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탐·인]시그림 작가 황신애.."시는 아픈 분들께 바치는 달팽이의 기도!"(1편)

김옥조 2024. 9. 28.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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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C는 기획시리즈로 [예·탐·인](예술을 탐한 인생)을 차례로 연재합니다.

이 특집 기사는 동시대 예술가의 시각으로 바라본 인간과 삶, 세상의 이야기를 역사와 예술의 관점에서 따라갑니다.

다발성경화증을 앓고 있는 한 시인이 내년 봄을 목표로 시그림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어 화제입니다.

2014년 여름부터 화가가 되고 싶었던 어릴 적 꿈을 되새겨 노트에 4B 연필과 지우개를 이용해 작은 인물화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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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난치병 딛고 시와 그림 창작 몰두
3만 번 획과 선 그려 한 달에 한 점 완성
25편 준비해 내년 '시그림 전시회' 예정
"뒷걸음질은 지형 때문..절망과 상관없어"

[예·탐·인]시그림 작가 황신애.."시는 아픈 분들께 바치는 달팽이의 기도!"(1편)

KBC는 기획시리즈로 [예·탐·인](예술을 탐한 인생)을 차례로 연재합니다. 이 특집 기사는 동시대 예술가의 시각으로 바라본 인간과 삶, 세상의 이야기를 역사와 예술의 관점에서 따라갑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과 소통을 기대합니다. <편집자 주>

▲시그림작가 황신애씨는 "힘든 분들에게 희망의 메신지를 전해주는 시를 써야 한다"고 믿고 있다. 사진은 왼손으로 글쓰기를 하고 있는 황신애 작가의 모습

"난 여러 개의 짐을 지고 산을 오르는 소 같으다/목적지인 파란 풀밭에 다다를 것 같은데, 오를 때마다/가파른 운명의 자갈길을 만나 자꾸만 미끄러지는/마치 끊임없이 벼랑으로 바위를 굴려 올리는 시지프스처럼//벼랑 아래로 미끄러지다가/카프카의 음성을 들었다/뒷걸음치는 것은 지형 때문이지/절망과는 상관없는 거라고//"(황신애 시 '소의 하루' 중에서)

다발성경화증을 앓고 있는 한 시인이 내년 봄을 목표로 시그림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어 화제입니다.

주인공은 시인 황신애 씨. 사지 마비로 왼쪽 손가락의 기능만 10% 정도 살아있을 정도의 희귀난치병을 앓고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황신애 작가의 모습

활동보조사와 이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함께 지내는 그녀는 컴퓨터를 켜는 것도, 그림을 그리기 위해 책상 위에 왼팔을 옮겨놓는 것도 혼자서는 힘듭니다.

시구를 머릿속에 완전히 외워놓았다가, 왼손 검지손가락으로 오랜 시간을 들여 자판을 두드려 시를 씁니다.

다발성경화증 판정을 받고 재발과 치료를 거듭한 10년의 시간이 흐른 후 중증장애가 됐습니다.

▲황신애 작가의 그림은 3만 번 연필을 움직여야 작품이 완성된다. 사진은 작업 중인 황신애 작가

2014년 여름부터 화가가 되고 싶었던 어릴 적 꿈을 되새겨 노트에 4B 연필과 지우개를 이용해 작은 인물화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연필을 꽉 쥘 수도 없는 무력증과 떨림 때문에 물감이나 붓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구상하고 나서 많게는 3만 번의 획과 선을 그어 스케치를 완성하고 짧은 글을 씁니다. 한 작품을 그려나가는 데 대략 한 달 정도 걸립니다.

25편 정도를 준비해 내년 봄에는 시화 전시회를 열 계획입니다. 목표를 향해 매일매일 희망의 항해를 시작합니다.
◇ 수필 공모 당선한 꿈 많던 문학소녀
▲황신애 작가의 시집 '모로' 표지

황신애 시인의 고향은 완도군 완도읍 장좌리. 장보고의 청해진이 설치됐던 곳입니다.

호남예술제에 그림을 출품해 상을 받기도 했고, '새농민' 잡지 수필 공모에 당선되기도 했던 꿈 많던 문학소녀였습니다.

화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2남 1녀 형제들은 부모님이 일찍 올라가시자 광주로 올라왔습니다.

언니 황연수 씨는 열심히 독공해 판소리 명창이 됐습니다.

▲황신애 작가는 왼손 검지 손가락이나 입에 문 연필로 자판을 눌러 시를 쓴다. 사진은 컴퓨터 앞에 앉는 황신애 작가

직장에 다니기도 하고 결혼해 딸 둘을 낳고 남편의 사업을 도우며 평범한 주부로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2003년 갑자기 쓰러졌고, 2004년 '다발성경화증'이라는 판정을 받게 됐습니다.

당시 전국에서 10만 명에 2명 꼴로 발병하고 전국에 5백여 명의 환자가 있다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 평범한 주부로 살며 '다발성경화증' 판정
▲황신애 작가가 시집 '모로'와 표지 도록 '파란 달팽이'를 보여주며 환하게 웃고 있다

다발성경화증은 뇌와 척수의 촉삭 부분이 손상을 입어서 탈수 진행과 흉터 형성으로 이어지는 염증 질환입니다.

원인과 치료법을 알 수 없고 신경 장애로 운동 장애 및 마비가 일어나며 재발이 반복되면서 통증에 시달리는 병입니다.

뼈와 관절이 녹는 것 같은 뜨거운 통증이 계속되고 온몸의 기능이 굳어지면서 마비됩니다.

▲황신애 작 '아버지전상서-황규상', 종이에 연필

황신애 씨는 2012년까지 7번 재발이 됐습니다. 혼절해 쓰러졌다가 병원에 실려가 다시 회복되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2012년 이후로는 치료를 중단했습니다. 치료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입니다.

분노와 절망과 체념이 되돌이표처럼 반복됐고, 사지마비로 집안에서만 지내야 했습니다. 활동보호사의 도움 없이는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황신애 작 '테레사 수녀-어머니', 종이에 연필

2014년 세월호 사건이 터졌습니다. 세월호 아이들의 주검이 침대에 누워있는 자신과 동일시되는, 숨을 쉴 수 없는 고통의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큰딸이 작은 공책을 가져다주면서 거기에 그림을 그려보라고 권했습니다. 그때부터 모로 뉜 공책 아래 페이지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공책의 윗 페이지에는 손이 도저히 닿지 않았습니다. 주로 자신에게 용기를 주는 인물들을 그리고 거기에 명언이나 시구를 적었습니다.

※ 이 기사는 2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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