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 질 뻔” 승률 91.5% 맘에 안 든 ‘씨름 괴물’ 김민재
“내 습관 노출, 첫판 내주는 줄”
그랜드슬램 오르고도 ‘욕심’ 여전
“씨름 하면 김민재 떠올랐으면”
25일 전남 영암군에서 만난 김민재(22·영암군민속씨름단)는 듣는 이로 하여금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말을 했다. 2022년 민속씨름 백두급(140kg 이하) 선수로 데뷔 후 자신이 기록 중인 승률 91.5%(65승 6패·개인전 기준)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했다. 휴가 기간인 이날도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기 위해 훈련장에 나온 김민재는 “남들이 보기엔 좋은 성적일지 모르겠지만 올해 전반기에 나는 슬럼프를 겪었다. 우승은 했지만 경기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생각한 씨름을 모래판 위에서 보여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민재는 이달 열린 추석장사 씨름대회에서 16강전부터 백두장사 결정전까지 한 판도 내주지 않고 ‘퍼펙트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경기 내용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는 게 김민재의 설명이다. 김민재는 “대회를 치를수록 상대 선수들의 견제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장사결정전에서도 상대가 내 습관을 파악하고 있다는 게 느껴지더라. 하마터면 첫판을 내줄 뻔했다”고 말했다. 김민재는 이 대회 정상에 오르면서 4대 메이저대회(설날, 단오, 추석, 천하장사)에서 모두 우승하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모래판을 지배하면서 ‘씨름 괴물’이라는 별명이 붙은 김민재는 “누구보다 더 강하다는 의미인 것 같아서 마음에 든다”고 했다.
민속씨름 데뷔 후 2년 만에 그랜드슬램을 이룬 김민재는 이 대회 당시 “앞으로는 씨름 하면 이만기(인제대 교수)보다 김민재가 먼저 떠오르게 하겠다”는 당찬 소감도 남겼다. 선수 시절 ‘모래판의 황제’로 불린 이만기는 천하장사를 10번 지낸 이 부문 최다 기록 보유자다. 김민재는 “기왕이면 제일 센 상대에게 도전해 보고자 하는 마음에 이만기 장사를 언급했던 것”이라며 “축구도 이제는 팬들이 마라도나 대신 호날두, 메시를 이야기하는데 씨름은 아직 이만기, 강호동을 먼저 떠올린다. 꿈같은 목표를 위해 되든 안 되든 부딪쳐 보겠다”고 말했다.
데뷔 해인 2022년 천하장사에 올랐던 김민재가 이만기의 천하장사 기록을 넘어서기는 쉽지 않다. 이만기가 선수로 전성기를 보낸 1980년대엔 천하장사 대회가 1년에 두세 번 열렸다. 하지만 지금은 1년에 한 번만 열린다. 백두장사에선 김민재가 이만기(18회) 이태현(용인대 교수·20회)을 넘어 이 부문 최다 기록을 새로 쓸 가능성이 높다. 김민재는 2022년 단오 대회를 시작으로 지난해 6번, 올해 5번 등 백두장사에 모두 12차례 올랐다. 현역 선수 최다 기록이다. 2017년 창단한 영암군민속씨름단은 김민재의 활약 등으로 지금까지 각 체급에서 모두 94차례 우승을 차지했다.
김민재는 최근 4개 대회 연속으로 무패 우승을 차지하며 개인전 19연승을 기록 중이다. 관련 기록을 집계하기 시작한 2017년 이후 금강급(90kg 이하) 노범수의 20연승에 이어 역대 2위 기록이다. 취미마저 ‘씨름 영상 찾아보기’라는 김민재는 “씨름의 교과서 같은 선배님들 경기를 보면서 기술과 스텝 하나하나를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키 190cm, 몸무게 140kg인 김민재는 최대 중량 기준으로 스쾃 300kg, 데드리프트 290kg, 벤치프레스 200kg(1회 기준)을 들어 올리는 말 그대로 장사(壯士)다. 하지만 김민재는 힘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김민재는 “힘으로만 밀어붙이다 역이용당해 패하는 경우도 있다. 씨름은 상대를 떠받치는 높이가 1cm만 달라도 힘을 주는 각도가 완전히 달라진다. 틀에 갇히지 않는 나만의 씨름을 만들어 내고 싶다”고 했다.
김민재는 다가오는 안산 대회(10월), 천하장사 대회(11월)에서 연승 행진을 이어가겠다는 각오다. 한 시즌의 대미를 장식하는 천하장사 대회는 김민재의 안방 격인 영암군에서 열린다. 김민재는 “이만기 선배님이 그랬던 것처럼 언젠가는 서울 장충체육관을 가득 채운 관중 앞에서 천하장사가 되고 싶다. 씨름 인기가 부활하는 날이 올 수 있도록 좋은 경기로 씨름을 열심히 알리겠다”고 했다.
영암=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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