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거대한 전시장…스톰킹 아트센터 [이한빛의 미술관 정원]
[뉴욕=뉴시스] 이한빛 미술칼럼니스트 = 뉴욕에서 차를 달려 북쪽으로 약 1시간, 뉴욕 허드슨 벨리로 불리는 그곳엔 BTS RM이 라이브 퍼포먼스로 더 유명세를 얻은 디아 비컨(Dia Beacon)만 있는 것은 아니다. 허드슨 강을 중심으로 왼쪽에 디아 비컨이 있다면 오른쪽엔 스톰 킹 아트 센터(Storm King Art Center)가 있다. 작은 시골 마을에 자리한 독특한 현대 미술관인데, 관광객에게는 우드버리 커먼 아웃렛(Woodbury Common Outlet) 옆동네로 더 익숙하다.
허드슨 강을 옆에 끼고 꼬불꼬불한 산길을 지나 시골 마을 마운틴빌(Mountainville)에 도착하면 ‘이렇게 외진 곳에 과연 괜찮은 미술관이 있을까’ 싶어진다. 하지만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모든 기대를 넘어서는 광경이 펼쳐진다.
스톰 킹 아트 센터는 야외 조각 미술관이다. 약 500에이커(60만평)에 달하는 구릉과 목초지를 화이트 큐브 삼아 대형 조각들이 전시되어 있다. 너무 커서 건물에 들어가지 못하는 대형 작품들을 품은 곳이 바로 스톰 킹 아트센터다. 워낙 규모가 크다 보니 미술관을 순회하는 셔틀이 있다. 한 바퀴 돌아보는데만 30분이 걸린다. 이후 더 보고 싶은 작품으로 걸어가거나, 자전거를 빌려 돌아다니면 된다. 전체 작품을 꼼꼼히 보려면 3~4시간은 족히 걸린다. 뉴욕에서 출발한다면 하루를 야외 미술관에서 보내는 일정이다.
누가 시작했을까
그런 그가 1956년 “돈은 벌만큼 벌었다. 이제는 쓰고 싶다”고 선언하며 돈 쓸 곳으로 정한 것이 미술이었다. 회사 운영은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예일에서 법학 석사를 마친 그의 똑똑한 사위에게 맡겼다. 한편, 워싱턴 D.C.에서 변호사를 하며 재무장관을 꿈꾸던 스턴은 장인의 갑작스런 부름을 받고 2년만에 스타 익스팬션 컴퍼니의 사장이 된다. 사업적 재능이 있었음에도 늘 “사업은 내 체질이 아니야”하고 생각했던 스턴은 오그던이 1958년 미술관 재단을 시작하자 본격적으로 지원에 나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그해 오그던은 지인이던 버몬트 해치(Vermont Hatch)로부터 노르망디 스타일의 저택을 사들였다. 스톰킹 산을 내려다보는 언덕에 위치한 이 저택이 바로 미술관의 시작이다. 원래는 허드슨 강 화파(19세기 중엽 미국 풍경화가그룹)의 작품으로 주요 컬렉션을 만들었으나 1967년 추상표현주의 조각의 대가로 평가되는 데이비드 스미스(David Smith)의 작품을 13점을 사들이며 미술관의 정체성이 바뀌게 됐다. 미술관 앞 작은 정원에 데이비드 스미스의 작품을 시작으로 ‘야외 전시장’만으로도 충분히 미술관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스턴은 하버드매거진과 1999년 7월호 인터뷰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설명한다. “(야외 미술관인 스톰 킹은) 비전의 문제이자 기회의 문제였다. 땅값이 쌌고 대형 작품이 막 나타나기 시작했을 무렵이라 저렴했다. (볼트와 너트 제조를 영위한) 본사엔 설치와 보존을 도와줄 엔지니어가 있었다. 만약 17세기 네덜란드 회화나 18세기 프랑스 가구를 사려고 했다면 한 점 정도나 구입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전화위복’. 이제 스톰 킹 아트센터는 전세계에서 조각으로 가장 유명한 미술관에 꼽힌다.
