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사율 97% 신소재로 다시 쓰는 이솝우화

김태희 기자 2024. 9. 2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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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동아 제공

동화 '바람과 해님(북풍과 태양)'의 승자는 태양입니다. 나그네가 더위에 못 이겨 외투를 훌렁 벗어버렸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 천'으로 만든 외투였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겁니다. '아기 돼지 삼 형제'에서 셋째 돼지는 벽돌로 집을 지어 무너지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 벽돌'로 만든 집이었다면 태양 아래에서도 셋째 돼지는 평안했을 겁니다.

낮 동안 태양 에너지를 받아 달궈진 지표면은 밤 동안 적외선 형태로 에너지를 방출합니다. 그 결과 밤에는 지표면의 온도가 내려가죠. 이 과정이 자연에서의 가장 대표적인 '복사 냉각'의 예입니다. 열은 전도, 대류, 복사라는 세 가지 방법으로 이동합니다. 전도는 물체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열이 전달되는 것이며 대류는 열 때문에 기체 또는 액체가 움직이는 현상입니다.

뜨거운 공기나 물은 밀도가 작아짐에 따라 부력이 생겨 위로 올라가는데 기존의 온도가 낮은 공기나 물을 아래로 밀어내 순환이 만들어집니다. 복사는 물체가 열을 전자기 복사 형태로 방출하며 열을 전달하는 과정입니다. 복사로 열을 뿜어내 물체의 온도가 낮아지면 '복사 냉각'이라 부릅니다. 

최근 복사 냉각, 그중에서도 특히 수동 복사 냉각이 에너지 분야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수동 복사 냉각은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재료 수준에서 냉각이 이뤄지는 개념입니다. 복사 냉각이 효율적으로 이뤄지는 소재를 개발한다면 냉방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습니다. 최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수동 복사 냉각을 활용한 연구가 연달아 게재됐습니다.

● 세 겹의 천으로 만든 나그네의 외투

앞서 소개한 만화에서 나그네는 6월 13일 미국 시카고대 프리츠커 분자공학대학원 연구팀이 개발한 천으로 만든 외투를 입었습니다. 연구팀은 반사율과 방사율이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 도시 열섬의 열기를 완화하는 천을 개발했다고 발표했습니다.(doi: 10.1126/science.adl0653)

천은 총 3개 층으로 구성됩니다. 가장 위층은 폴리메틸펜텐(PMP) 나노-마이크로 섬유층입니다. 이 섬유층은 태양 에너지를 반사해 열 흡수를 줄이는 역할을 합니다. PMP는 플라스틱 고분자 소재이며 나노-마이크로 구조는 복사 냉각 분야에서 많이 사용됩니다. 

8월 5일 대전에서 만난 김현 한국화학연구원 고기능고분자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섬유의 표면을 주름지게 만들거나 다공성 구조를 만드는 등 소재의 구조를 복잡하게 만들면 만들수록 빛의 산란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며 "소재의 부피에 비해 표면적이 커져 열전달과 방출도 활발해진다"고 설명했습니다.

미국 시카고대 연구팀이 개발한 천은 수동 복사 냉각이 효율적으로 이뤄지는 신소재다. 도시 열섬 현상을 막는 데 활용할 수 있다.  John Zich / UChicago Pritzker School of Molecular Engineering 제공

나노-마이크로 고분자 섬유층은 방사율도 높습니다. 방사율은 적외선 에너지의 방출 효율성을 0과 1 사잇값으로 나타낸 값인데 고분자의 경우 0.9로 매우 높은 편입니다. 중간층은 은나노와이어층입니다. 직경이 nm(나노미터・1nm는 10억 분의 1m) 수준으로 매우 가늘고 길이는 상대적으로긴 구조체입니다. 

은나노 와이어는 밖에서 들어오는 적외선을 반사해서 차단하는 역할을 합니다. 도시에서는 낮 동안 태양열을 흡수한 콘크리트, 아스팔트 건물들은 물론, 차량, 난방, 산업 활동에서 많은 열이 방출됩니다. 이 모든 열은 적외선 형태의 복사로 변환돼 방출되죠. 연구팀이 일반적인 무더위가 아닌 도시 열섬의 열기를 막는 옷감을 개발했다고 말한 이유입니다.

