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론 내걸린 교육감 선거…‘조전혁 vs 정근식’ 양강구도

이혜영 기자 2024. 9. 2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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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파전 구도 속 독자출마 후보 변수…조기숙은 막판 불출마
‘단일화 실패=필패’ 공식…‘조희연-윤석열’ 심판 앞세우며 총력전

(시사저널=이혜영 기자)

10·16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의 주사위가 던져졌다. 보수와 진보진영이 나란히 단일화 후보를 선정하며 조전혁 전 의원과 정근식 서울대 명예교수 간 치열한 2파전이 예상된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최대' 변수 그리고 '최종' 변수는 여전히 단일화다. 독자 출마 후보와 손을 잡지 못한다면 결과는 '필패'다. 10년 만에 교육감 탈환을 노리며 극적 합의를 이뤄낸 보수진영의 운명도 진보 측 '최종 단일화' 판도에 따라 바뀔 수 있다. 교육감 선거의 정치적 중립과 정책 경쟁은 이번에도 멀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복되는 교육감 사법 리스크 속에 선출 제도 개선 논의가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희연 10년' 심판 vs '尹 정부 졸속' 심판

'단일화를 깨는 자, 역사의 죄인으로 남을 것.' 서울시교육감 후보 단일화에 사활을 건 보수와 진보진영 양쪽 모두에서 내건 벼랑 끝 전술이다. 8월29일 조희연 전 교육감이 대법원에서 직권남용 혐의로 유죄를 확정받은 직후부터 차기 교육감을 둘러싼 진영 간 경쟁은 본격화됐다. 서울시교육감은 '교육 소통령'으로 대변되는 상징적인 자리다. 81만 명에 달하는 서울 유·초·중·고교 학생에게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교육 정책과 인사를 총괄하고 교원과 교육행정 전반을 관할한다. 서울시교육청의 올해 예산은 13조원에 달한다. 교육감의 정책 방향과 의지에 따라 이 '돈'의 쓰임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조희연 전 교육감의 유죄 확정으로 인해 생긴 공백은 보궐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후보들이 앞다퉈 내건 '심판' 목소리로 빠르게 채워졌다. '교육 자치'라는 기치 아래 교육감 후보자들은 특정 정당 가입이 불허되고 정당의 공천 행위도 금지돼 있지만 이번에도 곧바로 진영 간 대결 구도가 굳어졌다.

보수진영에서는 초반부터 강력한 단일화 후보로 꼽혀오던 조전혁 전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의원이 끝까지 강세를 유지했다. 9월25일 보수 후보 단일화 기구인 '서울시교육감중도우파후보단일화통합대책위원회'(통대위)는 자체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조 후보를 최종 단일화 후보로 추대한다고 발표했다. 여론조사 문항 편파성을 문제 삼으며 불복 의사를 밝혔던 안양옥 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과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도 막판에 승복하며 극적 합의를 이뤘다. 독자 출마 의사를 밝혔던 김영배 전 상명대 특임교수도 본후보 등록 시작일인 9월26일 조 후보와의 단일화에 합의했다.

조 후보는 단일화 후보 선출 직후 조희연표 교육을 '실패'로 규정하고 '진보교육 10년 심판론'을 앞세웠다.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을 계기로 재조명된 교육 현장에서의 교권 추락 역시 학생인권조례로 대변되는 조 전 교육감의 '교사 배제' 정책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봤다. 추락한 학력과 교권, 돌봄 역량을 모두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했다.

조 후보는 1호 공약으로 '방과후학교 자유수강권 최대 100만원 지원'을 내놓았다. 부모의 경제력에 따른 교육 격차 개선을 시급한 과제로 지목하고 "서울의 개천에서 용이 다시 승천하게 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초등학생 지필평가(중간·기말고사) 부활과 방과후학교 선행학습 허용도 주요 공약이다. 공교육에서의 지나친 경쟁 배제로 사교육이 더 심화되는 부작용이 생겼고, 학생과 학부모의 이중 고통 속에 국가적 역량까지 훼손되고 있다는 게 조 후보의 진단이다. 학생의 책임과 의무를 강조하는 '학생권리의무조례' 제정도 예고했다.

진보진영에서는 정근식 서울대 명예교수가 단일 후보로 출격한다. 정 후보는 2024민주진보교육감추진위원회의 경선에서 강신만 전 전교조 부위원장과 홍제남 전 오류중 교장을 누르고 최종 단일후보로 추대됐다. 정 후보가 심판의 대상에 올린 것은 '윤석열 정부의 졸속·불통 교육'이다. 조 전 교육감의 혁신교육에 대해선 '계승' 의지를 피력했다. 1호 공약으로는 지역교육청 단위로 학생·교사·학부모·지역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서울 교육 플러스위원회'라는 새 거버넌스 구축을 들고나왔다.

정 후보는 현 정부가 교육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다며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역사 교과서가 우리 아이들의 책상에 올라오고 교육 격차는 날로 확대되며, 학교 공동체는 갈등과 상처로 얼룩져 있다. 선생님들이 긍지를 잃어가고 입시 경쟁에 내몰린 아이들은 몸과 마음이 시들어가고 있다"고 직격했다. 그러면서 서울시교육감으로서 '역사 왜곡'과 '친일 교육'을 막아서겠다고 강조했다.

