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포기해도 평화 안 와…북 주민 기댈 언덕만 빼앗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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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연 교수가 본 임종석 ‘2국가론’
문재인 정부의 임종석 전 비서실장이 던진 통일 포기론이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9월 19일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행사에서 그는 “평화를 위해 통일을 하지 말고 따로 살자”라며 “도발적 발제”를 시작했다. 북한의 두 국가론을 수용하되 적대가 아니라 평화적인 관계로 만들고 통일은 후대의 몫으로 남겨두자고 제안했다. 통일을 전제하면 남북의 대립과 갈등이 불가피하니 통일을 유보한 상태에서 화해 협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동북아를 단일경제권으로 만드는 길이 한반도 평화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김정은 두 국가론, 북 패배 인정한 것
그러나 통일 포기론에는 정작 평화가 없다. 통일을 포기한다고 평화가 찾아올 것 같지 않다. 통일 포기 주장의 배경에는 윤석열 정부의 강(强) 대 강(强) 대북 정책과 남한 주도의 통일 의지가 평화를 해치는 주원인이라는 진단이 깔려 있다. 그러나 이는 원인과 결과를 혼동한 오판이다. 한반도 평화를 저해하는 주체는 북한 정권이다. 김정은의 핵 개발이 남북 대립의 원인이며 출발점이다. 남한이 통일을 포기한다고 해도 북한 비핵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대립은 불가피하다. 과연 남한이 헌법에서 통일 조항을 삭제한다고 해서 김정은이 느끼는 위협감이 줄어들까. 남한과의 교류 협력에 나서고 핵을 포기할까. 북한 핵 개발은 취약한 체제의 독재자가 권력을 유지하려는 본능에서 비롯됐다. 두 국가가 된다고 해서 북한의 체제 취약성이 사라질 리 없고 독재자의 권력 유지 본능이 바뀔 것 같지도 않다.
통일 포기론에는 분석이 없다. 임 전 실장은 적대적 두 국가론을 북한의 근본적 노선 전환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거래적 사고에 입각한 국면적 전술에 가깝다. 2016년만 해도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통일을 “가장 절박하고 사활적인 민족 최대의 과업”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생각이 바뀐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이 남한으로부터 얻을 편익은 없어진 데 반해, 남한을 통일의 상대국으로 유지했을 때의 기회비용은 커졌기 때문이다. 제재로 한국의 경제적 지원은 어려워졌다. 북한은 제재 해제에 있어 한국이 미국을 설득해 주기 원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반면 경제난으로 주민의 불만은 증가했고 그럴수록 남한 문화는 모방과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이를 제거해야 정권 유지에 도움이 되겠지만 동포이자 통일의 대상인 남한의 문화를 접하지도 말라는 정책은 설득력을 얻기 어려웠다. 따라서 김정은은 남한을 적대적 관계의 별개 국가라고 규정함으로써 북한 주민의 마음에서 남한을 지우려 한다.
지정학적 변화 가능성 고려안한 단견
북·러 밀착도 통일노선을 전환한 주요 이유다. 김정은은 이전에 한국에서 기대했던 경제적, 외교적 지원을 러시아가 제공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중국은 미국을 의식해 대북제재 위반 수위를 조절하지만, 전쟁으로 급박한 러시아는 눈치 보지 않고 북한을 도와주려 한다. 이제 한국이 없어도 러시아가 있는 한 버틸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국제관계라는 정글에서 지금 같은 북·러 밀착이 무한정 계속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때는 남북 관계를 포기하지 않고 돌아올 다리를 열어둔 남한에 북한이 내심 고마워할 수 있다. 북한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그 변동성도 커졌다. 따라서 통일 포기론은 지정학적 변화의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단견이다.
통일에 대해 고민하고 토론하자는 임 전 실장의 의도는 성공했다. 그동안 북한과 통일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이던 정치권이 갑자기 통일 담론을 소환하고 있다. 그의 발제 중 더 귀를 기울여야 할 내용은 통일의 점진성이다. 급진 흡수통일은 필연적으로 큰 비용을 유발한다. 남한의 20대가 통일을 지지하는 비율이 30%가 채 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교류 협력을 통해 경제공동체를 형성하자는 주장은 보수 정부도 받아들여야 할 제안이다. 이를 비핵화 단계와 통일 단계 사이에 두어 남북 간 경제적 격차를 줄이고 통일비용을 감소하는 ‘플랜 A’를 만들어야 한다. 평화와 비핵화, 경제와 통일 사이의 간격을 좁히고 일관되게 만드는 정책을 찾아야 한다. 임 전 실장의 발표를 계기로 건설적이고 현실적인 담론이 형성된다면 그의 ‘노이즈 마케팅’은 충분한 역할을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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