도시 열섬 현상 - 도시는 녹지 면적이 적고 도시 내 인공 시설물 등에서 발생하는 인공열에 의해 교외 지역보다 기온이 높다.도시가 흡수한 태양열과 도시 내 차량, 산업 현장에서 내뿜는 인공열은 적외선 형태의 복사로 변환돼 방출된다. 서울시립대, 과학동아 제공

피부에 닿는 가장 안쪽층은 비교적 흔한 소재인 울로 만들었습니다. 울은 습기를 잘 흡수하고 방출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통기성은 체온을 조절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울이 대류의 흐름을 좋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대류는 앞서 말했던 기체나 액체를 매개로 한 열전달 방식입니다. 체온이 상승하고 피부 표면에서 공기로 열이 전달되는 현상 모두 대류에 의해 발생합니다. 김 연구원은 "천의 바깥층에서 복사 냉각이 아무리 탁월하게 이뤄진다고 해도 몸에서 나는 열을 효과적으로 빼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연구팀은 뜨겁기로 유명한 미국 애리조나주의 태양 아래서 천의 성능을 실험했습니다. 열 전달이 잘 되는 간이 건축물을 만들고 새로 개발한 세 겹의 천과 아웃도어용 스포츠 원단, 그리고 비단을 건축물 위에 올렸습니다. 그리고 건축물 내부의 온도를 쟀어요. 

세 겹의 천은 스포츠 원단과 비교했을 때 2.3℃, 비단보다는 8.9℃나 내부 온도를 낮췄습니다. 천을 피부에 접촉시켜 쟀을 때의 온도 차는 그보다 조금 적었습니다. 일반 면으로 만든 직물을 올렸을 때보다 1.8℃ 낮았습니다. 그러니까 실제로 태양이 젖 먹던 안간힘까지 썼다면 나그네는 곧 외투를 벗어버렸을 겁니다.

하지만 김 연구원은 "피부에서 1.8℃를 낮추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수치"라고 말합니다. 체온이 1~2℃만 달라져도 크게 느껴질 뿐더러 장기간 외부 활동을 하는 경우엔 특히 효과가 크다는 것입니다. 연구팀 또한 논문을 통해 "우리가 개발한 천은 온도를 낮추기 위한 전기 소모량을 획기적으로 줄여줄 것"이란 기대를 드러냈습니다. 

한국에서는 주민등록상 총인구 5164만명 중에 무려 4740만 명이 도시 지역에 거주합니다(2021년 기준). 91.8%가 도시 열섬과 싸우고 있는 거죠. 복사 냉각 천으로만든 옷 조만간 우리도 입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왼쪽부터) 에어로겔은 공기가 90% 이상인 고체로 열 전달을 막는 데 효과적이라 단열재로 많이 사용된다, 젤라틴과 DNA로 만든 에어로겔은 수소결합이 가능하다. 소량의 물로도 에어로겔 블럭을 서로 결합시킬 수 있다. 사진은 다층 에어로겔 블럭으로 빛의 입자 속도와 굴절률을 연구한 러시아 연구팀의 4층 에어로겔 블럭 / Nuclear Instruments and Methods in Physics Research, aspen aerogels 제공

●도합 104% 반사율의 셋째 돼지 집

만화에서 셋째 돼지가 만든 집은 중국 쓰촨대 화학과 연구팀이 개발한 에어로겔 벽돌로 지어졌습니다. 7월 4일 연구팀은 반사율이 100%가 넘는 에어로겔을 개발했다고 발표했습니다. (doi:10.1126/science.adn5694)

에어로겔은 부피의 90% 이상이 공기로 이뤄진 다공성 물질입니다. 1931년 미국의 화학공학자 스티븐 키슬러가 처음 개발한 에어로겔은 단열재로 주로 사용됩니다. 에어로겔 내부의 다공성 구조가 열의 이동을 방해해 열의 두 가지 전달 방법인 대류와 전도를 매우 비효율적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연구팀은 젤라틴과 DNA로 새로운 복사 냉각 에어로겔을 만들어냈습니다. 먼저 젤라틴과 DNA를 4대 1의 비율로 섞었습니다. 이후 따뜻한 물에 두 재료를 잘 녹인 뒤 납작한 벽돌 모양의 틀에 부어 급속 냉동시켰어요. 건조 과정에서 수분이 빠져나가면다공성 구조의 에어로겔이 만들어집니다. 벽돌을 쌓아 '집'을 만드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젤라틴-DNA 에어로겔은 수소결합이 가능해 에어로겔 벽돌에 물을 묻혀 벽돌과 벽돌을 쌓아 나갈 수 있습니다. 집은 비록 컨테이너 박스 같은 형태이긴 할 테지만요. 연구팀이 활용한 DNA는 연어 정액에서 추출한 것입니다. 

