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준 감독의 마음을 울린 '해야 할 일' 속 배우들에 관하여[EN:터뷰]

CBS노컷뉴스 최영주 기자 2024. 9. 28.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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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영화 '해야 할 일' 박홍준 감독 <하>
영화를 현실처럼 만든 배우들
영화 '해야 할 일' 박홍준 감독. 명필름 제공

※ 스포일러 주의

'해야 할 일'은 구조조정으로 동료들을 잘라내야 하는 준희와 인사팀의 리얼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를 보다 보면, 마치 현실에 존재하는 어느 한 회사의 모습을 잘라내 스크린 위에 얹어놓은 것처럼 '진짜 현실'을 마주하는 느낌이다.

그렇기에 박홍준 감독이 '해야 할 일'의 캐스팅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 역시 관객들에게 영화가 아닌 현실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전달하는 것이었다. 영화 준비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지점을 묻는 말에 박 감독이 로케이션과 함께 캐스팅을 꼽은 이유이기도 하다.

박 감독의 열망에 화답하듯이 배우 장성범, 서석규, 김도영은 강준희 대리, 이동우 차장, 인사팀장인 정규훈 부장을 스크린 안에서 현실에 발붙인 인물로 구현해 줬다.

영화 '해야 할 일' 스틸컷. 명필름 제공


▷ 로케이션과 함께 캐스팅이 촬영 준비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지점 중 하나라고 이야기했는데, 어떤 점에서 어려웠던 건가?

캐스팅할 때 목표가 낯선 얼굴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해야 할 일'은 현실에 발을 강하게 딛고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너무 익숙한 얼굴 배우들이 나오면 관객들이 '아, 그냥 영화구나' 생각할 것 같았다. 그렇기에 모르는 얼굴이 많이 나와서 내가 영화를 보는 건지, 현실을 보는 건지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싶은 연출적인 욕망이 있었다.

그리고 지역 배경이 남쪽이라 동남 방언(대체로 경상남북도 전 지역에서 사용되는 방언)을 제대로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나도 고향이 창원인데, 미디어에서 간혹 어색하게 사투리가 나오면 그걸 견딜 수 없었다.(웃음)

부산이나 경남에 있는 영상위원회에 배우들의 데이터베이스가가 있다. 또 부산 경남 출신 배우가 아니면 지역에서 활동 중인 배우도 있다. 그런 분들이 나온 영상을 최대한 많이 찾아봤다. 단역으로 나온 영화는 10초 단위로 나오는 장면을 찾아서 '이 배우 어떠냐'라고 하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찾아나갔다. 연출부가 정말 고생이 많았다.

▷ 그런 노력이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강준희 대리 역 장성범, 이동우 차장 역 서석규, 정규훈 부장 김도영 모두 열연을 펼쳤다. 정말 지금, 그곳에 존재하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장성범, 서석규, 김도영이 어떤 점에서 감독이 그려왔던 강준희와 이동우, 정규훈을 연기하는 데 있어서 적역이라고 생각했나?

시나리오를 수정하고 고치는 과정에서 참고할 만한 드라마를 보다가 10년 전에 KBS에서 했던 '땐뽀걸즈'를 봤다. 장성범 배우는 거기서 선생님으로 나왔었다. 못 보던 얼굴이면서도 빤하지 않은 연기를 자기만의 스타일로 했다. 그러면서도 되게 신선한 얼굴이라 머리에 깊게 남아 있었다.

얼굴이 주는 힘이 강한데, 그 안에 되게 다양한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얼굴 자체가 힘이 세서 고뇌하는 얼굴을 해도 고뇌가 더 잘 보인다. 그리고 만나서 이야기하는 과정에서도 본인의 심지가 되게 곧고, 힘이 탄탄하게 서 있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상대방이 연기했을 때 이에 대한 리액션을 그때그때 적확하게 하는 느낌이 들었다. 준희라는 캐릭터는 본인의 것을 드러내기보다 상대방, 인사팀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리액션하는 캐릭터라서 장성범 배우가 준희를 연기하면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영화 '해야 할 일' 스틸컷. 명필름 제공

 
▷ 서석규와 김도영 배우는 어떤 점이 좋았던 건가?

서석규 배우는 기본적으로 사람이 선하게 생겼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쓸쓸한 느낌도 있고, 조금 잘하면 찌든 느낌도 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웃음) 동우는 나쁜 사람이 아니고 회사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이다. 배우마다 저마다의 이미지가 있겠지만, 서석규 배우가 가진 이미지와 되게 잘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김도영 배우는 주로 연극을 하다가 매체 연기한 지 얼마 안 됐다. 내가 생각한 인사팀장은 반듯하고 칼 같은 인물이다. 어떨 때는 냉혈한처럼 보일 수도 있는 인물이다. 그런 이미지를 가진 배우를 찾다가 김도영 배우를 발견했다. 실제로 김도영 배우는 의사 역할을 맡이 했다.