조기숙 막판 독자 출마 후보에 균열…'과거' 리스크도

조 후보와 정 후보가 진영 단일화에서 승기를 올렸지만, 선거 당일까지 판세를 장담할 수는 없을 전망이다. 독자 출마를 선언한 후보자들의 막판 거취에 따라 판도가 출렁일 수 있어서다. 정당과 기호가 따로 없는 교육감 선거인 데다 시민들의 참여율이 떨어지는 보궐선거이니만큼 후보의 '인지도' 확보도 관건으로 꼽힌다.

특히 정 후보 측은 독자 출마를 선언한 진보 인사들의 거취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단일화 경선 참여를 거부한 김재홍 전 서울디지털대 총장과 방재석(필명 방현석) 중앙대 문예창작과 교수는 9월26일 중도 사퇴를 선언하고 단일화에 뜻을 모으겠다고 밝혔다. 중도 확장성과 인지도가 있어 보수와 진보 단일화 후보에 모두 위협으로 평가되던 조기숙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후보 등록 마지막 날인 9월27일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러나 진보진영의 최보선 전 서울시 교육의원이 완주 의사를 밝히며 후보 등록을 했고, 보수 성향으로 평가되는 윤호상 한양대 교육대학원 겸임교수도 출사표를 낸 상태다.

'반쪽 단일화' 위기감 속 양쪽 캠프는 비상이 걸렸다. 특히 정 후보 측은 보궐선거 확정 직후 후보 난립을 보이던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분열을 완전히 막지 못하면서 막판 물밑 협상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이 됐다.

진보진영은 교육감 직선제 이후 5번 치러진 선거에서 4차례 승리했는데, 후보 단일화가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2010년 곽노현 전 교육감은 득표율 34.34%로 당선됐는데 이때 보수진영에서 출마한 후보들의 합산 득표율은 65.63%였다. 3선 고지를 달성한 조희연 전 교육감 역시 2014년 39.08%, 2018년 46.58%, 2022년 38.10%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단일화가 무산되거나 독자 출마 변수가 있었던 보수진영 후보들의 합산 득표율이 각각 60.90%, 53.41%, 53.22%였던 점을 감안하면 '단일화 실패=필패'로 귀결된 셈이다. 2014년 선거 이후 10년 만에 두 번째 후보 단일화를 이룬 보수 입장에서는 후보 난립 상황이 채 정리되지 않은 지금의 진보진영 구도가 승리의 결정타가 될 수도 있는 셈이다.

교육감 후보들에게 정치권과의 보폭 유지는 딜레마다. 교육감 보궐선거 시작과 동시에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각각 조희연 전 교육감과 윤석열 대통령의 교육정책 비판을 주고받으며 사실상 대리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경선에서 탈락한 곽노현 전 후보는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에 대한 법적 대응에 돌입했고, 진보진영 후보들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의 인연을 적극 홍보하는 등 노골적인 '명심(明心)' 마케팅으로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정당 소속 활동이 불가능해 조직력 확보가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단기간에 '세몰이'를 해야 하는 점이 선거 리스크를 높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선거 비용 600억원에 최저 투표율 전망까지

대립 구도가 형성되면서 조전혁 후보의 경우 과거 선거에서 논란이 된 막말 파문과 전교조 교사 정보 공개로 인한 배상 판결, 고교 재학 당시 학교폭력 가해 행위로 인한 자퇴 문제 등이 재점화될 가능성이 크다. 정근식 후보는 상대적으로 일반 시민들에게 인지도가 약한 상황에서 조희연 전 교육감의 혁신 교육을 계승한다는 점이 중도 표심을 끌어모으는데 한계로 작용할 수 있다는 평가다.

이번 보궐선거 후보가 4명으로 압축되면서 교육계 내부와 진영 간 공방은 점차 뜨거워지고 있지만 시민들의 관심은 저조하다. 서울의 경우 교육감 선거가 원포인트로 치러지는 만큼 역대급 최저 투표율을 기록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특히 조희연 전 교육감이 중도 하차하면서 600억원대의 추가적인 선거 비용이 투입되는 점, 직선제로 선출된 교육감 4명이 모두 형사처벌 대상에 오른 점, 곽노현 전 교육감이 직을 상실하며 납부했어야 할 선거보전 비용 35억원 가운데 30억원을 미납한 채 이번 선거에 출사표를 낸 사실이 알려지며 여론은 더 싸늘해진 상황이다.

교육감 선거의 문제점과 한계가 반복되면서 러닝메이트 제도 도입에 대한 목소리도 커진다. 그러나 교육 현장에서는 시도지사와 교육감이 공동 출마하는 방식은 교육 자치를 크게 훼손하게 되고 '백년지대계'를 이념의 장으로 끌어들이는 결정이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교육계 원로인 송기창 성산효대학원대학 총장(숙명여대 명예교수)은 "정책 경쟁이 제대로 되지 않는 현실적 한계 탓에 교육감 선거를 '깜깜이 선거'로 규정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차원에서 곧바로 러닝메이트제 도입을 논의해야 한다는 방향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교육 자치 본질을 훼손하는 방안은 결코 개선책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근간을 흔드는 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당장 러닝메이트제를 운영하다 유죄 확정으로 보궐선거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 오면 그땐 어떻게 할 것인가"라며 "교육감 선출 방식에 국한된 논의가 아닌, 근본적인 해법 도출과 개선을 위한 사회적 합의와 국회 차원의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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