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기독교 신자로 ‘야스쿠니’ 거리 둬…과거사 마찰 줄어들 듯
이시바 시대, 한·일 관계는
이시바가 짊어지게 될 책무와 과제는 무겁다. 무엇보다 신임 총리는 다가올 총선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전력투구해야 한다. 총선에서 패배한다면 단명 정권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내년에 치러질 참의원 선거 승리도 정권의 안정적 유지에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이시바 정권은 ‘잠정 정권’의 성격을 띤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선 민심 이반을 초래한 정치자금 스캔들을 청산하는 쇄신에 나서야 하고, ‘잃어버린 30년’으로 불리는 일본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정책도 마련해야 한다.
더불어 이시바에게 주어진 임무는 외교·안보 과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가느냐다. 우리의 가장 큰 관심사는 이시바 정권 등장이 한·일 관계에 미치는 영향일 것이다. 그의 이념과 정책 성향 그리고 이번 총재 선거 과정에서 내건 공약을 살펴보면 그 방향성이 짐작된다. 기본적으로 이시바의 외교·안보 정책은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의 기존 노선을 충실히 계승, 답습할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이시바는 대미 동맹을 기축으로 해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 태평양 지역 외교를 펼칠 것이며 자유 진영과의 결속을 추구할 것이다. 러시아, 중국, 북한 등 권위주의 안보위협 세력에 대해서는 동맹과 우호국과의 연대를 구축해 대항할 것으로 보인다. 한·일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역사 인식 문제 관련해 이시바는 기시다 정권 수준 혹은 그 보다 전향적인 태도로 임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는 일본에서 보기 드문 기독교 신자로 야스쿠니신사 참배와는 거리를 두고 있고 징용, 위안부 등 역사 현안에 대해 비교적 온건하고 사려 깊은 언급을 해왔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피해자가 납득할 때까지 사과해야 한다”고 발언한 적도 있다. 적어도 그가 집권하는 동안 일본발 ‘과거사 마찰’의 발생 빈도는 줄어들 것이다.
둘째, 한·일 관계의 발전 전략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니셔티브로 극적으로 개선된 한·일 관계를 어떻게 지속 가능한 것으로 만들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2025년 한·일 수교 60주년을 모멘텀으로 하여 한·일 관계 2.0(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업그레이드 작업) 설계가 당면 과제이다. 김대중-오부치 선언 당시에 비해 한·일 관계와 주변 환경은 크게 변했다. 중국이 초강대국으로 부상해 한·일 관계는 미·중 전략경쟁 관계 속에 놓이게 되었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은 크게 증대됐다. 한·일 관계는 수직적 관계에서 대등한 관계로 바뀌었다. 현재 이같은 구조적 변화에 어울리는 한·일 관계의 새로운 재정립이 요구된다. 한국과의 관계가 지닌 전략적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이시바가 지속 가능한 양국 관계의 발전에 공감할 것으로 기대한다.
셋째, 안보·해양 협력과 관련해 그는 일찍이 ‘아시아판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를 구축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해왔다. 소(小)다자 협력을 중심으로 짜여지고 있는 인도 태평양 지역의 현실을 감안 할 때 그 실현 가능성은 떨어진다. 하지만 현재 한국이 추진하는 한·미·일 안보협력에 적극적인 자세로 임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내년에 지난 1978년 비준된 한·일 대륙붕 공동개발 협정 종료 시한을 맞는다. 한·일 협력에 찬물을 끼얹을 돌발 사태를 예방하기 위한 이시바 정부와의 신중한 사전 협상이 요구되고 있다.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