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속'도 '통합'도 다 놓친 신속통합기획 4년…여의도 시범 등 "철회" 마찰음
신통치 못한 ‘신통기획’
가장 빠른 면목7구역, 입주까지 최소 10년
# 재건축을 추진 중인 서울 강남구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서울시가 신통기획안에 단지 내 공공보행교 조성을 제안하면서 조합원과 자치구 간의 갈등이 시작됐다. 강북을 가로지르는 보행교가 들어서면 단지 내에 외부인이 오갈 수 있는 데다 조합원이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3000억원대에 달하기 때문이다. 조합은 2년 넘게 갈등을 지속하다 최근 보행교 계획을 배제한 자체 정비계획안을 꾸려 강남구에 제출했다. 압구정3구역 조합 관계자는 “보행교의 경우 주민이 이득을 보기 어려운 구조여서 계획안에서 제외했다”며 “당초 2031년 입주를 예상했으나 사업이 지연돼 2032~33년 입주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역점사업 중 하나인 신통기획이 사업 4년 차를 맞은 가운데 ‘신속’과 ‘통합’을 모두 놓친 채 표류하고 있다. 신통기획은 2021년 오 시장이 도시정비사업(재개발·재건축) 정상화를 내걸고 시작한 서울시 대표 사업이다. 서울시가 적극 개입해 통상 5년가량 걸리던 재건축·재개발 ‘정비구역 지정’ 기간을 2년으로 단축하는 제도다. 시가 제시하는 공공·사업 가이드라인을 충족하면 용적률 완화 등의 인센티브도 주어진다.
그러나 4년여 가 지났지만 신통기획으로 재개발·재건축을 진행 중인 124개 지역(3월 말 기준)에서 눈에 띄는 성과가 나온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서울시는 2022년 내놓은 주택 공급 대책 때 2027년까지 신속통합기획으로 10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했으나, 여전히 사업 초기 상태인 곳이 대다수다. 2027년까지 10만 가구를 공급하려면 현시점에서는 적어도 재개발·재건축이 본궤도에 올라야 한다. 하지만 3월말 기준 사업의 첫 단추인 정비계획이 지정된 곳은 17곳에 불과하다. 상황이 이렇자 서울시의회는 신통기획 지연 요인을 점검하고 개선 방안 마련을 위한 연구용역을 시작했다.
서울시는 당초 전체 재개발·재건축 사업 과정 중 5년가량 소요되는 정비구역지정 절차를 2년 이내로 축소하면 공급 속도가 개선되리라 예측했다. 하지만 재개발·재건축은 추진위원회 설립, 조합 설립, 사업 인가, 이주 및 철거 등 최소 9~10여 단계를 거쳐야 해 예상처럼 ‘신속’한 결과물이 나오기 어려운 구조다. 본지가 서울시 내 정비사업을 추진 중인 412곳의 재개발·재건축 추진 단계별 소요 기간을 분석한 결과 추진위 설립 이후 착공까지는 평균 14.66년이 소요됐다. 신통기획으로 정비구역 지정 기간이 당겨진다고 해도 실제 결과물이 나오려면 최소 10~15년의 시간이 더 필요한 셈이다.
실제 지난해 신통기획안을 확정해 올해 1월 정비구역이 지정된 중랑구 면목7구역은 신통기획 중 가장 속도가 빠른 곳으로 꼽히지만, 실제 입주까지 최소 10년 이상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면목7구역 관계자는 “구체적인 이주 계획이나 착공 등의 계획을 세우기엔 아직 사업 초기 단계”라며 “서울시에서도 최대한 빠른 추진을 위해 협조하고 있지만, 신통기획이라는 명칭만큼의 신속함은 체감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올해 2월 정비구역이 지정된 도봉구 쌍문3구역도 사업 속도에 대한 기대감은 사라진 지 오래다. 쌍문3구역 인근 공인중개사 이모씨는 “이주를 부담스러워하는 주민이 많아 사업 속도가 더디다”며 “이주하고 착공까지 적어도 6~7년은 더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 간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신통기획은 도시정비사업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기획 단계에서 서울시가 도움을 주는 만큼, 기부채납 일환으로 데이케어센터 등 공공시설 설치가 필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주민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해 주민과 자치구 간 충돌이 확산하고 있다. 특히 집값이 비싼 여의도나 강남·송파구 등지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공공보행교, 덮개공원 등으로 골머리를 앓는 압구정3구역의 한 조합 관계자는 “신통기획을 도입했다고 하지만 엄연히 민간사업인데 이렇게까지 (서울시가) 밀어붙이는 게 맞느냐”며 “재건축을 촉진해 도시를 정비하려는 건지, 주민과의 분쟁을 키우려는 건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여기에 부동산 공사비 상승, 경기 부진까지 겹치면서 서울시가 당초 예상한 사업성과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건설공사비지수는 130.1로 2021년 7월 대비 15.7% 상승했다. 김태수 서울시의원(더불어민주당)은 “공사비 인상으로 인해 추정분담금이 상승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오른 추가분담금을 과연 주민이 납득할 수 있느냐가 큰 문제”라며 “(시의회에서) 서울시에 용적률 추가 상향, 기부채납 비율 완화 등을 제안하고 있으나 추진 동력이 약화한 것도 사실”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서울시 관계자는 “공급 목표대로 순항하고 있다”며 “기획 이후 주민 갈등까지 서울시가 관여할 수는 없다”고 답했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신통기획의 성공 여부는 서울시가 얼마나 합리적인 타협책을 내놓느냐에 달려 있다”며 “임대주택이나 기부채납 비율을 양보할 수 없다면 임대주택 매입 단가를 현실화하는 등 사업 이탈을 막을 현실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오유진 기자 oh.y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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