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있지만 ‘특혜’는 없다? 축협·홍명보의 원영적 사고

김찬호 기자 2024. 9. 28.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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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문체위 현안질의 출석…홍 감독 선임 문제 공회전 거듭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앞)과 홍명보 남자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지난 9월 24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했다./연합뉴스

[주간경향] “불공정하다거나 특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력강화위원장을 교체하면서 임명장이라든지 행정적 절차가 없었다는 걸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다.”

홍명보 한국남자 축구대표팀 감독이 지난 9월 2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현안질의에 출석해 한 말들이다. 해당 발언들을 연결하면 감독 선임 과정에서 ‘절차적 문제’는 있지만 ‘불공정’이나 ‘특혜’는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엄연히 존재하는 절차적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할지에 관해서도 설명이 필요하다. 이날 국회에는 홍 감독뿐만 아니라 정몽규 대한축구협회(KFA) 회장, 이임생 KFA 기술총괄이사, 정해성 전 KFA 전력강화위원장 등도 출석했다. 모두 홍 감독 선임 과정에 크든 작든 개입한 인물들이다. 홍 감독을 포함해 이들 중 이를 명확하게 설명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대신 ‘월드컵에서 좋은 결과를 내야 한다’(홍 감독), ‘역사가 평가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정 회장), ‘좋은 잔디에서 경기를 보여줄 수 있게 도와달라’(이 기술총괄이사)는 식의 동문서답만 이어졌다.

국회에서 확인된 한국 축구 현실

이날 현안 질의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 25분까지 진행됐다. 점심시간을 포함해 장장 10시간 넘게 질의가 이어졌지만 홍 감독 선임을 둘러싼 문제는 공회전만 거듭했다. 절차상 문제를 지적하면 ‘문제없다고 생각한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식이었다. 결론은 낼 수 없었지만 이 과정에서 두 가지가 분명해졌다. 하나는 ‘KFA 조직의 허술함’이다. 이날 현안질의에서 때아닌 ‘빵집’이 주목을 받았다. 이 기술총괄이사가 지난 7월 5일 밤 11시, 홍 감독을 그의 집 근처 빵집 같은 데서 만나 감독직을 제안했다고 밝히면서다. 그는 밤늦은 시각 홍 감독과 단둘이 빵집에서 만나 ‘2026 북중미 월드컵’을 이끌 한국남자 축구대표팀 감독을 확정했다는 설명을 거리낌 없이 했다. “홍명보 감독님이 알고 지내시는 지인이라 문을 열 수 있었다”라는 부연설명까지 덧붙였다. 언제, 어디서, 누가 한국 축구를 이끌 감독을 선임하든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KFA의 아마추어식 운영 행태를 잘 보여준다.

또 다른 하나는 축구인들의 ‘위기감 부재’다. 모든 스포츠의 기본은 ‘공정한 경쟁’이다. 승부조작이나 선수 선발 관련 비리가 종목의 흥망과 직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홍 감독은 지난 7월 13일 대표팀 감독으로 공식 부임했다. 이후 2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그를 둘러싼 ‘공정성’ 문제가 반복적으로 제기됐다. 그때마다 홍 감독은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겠다”고 답했다. 공정성에 대한 여론의 우려를 결과로 덮을 수 있다는 인식이다. 그런데 한국 인기 스포츠들의 부침을 보면, 국제대회 성적과는 관계가 없는 경우가 더 많다.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인 프로야구는 국제대회 부진을 딛고 올해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야구팬들을 떠나게 한 판정의 공정성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자동투구판정시스템(ABS) 등을 발 빠르게 도입하며 몰입도를 키운 결과다. 한국 축구는 프로야구와 정확히 반대로 가는 중이다. 축구 대표팀 감독 선임 논란이 시작된 지 2개월이 넘었다.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 해임 시점부터 계산하면 장장 7개월째다. 이제 선수들의 경기력보다 홍 감독의 전술, 경기 종료 후 결과에 대한 변명이 더 관심을 받는 상황이다. 축구를 좋아하는 누리꾼들이 모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조차 “감독과 싸워야 하는 상황이 지겹다”, “대표팀 경기 직관부터 보이콧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온다. 홍 감독이나 정 회장이 한국 축구를 위한다면 미래의 불확실한 결과나 말할 때가 아니라는 의미다.