많고 많은 DNA 중 왜 하필 연어 정액이었을까요. 김 연구원은 "연어 정액은 식용으로 유통되는 연어의 부산물로 재료 연구에 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연어에선 한 마리당 10~15ml의 정액을 추출할 수 있습니다.

쓰촨대 연구팀이 만든 에어로겔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반사율이 '104%'를 기록했다는 점입니다. 반사율이란 물체가 입사하는 빛을 얼마나 반사하는지 나타내는 비율입니다.

예를 들어 50%의 반사율을 가진 물체는 입사한 빛을 50% 반사하고 나머지는 흡수하거나 투과합니다. 그런데 젤라틴-DNA 에어로겔은 입사한 빛보다 더 많은 양의 빛을 반사하는 것입니다.

에너지 보존 법칙을 위배하는 것 같은 104%의 비결은 자외선 영역의 빛을 흡수해 다시 내보내는 '광 발광' 특성 때문입니다. 젤라틴-DNA 에어로겔은 자외선을 흡수해 가시광선 파장으로 바꿔 내뿜습니다. 가시광선 영역의 파장에서 측정했을때 반사된 빛의 양이 입사량보다 더 많았던 것입니다. 특정 파장대에서의 반사율만 계산했기에 가능한 수치입니다.

높은 반사율은 복사 냉각 효과로 이어졌습니다. 연구팀은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4.5, 4.2, 1.3cm인 에어로겔 벽돌로 외벽을 쌓은 건물을 짓고 그 내부 온도를 측정했습니다. 

북위 30도에 위치하고 습도가 높은 중국 청두시에서 실시한 실험에서 에어로겔의 평균 냉각 효과는 5.7℃였습니다. 햇빛이 쨍쨍한 날의 경우 냉각 효과는 무려 16℃에 이르렀습니다. 북위는 24도지만 해발고도가 높은 쿤밍시에서는 밤과 낮에 각각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밤에는 1.6℃ 수준이었지만 낮에는 복사 냉각 효과가 3.5~15.1℃에 달했습니다. 함께 연구를 살펴본 김 연구원은 "5~6℃ 수준의 복사 냉각 소재는 많이 보고됐지만 일시적이더라도 15~16℃까지 효과가 나온다는 것은 매우 높은 수준"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젤라틴-DNA 에어로겔은 생분해성 재료로 만든 겁니다. 단백질의 일종인 젤라틴은 물에 계속 노출되면 생분해가 시작됩니다. 박테리아나 곰팡이 같은 미생물도 이 에어로겔의 구조를 깨뜨릴 수 있죠. 그러니까 북풍이 차가운 바람이 아닌 비바람으로 승부수를 띄웠다면 셋째 돼지 집도 길게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을 겁니다. 어쨌거나 다시 쓰는 동화입니다.

그리스 산토리니섬은 에게해의 강렬한 태양빛을 반사시키기 위해 흰색 페인트를 칠했다. 건물 자체의 반사율이 높으면 냉방에 드는 에너지를 아낄 수 있어 이산화탄소 배출 절감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 기후위기 시대 더 행복한 동화를 상상하며

복사 냉각은 기후변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더욱 주목받고 있습니다. 1997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이자 제12대 미국 에너지부 장관이었던 스티븐 추는 "지붕을 하얀색으로 칠하고 도로를 연한 색으로 칠하는 것만으로도 전 세계 자동차가 11년간 도로 운행을 중지하는 것과 같은 이산화탄소 배출 절감 효과를낳는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흰색은 반사율이 70% 수준으로 지붕 색을 하얀색으로 칠하는 것만으로도 건물의 실내 온도를 평균 2~4℃ 낮출 수 있다고 합니다.기후변화의 한 가운데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일은 탄소 중립이라는 전 지구적인 과제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한 필수요건입니다. 

수동 복사 냉각 연구가 계속 이어진다면 나그네는 더 시원하고 따뜻한 외투로 가던 길을 갈 수 있을 겁니다. 햇빛이 내리비치는 무더운 날에도 셋째 돼지는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고도 쾌적한 내부 생활을 할 수 있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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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동아 9월호, [현장취재] 반사율 97% 신소재로 다시 쓰는 이솝우화

[김태희 기자 taeh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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