김도영 배우는 얼굴을 보면 선함이 깔려 있고 웃을 때 인상이 좋다. 인사팀장은 악역처럼 보일 수 있는데, 이런 사람이 인사팀장을 해주면 악역처럼 안 보이겠다고 생각했다. 찍으면서도 김도영 배우의 얼굴을 좋아하게 됐는데, 어떨 때는 페이소스 가득한 얼굴이기도 하고 웃으면 철없는 소년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를 찍으면서 조금 더 좋아하게 됐다.

김도영 배우가 해주면 인사팀장이 처음엔 냉혈한처럼 보이겠지만, 이 사람이 무너질 때 관객분들이 공감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반쯤 농담처럼, 어떤 GV에서 한 관객분께서 '영화가 어떻게 끝나려고 그러지. 설마 팀장님이 죽나' 이런 말씀도 하셨다.(웃음)

▷ 촬영하면서 매 순간이 그랬겠지만, 세 배우가 강준희와 이동우 그리고 정규훈으로서 카메라 앞에 존재한다는 걸 새삼 느꼈던 장면을 꼽아본다면?

팀장님의 경우는 항의하러 온 사람과 대판 싸우고 나서 혼자 자기 자리로 돌아와 의자에 기대어 잠깐 눈을 붙이는 장면이다. 그때가 '정규훈…. 정규훈이네'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벌떡 일어나서 시계를 보고 나가는데 '저 사람은 정말 정규훈이 되어 있구나' 싶었다.

그리고 장일섭 부장(강주상)을 만나러 가서 면담할 때, 예전 자기 사수이자 인간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잘라야 한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얼굴을 측면에서 찍는데, 나도 찍으면서도 가슴이 찌릿했다.

동우는 아무래도 자신의 감정을 터트리는 장면인 것 같다. 본인이 지금까지 억눌리고 스트레스받은 걸 누군가에게 풀어내는데, 그때 좋았다. 물론 부장에게는 미안하겠지만 이렇게 한 번 풀어내고 나서 숨 한 번 쉬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옥상에서 담배 피우다가 준희가 담배 한 대 달라니까 건네주면서 '너도 똥물 오지게 튀었다'라며 쓸쓸하게 웃는 모습도 동우같아서 좋았다.

준희는 초반 노래방 장면이랑(웃음) 회사 안에서 처음으로 팀장에게 대드는 장면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준희와 장선범 배우가 생각하는 준희는 다를 수 있다. 사실 준희는 내가 많이 투영된 캐릭터이긴 하지만, 나랑은 다른 준희의 모습이 보였고, 준희가 자기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딸기 먹는 장면을 좋아한다. 그 당황스러움을 굉장히 잘 표현했다.(웃음) 임신한 아내가 먹고 싶어서 산 건데, 그걸 먹으면서 얼마나 스스로가 죄인 같았을까.

영화 '해야 할 일' 스틸컷. 명필름 제공

 
▷ 영화에서 준희가 장일섭 부장의 딸과 전화 통화하는 장면이 있다. 아버지의 마지막 출근길에 꽃을 선물하고 싶다고 하는데, 그 장면에서는 울컥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노동자로, 부장으로, 수치로 걸러진 해고 대상자로만 바라봤던 장 부장이 한 사람으로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을 목소리 연기한 사람이 정말 잘 살려줬다. 전화 목소리 연기는 누가 한 건가?

김향기 배우다. 실제 그 장면의 목소리를 연기해 줄 배우가 필요했다. 어떤 배우가 좋을지를 생각해 봤을 때, 비인간적인 장면들이 쭉 이어지다가 아버지를 사랑하고 인간적이고 순수하고, 그런 감정이 침입하는 거다. 그래서 순수하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소녀 같은 목소리, 그러면서도 아버지를 걱정하는 성숙함이 섞여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그리고 장 부장이 자꾸 준희를 사위 삼고 싶다고 했던 걸 고려해서 적어도 나이가 20대 초중반은 돼야 했다. 그런 배우가 누가 있을까 하다가 김향기 배우가 떠올랐다. 그런데 마침 명필름에서 김향기 배우와 함께 작업하는 영화가 있었다. 그래서 이은 대표님께 섭외를 부탁드렸고, 다행히 흔쾌히 승낙해서 목소리로 특별출연하게 됐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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