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감 보선, 진보·보수 1 대 1 빅매치 성사됐다
[주간경향] 기사 마감을 앞둔 지난 9월 26일 오후 1시 30분. 김재홍 서울시교육감 예비후보(전 서울디지털대 총장)가 전화를 걸어왔다.
“나하고 정근식 예비후보하고 (오후) 2시 30분에 중대발표를 하려고 합니다.”
6일 전인 20일 그는 ‘서울민주진보교육감 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 탈퇴를 선언했다. 단일후보 선출을 위한 규칙이 공정하지 않고 지금처럼 ‘진보 분열’로 선거가 치러지면 필패라는 주장이었다.
“상대는 지금 조전혁으로 다 뭉쳤는데 내가 이게 도저히 안 되겠다 싶기도 하고요. 원래 내 목표는…”
김 예비후보는 추진위 밖에 있는 진보성향 독자 출마 후보 4명을 다 끌어모아 추진위에서 지난 9월 25일 선출한 정근식 예비후보와 단일화를 해 ‘민주진보 단일후보’ 이름을 쓰는 것이 목표였다고 말했다.
단일화 ‘의지’는 다른 독자 출마 후보 쪽도 비슷하다. 지난 9월 25일 통화한 조기숙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정치공학적 단일화는 하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보수 쪽이) 조전혁으로 단일화하는 것을 보고 ‘그렇게 되면 곤란하지 않겠나’로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처음 예상처럼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이 후보가 됐다면 곽 전 교육감과 조전혁 후보 사이의 ‘중간지대’에서 출마할 계획이었는데 보수 후보단일화로 상황이 바뀐 거로 본다는 것이다. 조기숙 명예교수가 준비했던 캐치프레이즈는 “좌도 우도 아닌 흔들리지 않는 균형 잡힌 교육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조전혁을 막는 것이 최선의 목표”라고 말했다.
9월 27일 조기숙 교수는 최종적으로 출마를 접었다. 조 교수는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지지자들 덕분에 선관위에 출마 서류는 제출했지만 순전히 제 결단으로 불출마를 결정했다”라며 “과거 여러 차례 거절했던 제가 이번에 출마를 고민하게 된 이유는 조전혁후보가 보수 단일후보로 이번 선거에서 이긴다면 서울 교육의 미래가 암담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보수 단일화에 이어 진보 역시 단일화 성사
조전혁 후보를 사실상 단일후보로 선출한 보수 쪽과 달리 진보 쪽은 상황이 복잡했었다.
‘뚜껑을 열어보지 않으면 성적표를 알 수 없는’ 진보성향 독자 출마 후보가 더 있었다. 추진위에 참여하지 않은 방재석 예비후보(중앙대 안성캠퍼스 부총장)가 대표적이다. 교수이자 소설가인 방 예비후보는 방현석이라는 필명으로 더 유명하다. 최근작은 홍범도 일대기를 다룬 <범도>다. 그는 윤석열 정권의 역사 왜곡 비판을 핵심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웠다.
애초 방 예비후보 측 핵심관계자는 “진보 후보 단일화 기구가 제시한 참여 시점이 지난 9월 4일까지였는데 방 후보는 지난 9월 12일 최종 결단하고 출마 선언했다. 추진위에서 단일화가 이뤄졌으니 다른 사람들은 출마를 다 접으라고 한다면 폭력 아닌가”라며 “후보등록은 당연히 한다”고 밝혔다. 보궐선거일은 오는 10월 16일이다. 투표지 인쇄 시기를 고려하면 10월 6일 전에는 단일화가 이뤄져야 한다. 이 핵심관계자는 “너무 늦어지면 시너지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어 늦어도 9월 말까지는 단일화를 해야 한다”고 전망했었다.
