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쪽같이 사라진 '생명줄'에 고교생 발동동…노련한 경찰이 한 일[베테랑]
[편집자주] [편집자주]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13만건(2022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정말 중요한 물건이거든요. 꼭 좀 찾아주세요."
지난달 24일 오후 7시10분쯤. 한 고등학생이 어머니와 함께 서울 남대문경찰서 태평로파출소를 찾았다. 학생은 서울 중구 청계천 일대에서 친구들과 운동을 하려고 점퍼를 벗었는데 누군가 옷을 훔쳐갔다고 말했다. 점퍼 주머니에는 400만원짜리 '인슐린 펌프기'도 있었다.
인슐린 펌프기는 1형 당뇨 환자들에게 중요한 의료기기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1형 당뇨는 인슐린이 분비되지 않는 병으로 인슐린 펌프기를 부착하지 않으면 고혈당이 악화돼 급성 케톤산증과 같은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
학생과 어머니는 현장 주변을 3번 넘게 돌아다녔지만 결국 발견하지 못했다. 주말 청계천을 찾은 시민들과 집회 인파가 거리를 가득 메웠다. 두 사람은 애타는 심정으로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
당시 파출소에 있던 사람은 32년차 경찰 박남훈 순찰2팀장이었다. 그는 신고자의 이야기를 듣고 '옷 사이즈가 안 맞았다면 분명 주변에 버리고 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박 팀장은 점퍼 색깔, 브랜드와 함께 도난 장소 등을 꼼꼼하게 물었다. 경찰청 유실물관리시스템에 유사 물품이 없는지 모니터링을 했다. 박 팀장은 "쉽지 않을 수 있지만 열심히 찾아보겠다"며 학생과 어머니를 안도시켰다.
박 팀장은 "평소에 해야할 업무도 많고 주변에 CCTV(폐쇄회로TV)까지 없으면 발견하기 쉽지 않다"며 "카드나 수표도 아니고 옷이고 펌프기였기 때문에 사실 걱정이 앞섰다"고 말했다.
가장 먼저 박 팀장은 박초원 순경과 함께 현장에 갔다. 인근 도로와 건물, 천변 주변로, 버스 정류장 등을 구석구석 살폈다. 그는 박 순경에게 "우리가 찾을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지만 고가 제품이고 아이한테 꼭 필요한 물건이니까 쭉 살펴보자"고 말했다.
박 팀장은 1시간 넘게 청계천 주변을 살폈다. 좌우로 고개를 돌리며 검은색 옷이 없는지, 눈에 안 보이는 곳에 숨겨두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정처 없이 걷던 오후 9시50분쯤 한 건물 앞에 낯익은 옷 하나가 보였다. 학생이 사진으로 보여준 바로 그 검은색 점퍼였다.
도난 현장에서 10~20m 떨어진 건물이었다. 범인은 건물 화단에 옷을 숨겨두고 현장을 빠져나갔다. 주머니를 살펴보니 인슐린 펌프기도 그대로 있었다. 박 팀장은 곧바로 학생에게 전화해 이 사실을 알렸다. 활짝 웃는 학생 목소리를 들으며 큰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현장에 답이 있다"고 강조했다. 박 팀장은 "경찰이라면 현장에 한 번 더 가봐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현장을 가면 증거도, 단서도 모두 있다.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찾으면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소식을 들은 학생 어머니도 경찰에게 감사 문자를 남겼다. 어머니는 "생각보다 너무 빨리 찾아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죄송했다"며 "주말이고 주변 집회가 있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라 기대를 안하고 돌아왔다. 사고 접수가 되기도 전에 미리 이렇게 빨리 찾을 수 있을거라 생각 못했다"고 말했다.
박 팀장은 평소 파출소에서 근무하면서 도난 신고도 자주 접수한다고 말했다. 그는 "재산 손실이 크고 사람 생명과 관련된 물품은 긴밀하게 대비하는 편"이라며 "사실 물건을 찾는 게 쉽지는 않은데 학생이 운이 좋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박 팀장은 경찰은 사명감을 갖는 직업이라 감사함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경찰은 나쁜 행동은 하면 안되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근무한다는 게 좋다"며 "남은 경찰 생활은 무탈하지만 보람차게 마무리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지은 기자 running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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