공정성 문제와 봉사하는 마음

홍 감독이 인정한 절차 문제는 지난 6월 21일 개최된 ‘제10차 전력강화위원회’와 6월 30일 열린 ‘온라인 회의’ 사이에서 발생했다. 온라인 회의는 국회 현안질의 과정에서 ‘제11차 전력강화위원회’로 불렸지만 사실 해당 회의에 차수를 붙일 수 있는지부터 애매하다. 실제로 KFA가 지난 7월 22일 홈페이지에 밝힌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을 설명 드립니다’에서는 ‘제10차 전력강화위원회’ 이후 열린 회의에 따로 11차라는 차수를 붙이지 않았다. 두 시기 사이에는 정해성 위원장의 돌발 사퇴(6월 28일)가 있었다. 위원장 부재 상황에서 열린 온라인 회의에는 기존 10명의 위원 중 단 5명만이 참여했다. 이를 정상적 전력강회위원회로 인정하면 정당성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럼에도 해당 온라인 회의가 어떤 전력강화위원회 회의보다 중대한 결정을 했다는 점이다. KFA에 따르면, 이날 회의에서 이 기술총괄이사에게 감독 추천과 관련한 절차 진행 ‘위임’이 참여 위원 만장일치로 결정됐다. 이에 따라 이 기술총괄이사가 지난 7월 5일 ‘빵집 면담’으로 홍 감독을 최종 감독 후보로 결정했다. 결국 홍 감독 선임 과정이 정당했느냐는 해당 온라인 회의의 성격과 이날 결정한 사안이 절차를 지킨 것이냐를 따져봐야 한다.

KFA는 의원들에게 해당 온라인 회의를 제11차 전력강화위원회 회의라고 알렸다. 뒤에 해당 회의가 정상적이었는지 쟁점이 되자 ‘실수’라고 말이 바뀌었다. 사유가 어떻든 온라인 회의는 정상적인 전력강회위원회 회의가 아니란 것이 확인된다. 축구 국가대표팀 운영규정 제12조의 1항에 따르면 “각급 대표팀 감독 및 코치진은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 또는 기술발전위원회의 추천으로 이사회가 선임한다”고 나온다. 이에 따라 일개 온라인 회의는 홍 감독 추천을 결정할 수 없다. 이로 인해 권한 ‘위임’ 이야기가 나온다. 제10차 회의에서 최종 후보 3명이 추려졌고, 정해성 위원장에게 최종 후보를 추천할 전권이 ‘위임’됐다. 하지만 정 위원장이 돌연 사퇴한다. 온라인 회의는 해당 전권을 이 총괄이사에게 ‘재위임’했다. KFA의 감독 선임 과정 설명 자료는 당시 상황을 “참석 위원 전원은 이임생 기술총괄이사에게 감독 추천과 관련한 절차의 진행을 ‘위임’하는 데 동의”라고 적었다.

대한축구협회(KFA)가 지난 7월 22일 공개한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을 설명 드립니다’는 제목의 설명문. 해당 설명문에는 제11차 전력강회위원회라는 단어가 없다. 대신 온라인 회의에서 ‘이임생 기술총괄이사에게 위임’이라는 내용이 나온다./KFA 홈페이지 갈무리

이를 두고 강유정·양문석 의원 등은 “기술총괄이사가 전력강화위원회 업무를 겸임하는 것은 정관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그러자 KFA는 언론을 통해 “이 이사는 전력강화위원장 자리를 이어받는 게 아니라 감독 선임 최종 업무를 ‘대신’한 것”이라고 설명을 바꾼다. 지난 7월, KFA가 밝힌 자료에 명시된 ‘위임’이 ‘대신’으로 용어가 바뀐 것이다. 이 기술총괄이사가 위원장 업무를 위임했든 대신했든 그가 업무를 겸임했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게다가 이 기술총괄이사는 정 위원장이 위임받은 권한을 그대로 이어받아 사용했다. 이는 권한의 ‘재위임’이다. “문제가 지적될 때마다 사후 정당화하려다 보니 사용하는 단어만 자꾸 바뀐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KFA는 바뀔 수 있을까

문화체육관광부는 오는 10월 2일 해당 문제 등을 포함해 KFA의 감독 선임 과정에 대한 중간감사 결과를 발표한다. 감사 결과가 정 회장이나 홍 감독 사퇴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감독 거취 문제는 축구협회가 결정해야 할 사항”이라며 선을 그었다.

홍 감독은 사퇴할 의사가 없다. 그의 발언을 살펴보면 선임 과정의 문제와 자신의 감독직 수행은 별개라는 인식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실제로 그는 국회에 출석해 “나는 전력강화위원회에서 1순위로 올려놨기 때문에 감독직을 받았다. (온라인 회의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즉 자신은 감독 후보 1순위라는 KFA 제안에 ‘봉사하는 마음’으로 응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KFA 관계자들의 독단과 프로축구 시즌이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 소속팀 울산 HD를 떠날 만큼 투철한 홍 감독의 일방적 ‘봉사정신’에 축구팬들은 지쳐간다. 국가대표팀 경기에서 울려 퍼지는 “홍명보 나가, 정몽규 나가”라는 구호는 이들의 심정을 보여준다. 분노의 단계적 과정은 그 끝을 ‘무관심’이라고 밝히고 있다. 관객 없는 스포츠는 존재할 수 없다. 정 회장, 홍 감독 등이 정말 한국 축구를 위한다면 “사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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