그런데 후보등록일인 9월 26일 오후가 되자 상황은 급변했다. 방 예비후보도 정근식 예비후보 지지 선언을 하며 불출마를 택했다. 이날 오후 오마이뉴스 유튜브 방송에 출연한 방 예비후보는 “반드시 승리해 서울의 아이들 단 한 명도 뉴라이트 교과서로 공부하지 않도록 해달라”라며 “정 예비후보를 범민주 단일후보로 최종 추대하고 지지하자”고 말했다. 이에 앞서 방 후보 측 핵심인사는 보수 단일후보로 확정된 조전혁 후보 개인의 자질 문제가 선거에서 핵심이슈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조전혁이라는 개인 캐릭터가 교육 수장을 맡을 만한 캐릭터가 아니다. 그런 부분은 본 선거에 들어가면 다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미 보수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조 후보의 과거 고등학교 재학 시절 학교 폭력 가해 전력이 불거졌다.
주간경향은 윤석열 정부 출범 한 달 뒤 치러진 2022년 6월 서울시교육감 선거에 출마한 조전혁 당시 후보를 인터뷰했다. 기사에는 다루지 않았지만, 첫 질문이 이 학교 폭력 전력 문제였다. 인터뷰에서 조 후보는 가해 사실을 순순히 인정했다.
“그게 고3 때 일이다. 상대 학부모로서는 그렇지 않아도 중요한 시기인데 내 아이가 맞아서 상처 났으면 속상할 일인데 학교 측에서 나를 옹호하는 식으로 나오니 반발하며 일이 커진 것이다. 학교가 나를 감싸다가 나에게는 오히려 독이 된 것이다.”
조 후보는 같은 인터뷰에서 “교사들이 노동조합을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며 “다만 아이들에게 자신의 이념을 주입하는 교육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주장”이라고도 밝혔다.
‘조희연 3선’ 때와 이번 보궐이 다른 이유
2014년 이후 세 차례에 걸친 교육감 선거는 모두 ‘보수 분열·진보 단일후보’ 구도로 치러졌고, 조희연 전 교육감이 3선에 성공했다. 보수 진영에서 보기에는 자신들의 분열로 조 전 교육감에게 어부지리를 안긴 선거들이었다. 이번은 다르다.
보수는 단일화된 반면, 진보는 일단 단일후보를 만들었지만, 분열의 불씨가 남아 있다.
“지난 10여 년간 교육감 선거를 보면 서울·부산·경기는 교수 출신이 아니면 유권자 선택을 받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지속해왔는데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교사 출신의 행정 경험이 풍부한 사람도 교육감을 충분히 잘 해낼 수 있다’라는 의욕을 가지고 여러 후보가 예비후보로 나섰던 것은 사실이다.”
이번 보궐선거에서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왜 후보가 난립했냐는 질문에 대한 김정명신 공공시민교육연구소 소장의 설명이다.
2009년 첫 직선제 경기도교육감으로 당선된 김상곤 전 교육감 캠프에서 무상급식·혁신학교 정책을 만들었던 정치권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산술적으로는 보수가 앞서는 것 같지만 구도에서는 진보가 유리하다. 이번 교육감 보궐선거는 윤석열 정권이 너무 못하기 때문에 ‘탄핵까지는 아니지만, 투표장에 나와 심판하는’ 선거가 될 거로 본다. 진보에서 예비후보가 처음에 12명 넘게 등록한 것도 그 이유다. 어찌 됐든 자신이 후보가 되면 당선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번에 당선되면 2026년 선거 재선도 무난할 가능성이 크다. 설사 후보가 안 되더라도 이번에 이름을 알리면 1년 8개월 뒤 다시 나오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는 이번 교육감 보궐은 과거와 다른 양상일 것이라고도 전망했다.
“과거 서울시교육감 선거의 경우 보수가 분열했기 때문에 인물론과 정책·비전을 따지기 전에 구도에서 이미 끝난 선거였다. 이번은 다르다.”
후보 등록 뒤 10월 본선에 들어가면 인물, 정책, 비전 등 모든 영역에서 정반대인 진보·보수 후보 사이에 치열한 싸움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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