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을 ‘잡도리’하는 세상에서 제멋대로인 여성 보여주는 웹예능 ‘디바마을 퀸가비’[이진송의 아니 근데]
“진짜 무례하시네요.”
“맛있어, 물회.”
뜬금없는 대화의 흐름에 그만 웃음이 터진다. 댄서 가비의 유튜브 채널 ‘가비 걸’에 업로드되는 웹예능 <디바마을 퀸가비>의 한 장면이다. ‘무례’가 ‘물회’로 이어지는 대화만 놓고 봤을 때도 황당하지만, 이것이 무엇의 패러디인지 안다면 기립 박수를 쳤을 것이다. 2011년 Mnet 예능 <론치 마이 라이프>에서 화제가 됐던 장면으로, 당시 배우 유아인과 홍콩 재벌의 딸 맥신쿠가 ‘원래 그렇게 무례하냐’ ‘성격이 더럽다’며 기싸움을 했던 상황이 원본이다. 아, 코끝을 스치는 그리움의 냄새. 이 장면은 <디바마을 퀸가비>라는 예능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압축된, 원액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5월 방송을 시작한 <디바마을 퀸가비>는 최근 시즌 2로 돌아왔다. 시즌 1의 7화가 현재 조회 수 200만건을 넘고, 이후 업로드된 회차들이 100만건을 넘기며 인기 웹예능의 자리를 확실히 다졌다. “갱스터 아빠와 쌔비지 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퀸가비의 우당탕당 한국 정착 일기.” <디바마을 퀸가비>의 공식 소개이다. ‘퀸가비’는 가비가 연기하는 ‘부캐’로, 할리우드의 월드 스타이다. K팝을 좋아해서 한국에 왔다는 설정의 페이크 다큐멘터리다.
페이크 다큐멘터리는 등장인물이나 상황을 마치 실제처럼 보이게 연출하는 영화 장르로, ‘조롱하다’라는 뜻의 영어 ‘Mock’와 합성하여 ‘모큐멘터리’라고도 일컫는다. 우리나라에서는 2007년 <독고영재의 스캔들>(tvN)이 불륜 현장을 적발하는 미국의 리얼리티 프로그램 <치터스>를 모방하면서 이 형식의 예능을 표방했다. 그러나 이러한 장르적 특징이 명확하지 않을 경우 조작 방송 의혹과 진정성 논란에 휩싸이기도 한다. 2007년 <리얼 스토리 묘>(tvN)는 44회 성추행범을 검거하는 현장을 재연한 영상에 ‘본 내용은 현장 기록’이라는 자막까지 삽입하여 방송했다가, 항의를 받고 사과문을 게시했다. 이후 대중적으로 페이크 다큐의 문법을 각인시킨 프로그램은 <코미디쇼 희희낙락-유세윤의 인간극장>(2009, KBS)과 <UV 신드롬>(2010, Mnet)이다. 유세윤이라는 유명 코미디언이 가상의 인물을 연기하기에 시청자는 이것이 ‘진짜라고 합의된 가짜’임을 쉽게 인지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페이크 다큐멘터리는 실존 인물이 새로운 인물을 연기하며 여러 개의 정체성을 갖고 노는 ‘부캐’ 열풍에 불을 붙였다고 할 수 있다.
실제 세계를 표방하는 쇼 안에서 터무니없는 거짓이나 과장이 천연덕스럽게 통용되는 모습은 웃음을 유발하기도 하고, 현실의 모순과 관행을 꼬집기도 한다. <디바마을 퀸가비>에서 토종 한국인 가비가 미국인을 연기한다거나, 572명의 매니저가 티슈를 뽑아주고 강아지 밥을 주는 일 등을 세분화해서 맡아준다는 설정, 한산한 거리에서 행인을 파파라치 취급하며 진저리를 내는 모습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허무맹랑한 금액을 언급하거나 툭하면 “매니절~!”을 외치는 모습은 우스꽝스럽지만, 그것이 현실과 아주 유리되어 있지는 않다는 감각 또한 그림자처럼 어른거린다. 실제로 한국 사회는 양극화가 극심하고, ‘갑질’이라는 표현으로 요약되는 고용 관계에서의 위계·부당한 대우·착취가 일상적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언제나 평온하고, 심지어 약간 의욕 없어 보이는 PD와 이런 퀸가비 캐릭터의 케미스트리가 아주 뛰어나다는 사실이다. 가비가 아무리 들들 볶아도, 갑자기 분노하며 눈을 부라려도, PD는 동요하지 않고 할 말을 한다. 목소리가 <인사이드 아웃>의 ‘슬픔이’ 같다며 ‘슬픔이 PD’라는 애칭도 생겼다. 볶아도 볶아지지 않는 PD와의 티키타카, 은지튼튼(이은지)이나 풍자 센소리(풍자) 같은 캐릭터 앞에서는 뒤집히는 권력 관계 등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면서 퀸가비의 ‘인성질’은 성공적인 코미디가 된다.
