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3대 걸친 ‘영농 기계화’…아직도 소가 귀해?

KBS 2024. 9. 28.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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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길고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고 어느덧 본격적인 추수철을 앞두고 있습니다.

네, 북한도 사정은 비슷한데요.

황해도 개풍군에선 벌써 추수가 시작된 모습이 포착됐습니다.

북한 당국은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목표한 식량 생산량을 채우라고 지시하고 있는데요.

특히 '영농기계'를 적극 활용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트랙터, 탈곡기는 물론 드론까지 농사에 동원하고 있다는 북한.

영농 기계화를 통해 만성적인 식량난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클로즈업 북한〉에서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조선중앙TV :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여 가을걷이와 낟알 털기를 다그쳐 끝내자!"]

본격적인 추수철을 앞두고 대대적인 선동방송을 시작한 북한.

농업 근로자들의 역할을 부각하며 목표한 식량 생산 계획을 반드시 수행할 것을 강조하는데요.

당국이 생산량 증대 방법으로 제시한 것은 다름 아닌 '영농 기계화'입니다.

[조선중앙TV : "특히 소형 벼 수확기를 비롯한 농기계들의 가동률을 최대로 높여 품 들여 가꿔온 곡식들을 집중적으로, 질적으로 가을(걷이)하도록 해야 합니다."]

지역별 농기계 공장들 역시 성능 좋은 탈곡기 생산을 제때 완료했다며 성과를 자랑합니다.

[권광철/강계 농기계공장 지배인 : "지난 시기에 이어 올해도 짧은 기간 안에 400여 대의 탈곡기를 생산했습니다. 이 탈곡기들은 능률이 높고 이동식 탈곡기이기 때문에 임의 장소와 임의 시간에 탈곡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북한이 영농 기계화를 강조하는 것은 농사 과정에서 식량 손실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조충희/굿 파머스 연구소장 : "북한이 탈곡할 때 벼 베고 운반하고 탈곡하고 정미하고 건조하고 이 과정에 손실되는 전체적인 곡물 양이 20%거든요, 공식적으로. 100만 톤 생산하면 20만 톤이 이 과정에 손실돼요. 한국 같으면 3%도 안 돼요, 도중 손실이. 그러니까 이런 것들을 줄이기 위해서 자꾸 정책적으로 탈곡기도 만들어라 종합적 기계화를 해라."]

북한은 1950년대 후반부터 영농 기계화를 추진했습니다.

김일성 주석 역시 농업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기계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당시에는 질보다 양적 성장에 집중했습니다.

성과는 나쁘지 않았다는 평가입니다.

[최송죽/농장원 출신/2016년 탈북 : "김일성 때 제가 농장에서 일했단 말입니다. 그때는 뜨락또르(트랙터)도 많고 모내는 기계도 있고 농약 뿌리는 기계도 있고 기계들이 정말 많았단 말입니다. 그리고 김일성 때는 8백만 톤이요 9백만 톤이요 목표하며 농사를 하면 진짜 농사가 잘됐단 말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역시 영농 기계화 정책을 이어받았지만 괄목할 만한 진전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1990년대 소련 붕괴와 맞물린 극심한 경제난, 그리고 연이어 닥친 자연재해.

경제적 고립은 북한 영농 기계화에도 큰 타격을 줬습니다.

북한 당국은 농기계에 필요한 연료와 부품을 충분히 공급하지 못했고, 수많은 농업 기계들이 방치되거나 수리 불능 상태에 놓이게 된 겁니다.

[최송죽/농장원 출신/2016년 탈북 : "김정일 때도 간혹 넓은 포전에는 '모내기 기계'도 있었는데 기름이 없어서 모내기 기계가 구석에서 녹이 슬어서 파철이 됐단 말입니다. 그래서 모내기 전투를 하지 않습니까. 기계가 없으니까 기계가 한 시간에 할 거 사람들이 하루 종일 수십 명이 엎드려서 모를 꽂고 했단 말입니다."]

김정은 위원장 역시 집권 이후 농업의 과학화를 강조하며 영농 기계화 목표를 높이 세웠는데요.

특히 자체적인 기술 개발을 통해 세계 수준의 영농기계를 제작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조선중앙TV/2022년 9월 : "우리 노동계급이 만든 현대적인 농기계들이 서해 곡창에 희한한 장관을 펼쳤습니다."]

2022년, 북한 최대 곡창지대인 황해남도 해주에는 북한이 자체적으로 제작했다는 농기계 5천 5백 대가 보급돼 눈길을 끌기도 했습니다.

해당 농기계는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로 군수공장에서 제작됐다고, 당시 북한 당국은 밝혔습니다.

해당 지역 농민들도 대대적인 환영 행사를 벌였습니다.

[해주시 주민 : "경애하는 총비서 동지께서 보내주신 사랑의 농기계들을 현실로 보니까 정말 힘이 솟고 용기가 솟습니다!"]

