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가계빚은 한국 경제 뇌관인가

이창환 금융부장 2024. 9. 2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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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최근 서울 서초구 신축 아파트가 60억원에 거래됐다. 대형 평형도 아니다. 거래된 아파트는 국민 평형이라고 불리는 전용면적 84㎡다. 한국은행 자료를 보면 서울 명목 주택가격은 2021년 고점의 90%를 회복했다.

막차를 타지 않으면 내 집 마련의 꿈은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하는 실수요자, 부동산으로 한몫 챙기려는 투자자들까지 몰려 주택 시장이 다시 달아오르고 있다. 집값 상승은 필연적으로 가계부채 증가로 이어진다. 은행 대출 없이 집을 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미국 등 주요국의 금리 인하 결정으로 한국은행은 고민에 빠졌다. 금리 인하 압박이 커지고 있지만 대출금리가 하락하면 사람들은 더 많이 돈을 빌리고 집값은 더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가계부채 증가는 통계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가계대출 동향에 따르면 전 금융권의 8월 가계대출은 7월보다 9조8000억원 늘었다. 지난해 연간 가계대출 증가 폭(10조1000억원)에 육박한다.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이 8조2000억원 늘어나면서 가계대출 증가세를 견인했다. 한국의 가계부채는 2010년 1000조원에서 2020년 2000조원으로 늘더니 올해 1분기 말에는 2250조원까지 늘었다.

감당할 수 없는 가계부채는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린다. 빚이 많은 집은 이자를 갚느라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소비 위축은 경기침체로 이어진다. 가계부채의 대부분을 주담대가 차지하고 있어 집값이 우상향한다면 그나마 낫다.

하지만 서울 아파트값이 30% 하락한다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해 보자. 2006년부터 2009년 사이 미국 전역의 집값은 평균 30% 떨어졌다. 빚은 주택의 압류를 불러오고, 압류가 일으키는 외부 효과는 집의 가치를 더욱 떨어뜨린다. 집값 하락으로 인한 손실로 빚이 많은 가계는 소비를 급격하게 줄이고 경제 전체에 충격을 가한다. 미국을 넘어 세계 경제를 위기로 몰고 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는 부동산 가격의 폭락이 한 원인이 됐다.

물론 서울의 아파트값이 곤두박질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문제는 부동산 열풍에 ‘영끌족’이 ‘패닉바잉’에 뛰어들면 가계부채가 급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주택 시장 침체까지 겹치면 한국 경제는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정부도 가계부채 관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데 가계부채를 관리하는 정부의 정책은 몇 가지 문제점을 노출했다.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시행을 두 달 미루면서 오히려 8월 대출 광풍을 부추겼다. 정책 헛발질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금융 당국 수장의 말 한마디에 은행의 대출 정책이 오락가락해 소비자들의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가계부채가 한국 경제의 시한폭탄임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뿐만 아니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세계 3대 신용평가사도 매년 지적하는 단골 메뉴다. 최근엔 국제결제은행(BIS)까지 우려하는 보고서를 냈다.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할 묘수가 없다 보니 단기 대책만 남발한다.

10년 전 미국에서 출간된 ‘빚으로 지은 집(House of Debt)’에서 저자인 아티프 미안과 아미르 수피는 가계부채로 경제가 충격을 받았을 때 전통적인 정책 수단인 통화 정책과 재정 정책의 효과가 크지 않다고 주장한다. 두 경제학자는 ‘책임분담모기지’를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집값이 하락하면 돈을 빌린 사람뿐만 아니라 은행도 위험을 분담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현재의 금융 시스템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은 극소수이며 소수의 기득권층은 빚을 권장하는 금융 시스템을 개혁하려 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책임분담모기지와 같은 충격 요법이 없으면 빚과 파국의 악순환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빚으로 지은 집이 한국 경제를 침체기로 몰아넣기 전에 가계부채 문제에 대한 종합대책을 하루빨리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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