‘케이팝 때문에 한국에 온 월드스타’
댄서 가비의 페이크 다큐멘터리는
2000년대 초 리얼리티쇼와 이어져
금기·규범을 뚫는 여성을 보여준다
그는 파파라치·악플에 시달리지만
슬퍼하기보다 미치기를 선택한다
예측 못할 지점에서 감정이 상하고
뭐든지 최고여야 직성이 풀리지만
유난스러운 친구들이 곁을 지킨다
물론 페이크 다큐멘터리인 <디바마을 퀸가비>의 진짜 계보는 따로 있다. 바로 2000년대 초반 미국의 셀러브리티가 출연한 리얼리티 쇼, 그리고 당시 이를 적극적으로 수입하고 한국적인 스타일로 구현했던 온스타일·Olive·Mnet의 프로그램이다. 편집 방식이나 컷, 연출, 음악의 ‘쪼’를 살렸다. 2000년대는 여성의 교육 수준 향상과 공적 영역으로의 진출, 경제적 구조의 변화 등으로 능력 있는 젊은 여성이라는 존재가 부상한 시기이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나 <섹스 앤 더 시티>처럼 젊은 여성들의 일과 사랑을 다룬 ‘칙릿’ 장르가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며 여성의 욕망이 주목받았다. 이 분야의 대표가 OliveTV의 <악녀일기>(2007~2010) 시리즈다. <악녀일기>는 소위 ‘금수저’ 여성들이 등장하여 자신의 일상을 보여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시즌 7까지 이어진 <악녀일기>는 출연자들 또한 연예인에 준하는 인기를 얻으며 연반인 혹은 인플루언서 역사의 기초를 닦았다. 당시 <악녀일기>가 한국 사회에 던진 파장은 신선했다. 풍족한 경제적 조건을 바탕으로 호화로운 취향을 즐기고, 뷰티와 패션, 케어 산업에 거침없이 돈을 지출하며, ‘꿀릴 게 없기에’ 당당하고, 그래서 오만하거나 무례해도 괜찮은 ‘일반인’, 그것도 ‘여성’이 미디어에 등장한 것이다. 계급의 문제를 떼어내고 볼 순 없지만 이들에 대해 느끼는 호기심, 해방감, 선망은 젠더화의 체계에서 이해해야 한다. 부자인 남자, 부를 과시하는 남자, 부자라서 오만한 남자는 흔하지만 부자인 여자, 그것을 과시하는 여자, 부자이기에 자유로울 수 있는 여자는 <작은 아씨들>의 대고모 정도 아니었을까. 그 대고모마저, 여성에게 경제적 독립이 허용되지 않는 현실에서 조카에게는 돈 많은 남자와의 결혼이 유일한 성공 비법임을 설파했다. <악녀일기> 이후로 미디어에 등장하는 금수저 여성들은 여성을 둘러싼 촘촘한 금기와 규범을 돈의 힘으로 뚫는다. 그러니까 여성들이 열망하는 것은 부라기보다는, 부가 보장하는 혹은 부가 연상하는 자유라고 할 수 있다. 여성을 ‘잡도리’하는 세상에서, 제멋대로인 자유 같은 것 말이다.
퀸가비의 히스테릭한 모습은 두 층위의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하나는 관심이 개인을 옥죄는 폭력으로 작동하여 병들게 하는 현실이다. 가비는 1화에서부터 자신이 파파라치와 악플 때문에 정신과에 다니고 있고, 좀 예민하다고 호소한다. 셀러브리티 여성이 받는 관심이란 결국 여성의 육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고(<악녀일기> 출연자들 또한 외모가 중요했다), 여성의 일거수일투족을 검열하는 문화와 초연결사회라는 특성과 만나면 새로운 위험을 생성하는 까닭이다. 예를 들면 아무리 부자여도 개인이 인터넷의 모든 발언이나 관심을 통제할 순 없다. <악녀일기>의 출연자들이 지금 시대에 방송에 나왔다면, 전용 사이버레커 영상이 줄줄이 생겼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여자만의 문제로 여겨지는 예민하고 까칠한 기질이 의미화되는 방식이다. <악녀일기>에서 출연자들의 악행은 제멋대로에 변덕스럽고, 겸손하거나 눈치 보지 않는 정도이다. 그것만으로 악녀가 된다. 퀸가비의 거울에는 영어로 좌우명이 적혀 있는데,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슬픈 년이 되지 말아라, 미친년이 되어라.” 좌우명대로, 퀸가비는 ‘미친년’처럼 보인다. 예측할 수 없는 지점에서 감정이 상하고, 눈물을 흘리며, 과한 의상을 입는다.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잘났고, 모두가 자기에게 관심이 있고, 뭐든지 가장 좋고 비싼 것을 차지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외국에서는 여자주인공을 뜻하는 ‘디바(diva)’를 이런 여성을 멸칭하는 의미로 쓴다. 하지만 퀸가비는 밉지 않다. 그리고 퀸가비를 사랑하는, 이상하고 또 다른 방면으로 유난스러운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퀸가비는 슬퍼하기보다는 미치기를 선택했고, 그래서 이상하고 즐겁다.
질문할 때이다. ‘어떤’ 특성이 ‘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어떤’ 여자가 ‘미친년’이 되는가? 누군가에게만 과도한 슬픔과 희생이 강요된다면, 그가 미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감정적인 이유로 전쟁을 일으키거나 회사의 이익을 날리는 남자가 이토록 많은 세상에서, 어째서 감정이 과도하여 믿을 수 없는 존재는 여성으로 재현되는가?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을 20년 만에 다시 보며 배우 려원은 주옥같은 멘트를 남겼다. “그때의 드라마는 불온전한 사람들의 미성숙한 것이 그냥 여실히 드러나도 괜찮았던 시대였나봐요.” <디바마을 퀸가비>는 2000년대의 향수를 뿌리고, 이상해서 자유로운 여자의 얼굴로 절찬리 ‘구독자 매니절’을 모집 중이다. 곧 업로드될 영상에는 좀 더 ‘물회한’ 은지튼튼이 귀환하니, 늦지 않게 챙겨 보기를 권한다.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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