이후에도 북한은 농기계 전시회나 과학기술 축전 등을 통해 트랙터, 탈곡기는 물론 농약 살포용 드론까지 선보이며 영농의 기계화, 과학화를 부각하고 있는데요.

[김남혁/과학기술 축전 참가자 : "나라의 농업생산량에 적극 이바지하기 위해서 농약 살포용 무인기와 촬영용 무인기를 가지고 참가했습니다."]

일각에선 김정은 위원장식 영농 기계화 정책이 일부 성과를 보이고 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지난해 추수철을 맞아 연일 풍작을 선전했던 북한.

[홍금실/대동군 읍농장원/2023년 10월 : "제가 담당한 포전인데 작년에 비해 1.3배 정도 더 잘됐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다 잘됐습니다. (전반적으로 잘 됐다?) 네 잘됐습니다."]

북한 매체들은 당국의 농기계 생산, 보급 확대 정책이 효과를 봤다고 주장했습니다.

[조선중앙TV/2023년 10월 : "알곡 생산 계획을 넘쳐 수행한 농장으로 전변된 것은 우리 당 농업정책의 정당성과 생활력의 뚜렷한 증시입니다."]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주북 러시아 대사도 러시아 언론과 인터뷰에서 북한이 괜찮은 수준의 수확량을 달성했고, 러시아의 식량 지원 제안도 사양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런 영농 기계화 정책이 만성적인 식량난까지 해결하지는 못할 거란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평가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북한의 기술 역량 부족입니다.

[조충희/굿 파머스 연구소장 : "북한의 금속 공업, 금속 가공업, 기계 가공업의 정밀도가 부족한 데 있어요. 트랙터를 만들어 놓고 이것들이 정상적으로 가동하고 또 정상적으로 가동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부품 시스템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돼야 하는데 북한의 (가공한) 강질이 그렇게 좋지 못해요."]

지난해 9월에 열린 북한 정권 수립 75주년 기념 열병식.

이날 김일성 광장에서는 농기계인 트랙터가 방사포를 매달고 행진했는데요.

이때 트랙터 위로 발생하는 연기를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조충희/굿 파머스 연구소장 : "트랙터에서 연기가 난다는 건 기름이 연소하는 과정에 나오는 연기거든요. 그 정도로 정밀 가공이라든가 금속 공업이라든가 이 기초 공업의 기반이 제대로 닦이지 못해서 트랙터를 만들긴 했지만 좋지 못한 (가공)강질로 수명이나 운영의 방식에서 상당한 문제가 있는 게 첫 번째고요."]

농기계의 양적 보장 문제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KBS가 입수한 북한 내부 교육용 영상.

농기구를 멘 소들이 밭을 갈고 있습니다.

이 소들은 '부림소'라 불리며 농사 전용으로 길러지는데요.

해당 영상은 '부림소'를 수십 마리나 밀도살한 부녀를 맹비난합니다.

[북한 주민 교육 영상 : "국가 재산인 부림소들을 밀도살해서 사적 이익을 챙기는 범죄 행위를 감행한 동○○과 동○○입니다."]

반면, 폭우에 떠내려가는 소들을 목숨 바쳐 구한 농장원은 '노력 영웅'으로 치켜세웁니다.

[북한 주민 교육 영상 : "리○○ 영웅은 농장원들과 함께 여러 시간 동안이나 무섭게 사품치는(세차게 흐르는) 물속을 헤가르며 필사의 노력을 다해서 부림소들을 기어이 안전한 곳으로 끌어내고야 말았습니다."]

북한 농업에서 여전히 소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조충희/굿 파머스 연구소장 : "소로 농사지으려면 소를 키워야 하지 일할 때 사람이 따라다녀야 하지 사실은 기계로 하는 게 더 쉽거든요. 그런데 아직도 소를 이용한다는 건 그만큼 북한의 기계화 수준이 소가 일할 수밖에 없는 정도이기 때문에 소는 아직도 북한에선 굉장히 중요한 충력(충성의 힘) 중 하나죠."]

또 북한 당국이 나서 농기계를 보급하더라도 연료가 보장되지 않는 한 농민들에겐 무용지물이라는 의견도 나옵니다.

[최송죽/농장원 출신/2016년 탈북 : "벼 탈곡할 때도 탈곡하다 정전이 된다 말입니다. 그럼 못 하고 들어옵니다. 들어와 쉬다가 전기가 들어오면 하는 정도인데 혹시 전기가 들어오고 기계를 준다고 합시다. 기름이 없는데요. 한국처럼 다 전기로 하는 기계면 모르겠는데 북한 (농기계)는 전기가 아니고 다 기름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합니까."]

김정은 위원장까지 나서 영농 기계화에 힘쓰고 있는 북한.

그러나 저조한 기술력과 만성적 연료 부족 탓에 눈에 띌 만큼 농업 생산성이 증대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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