민에게 큰 실망감을 안길 수밖에 없다. 더욱이 학생 시절부터 민족을 앞세워 통일운동에 깊이 관여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임 전 실장의 돌연한 입장 변화는 이해하기 어렵다

'두 개 국가론'은 북한 김정은 정권에 체제의 독립성과 존속을 보장하는 신호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2023년 1월 발행된 김일성종합대학학보(법률학)에 따르면, 북한은 자신들의 국가체제를 '영원한 수령으로 높이 모신 수령영생의 국가정치체제'이자 '국무위원회 중추의 국가정치체제'로 정의하고 있다. 이는 김일성과 김정일을 영원한 지도자로 받들며, 김정은의 유일적 영도 실현을 보장하는 체제임을 명시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9월20일 백두산 장군봉에서 손을 맞잡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영토 축소' 개헌은 北 주민의 희망 뺏는 것

임종석의 '두 개 국가론'은 이러한 북한의 세습 독재체제를 정당화하고, 그 존속을 인정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는 북한 주민들의 인권 유린과 극심한 경제난의 현실을 외면하는 행위이며, 동시에 한때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대표 주자였던 임종석 자신의 과거 신념과도 모순되는 태도다.

임종석의 '두 개 국가론'은 북한을 하나의 정상 국가로 인정함으로써, 탈북민들의 존재 의미를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는 2018년 10월 남북고위급회담에서 탈북민 기자를 판문점 취재팀에서 배제했던 사건이나, 임종석의 동료였던 임수경 전 국회의원이 탈북민들을 '배신자'로 칭했던 사건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태도는 북한의 세습체제를 정상적인 정권으로 인식하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탈출한 탈북민들의 고통과 노력을 무시하는 처사다. 탈북민들에게 통일과 북한의 변화는 정치적 이슈가 아닌 목숨이 달린 삶 자체의 문제다. 따라서 '두 개 국가론'은 이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분단의 아픔을 안고 있는 이산가족들의 희망마저 꺾는 반민족적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두 개 국가론'은 국가 형성의 3요소인 국토, 국민, 주권을 부정하는 태도로 볼 수 있다. 이는 대한민국 영토의 절반인 북한 지역을 포기하고, 북한 주민들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간주할 수 있다. 이는 사실상 분단의 고착화를 시도하는 것이며, 그들로부터 '자유의 희망'을 뺏는 행위다.

현재 대한민국은 주변국과 모두 외교관계를 수립했지만, 북한은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만 유지하고 있으며 한국·미국·일본과는 여전히 미수교 상태다. 북한의 경제적 발전과 체제 안정에 가장 중요한 주요 국가들과의 관계가 단절된 상황에서, 남한의 도움 없이는 어떠한 발전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은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따라서 통일을 포기하고 남북이 국가 대 국가로서 적대관계를 지속하겠다는 입장은 한반도 영구 분단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며, 이는 동북아 지역의 안정과 평화에도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두 개 국가론'은 사실상 통일 포기론이자 영토 축소론으로,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와 목표를 포기하는 행위로 간주할 수 있다. 이는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중요하게 여겨져온 민족주의적 통일 담론을 크게 후퇴시키며, 국론 분열을 더욱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

김정은 정권은 실용주의적 측면에서 열세를 모면하기 위해 두 개 국가 공존을 시도할 수 있지만, 이를 국내에서 수용한다면 오히려 김정은과 '두 개 국가론'을 추종하는 세력이 존재한다는 구도가 형성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김정은 정권에 한국의 내정에 간섭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할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임종석의 발언은 과거 정권의 대북 유화정책인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과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탈북을 선언한 북한 주민 2명을 판문점을 통해 돌려보낸 사건, 서해에서 북한군에 의해 우리 국민이 피살된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점, 남북연락사무소 폭파에도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 점 등은 당시 국가 기능의 상실로 평가될 수 있다.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목표가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흐리게 했던 것은 아닌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임종석의 '두 개 국가론' 발언은 과거 정책의 한계와 문제점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

임종석의 '두 개 국가론' 발언은 한국 사회에 통일에 대한 새로운 논의를 촉발시키고 있다. 1994년 채택된 3단계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30년이 지난 현재 빠르게 변화하는 국제 정세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통일 담론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北 수령영생 체제 있는 한 '적대 해소' 안 돼

그러나 이는 결코 통일을 포기하거나 북한의 독재체제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찾아 나가야 한다. 통일은 그저 기다려야 하는 존재일까, 아니면 적극적으로 통일을 위해 우리가 무언가를 해야 할까? 민족의 미래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 그것을 찾는 것이 곧 새로운 통일 담론이 가야 하는 방향이라 할 수 있겠다.

분명한 것은 북한이 현재의 수령영생체제를 고집하는 한, 그들을 독립국가로 인정한다고 해서 남북한의 적대적 관계가 해소되거나 북한 주민의 삶이 개선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을 영구적으로 존속시키려는 시도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며,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협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두 개 국가론'과 같은 현실 도피적 주장에 현혹되지 말고 좀 더 현실적이고 실효성 있는 통일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정부, 학계, 시민사회 등 다양한 주체들의 참여와 토론이며, 국제사회와의 협력도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를 통해 북한 주민들의 인권과 자유를 보장하고, 한반도 전체의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통일 앞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진정한 태도이자 자세라 할 수 있겠다.       

최경희 SAND연구소 대표·도쿄대 정치학 박사

최경희는 누구

필자 최경희는 2001년 탈북했다. 도쿄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사단법인 SAND연구소 대표로 있다. SAND는 South And North Development의 약자이며 연구소는 남북한 출신 학자들이 동북아 국제 질서와 북한 정세를 분석하고 통일에 관한 실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톈진외대 겸임교수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