정원을 채운 거인들
스턴이 “100명 이상의 예술가가 참여한 국제적 컬렉션”이라고 자평하듯 미술관은 곧 명성을 얻었다. 작가들에게도 워너비 미술관이 된 것이다. 두께 30센치에 달하는 선박용 무쇠 강판으로 작업하는 리처드 세라의 작품도 1990년대에 스톰킹에 합류했다. 세라는 1년동안 고심해 10에이커(1만2000여평)에 달하는 부지를 고르고, 그곳에 4개 철판을 설치했다. 구릉의 이곳저곳에 떨어져 있어서, 언덕에서 내려와 아래에서 올려다 보아야 전체 작품을 볼 수 있다. 키가 큰 풀이 가득 덮인 구릉이라 겨울을 제외한 나머지 계절엔 작품의 꼭대기 부분만 빼꼼 보인다. 숨은듯 존재감을 과시하는 세라의 작품은 자연 속에서 완벽한 조화를 이뤄낸다.
또 다른 대형 작업은 마야 린의 대지미술작품 ‘웨이브 필드’(The wave field, 2007-08)다. 미술관으로 편입된 뉴욕주 도로 11에이커(1만3000여평) 부지에 마야린은 물결치는 초록 언덕을 조성했다. 파동함수를 물리적으로 시각화 한 세 번 째 작품(미시간대학 ‘The wave field’(1995), 플로리다 마이애미 ‘Flutter’(2005))으로 전혀 ‘자연스럽지 않은 자연 잔디밭’을 조성했다. 이 시리즈에서 작가는 위성으로 본 바다 사진에서 해양 파도 현상을 관찰하고, 이를 육지로 옮겨왔다. 스톰킹의 웨이브 필드는 총 7줄의 잔디 파도로, 그 높이가 10~15피트(3~4.5미터)다. 파도의 간격도 40피트(12미터)로, 밖에서 볼 때는 그냥 잔디 언덕처럼 보이지만 실제 안에 들어가보면 큰 파도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을 받는다. 실제 파도와 같은 사이즈로 제작된, 마야린 작업중 최대 규모다.
이처럼대형작품말고도미술관곳곳에작은보물들도있다.백남준의‘UFO를기다리며’(1992)는안내지도를보고찾아야한다.외진곳은아니지만사이즈가작아대충보면지나치기십상이다.텅빈TV를보다지쳐쓰러진부처상이가벼운웃음을준다.백남준작가의따뜻한위트에마음이찡하다.
자연 속에 있어서 더 살아나는
워낙 넓은 대지를 활용하고 있어서기도 하지만 작품과 작품 사이의 간격이 꽤나 멀다. 한 작품에 가까이 가면 그것에만 몰입해서 감상할 수 있다. 관목과 풀로 시야를 섬세하게 조율한 결과다. 스턴은 “예술작품은 그것 하나만 딱 떨어져서 고립된 상태로 봐서는 안되고, 맥락에서 봐야한다”며 “모든 것에 공간을 주고, 그 사이의 관계를 보아야하며, 과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정원에 작품이 빽빽하게 들어서는 것도 반대했던 그다.
3시간 넘는 강제 산책과 관람 끝, 일상을 이루는 템포가 한 박자 늦어진다. 작품과 작품 사이의 거리처럼 약간의 느슨함이 스며든다. 저 복잡한 뉴욕에서도 멀리 떨어져, 이곳은 시간마저 다르게 흐른다. 햇볕과 바람의 속삭임에 익숙해 질 때면, 나와 내 주변인에 대한 성찰도 고개를 든다. 일상 속에 갑자기 끼어있는 연휴처럼, 스톰 킹 아트 센터는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브레이크’로 작동한다. 마치 좋은 예술이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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