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속'도 '통합'도 다 놓친 신속통합기획 4년…여의도 시범 등 "철회" 마찰음

오유진 2024. 9. 28.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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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통치 못한 ‘신통기획’
신속통합기획으로 재건축을 추진 중인 여의도 시범 아파트에 신통기획 반대 현수막이 붙어 있다. 오유진 기자
# “속은 거 맞잖아요. 용적률 높여준다고 해놓고 갑자기 데이케어센터(노인돌봄시설) 얘기를 꺼낸 거니까.”(여의도 시범아파트 주민) 서울시 1호 신속통합기획(신통기획) 사업지인 여의도 시범아파트 외벽에는 1년 넘게 ‘신통기획 1호 속았다!’ ‘무리한 기부채납!’ 등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지난해 서울시가 내놓은 신통기획안에 단지 내 데이케어센터 건립안이 포함된 것에 주민들이 반발하면서 현수막이 붙은 지 오래지만 서울시와 주민 간 갈등은 답보 상태다. 시범아파트 내 S부동산 관계자는 “서울시 요구대로 신통기획안을 따르지 않으면 재건축이 무산될 가능성이 커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라며 “주민들은 (신통기획으로) 사업이 순항할 것이란 기대보다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걸림돌이 더 등장할지를 걱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가장 빠른 면목7구역, 입주까지 최소 10년
# 재건축을 추진 중인 서울 강남구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서울시가 신통기획안에 단지 내 공공보행교 조성을 제안하면서 조합원과 자치구 간의 갈등이 시작됐다. 강북을 가로지르는 보행교가 들어서면 단지 내에 외부인이 오갈 수 있는 데다 조합원이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3000억원대에 달하기 때문이다. 조합은 2년 넘게 갈등을 지속하다 최근 보행교 계획을 배제한 자체 정비계획안을 꾸려 강남구에 제출했다. 압구정3구역 조합 관계자는 “보행교의 경우 주민이 이득을 보기 어려운 구조여서 계획안에서 제외했다”며 “당초 2031년 입주를 예상했으나 사업이 지연돼 2032~33년 입주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역점사업 중 하나인 신통기획이 사업 4년 차를 맞은 가운데 ‘신속’과 ‘통합’을 모두 놓친 채 표류하고 있다. 신통기획은 2021년 오 시장이 도시정비사업(재개발·재건축) 정상화를 내걸고 시작한 서울시 대표 사업이다. 서울시가 적극 개입해 통상 5년가량 걸리던 재건축·재개발 ‘정비구역 지정’ 기간을 2년으로 단축하는 제도다. 시가 제시하는 공공·사업 가이드라인을 충족하면 용적률 완화 등의 인센티브도 주어진다.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당시 오 시장은 전임 시장 시절 경직됐던 정비사업을 정상화하기 위해 신통기획을 제시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서울의 30년 이상 노후 아파트는 42만 가구로 전체 아파트의 25.6%에 달하는데, 서울시는 이런 노후 단지를 개선하고 주택 공급을 늘리는 방법으로 신통기획을 제시했다. 정비구역지정 기간을 줄여준 데다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어 사업 초기 재개발·재건축 추진 단지로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4년여 가 지났지만 신통기획으로 재개발·재건축을 진행 중인 124개 지역(3월 말 기준)에서 눈에 띄는 성과가 나온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서울시는 2022년 내놓은 주택 공급 대책 때 2027년까지 신속통합기획으로 10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했으나, 여전히 사업 초기 상태인 곳이 대다수다. 2027년까지 10만 가구를 공급하려면 현시점에서는 적어도 재개발·재건축이 본궤도에 올라야 한다. 하지만 3월말 기준 사업의 첫 단추인 정비계획이 지정된 곳은 17곳에 불과하다. 상황이 이렇자 서울시의회는 신통기획 지연 요인을 점검하고 개선 방안 마련을 위한 연구용역을 시작했다.

서울시는 당초 전체 재개발·재건축 사업 과정 중 5년가량 소요되는 정비구역지정 절차를 2년 이내로 축소하면 공급 속도가 개선되리라 예측했다. 하지만 재개발·재건축은 추진위원회 설립, 조합 설립, 사업 인가, 이주 및 철거 등 최소 9~10여 단계를 거쳐야 해 예상처럼 ‘신속’한 결과물이 나오기 어려운 구조다. 본지가 서울시 내 정비사업을 추진 중인 412곳의 재개발·재건축 추진 단계별 소요 기간을 분석한 결과 추진위 설립 이후 착공까지는 평균 14.66년이 소요됐다. 신통기획으로 정비구역 지정 기간이 당겨진다고 해도 실제 결과물이 나오려면 최소 10~15년의 시간이 더 필요한 셈이다.

실제 지난해 신통기획안을 확정해 올해 1월 정비구역이 지정된 중랑구 면목7구역은 신통기획 중 가장 속도가 빠른 곳으로 꼽히지만, 실제 입주까지 최소 10년 이상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면목7구역 관계자는 “구체적인 이주 계획이나 착공 등의 계획을 세우기엔 아직 사업 초기 단계”라며 “서울시에서도 최대한 빠른 추진을 위해 협조하고 있지만, 신통기획이라는 명칭만큼의 신속함은 체감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올해 2월 정비구역이 지정된 도봉구 쌍문3구역도 사업 속도에 대한 기대감은 사라진 지 오래다. 쌍문3구역 인근 공인중개사 이모씨는 “이주를 부담스러워하는 주민이 많아 사업 속도가 더디다”며 “이주하고 착공까지 적어도 6~7년은 더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 간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신통기획은 도시정비사업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기획 단계에서 서울시가 도움을 주는 만큼, 기부채납 일환으로 데이케어센터 등 공공시설 설치가 필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주민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해 주민과 자치구 간 충돌이 확산하고 있다. 특히 집값이 비싼 여의도나 강남·송파구 등지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공공보행교, 덮개공원 등으로 골머리를 앓는 압구정3구역의 한 조합 관계자는 “신통기획을 도입했다고 하지만 엄연히 민간사업인데 이렇게까지 (서울시가) 밀어붙이는 게 맞느냐”며 “재건축을 촉진해 도시를 정비하려는 건지, 주민과의 분쟁을 키우려는 건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뉴타운처럼 희망 고문만 하다 사라질 판”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초 내놓은 신통기획안을 수정하거나 사업 신청을 철회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신통기획 1호 사업지였던 송파구 오금동 현대아파트는 서울시가 제시한 높은 임대주택 비율로 사업을 중단하려다 전용면적 변경 등으로 비율을 낮춰 사업을 추진 중이다. 각각 2022년과 2023년 신통기획을 추진했던 강남구 대치동 선경1·2차 아파트와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4차 아파트는 주민 반대로 아예 신통기획을 철회, 일반 재건축으로 방향을 틀었다. 서울 송파구의 한 재건축조합 관계자는 “인센티브를 준다고 해놓고선 서울시의 요구 사항만 한가득이었다”며 “신통기획은 과거 뉴타운처럼 희망 고문만 하다 또 사라질 사업”이라고 비판했다.

여기에 부동산 공사비 상승, 경기 부진까지 겹치면서 서울시가 당초 예상한 사업성과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건설공사비지수는 130.1로 2021년 7월 대비 15.7% 상승했다. 김태수 서울시의원(더불어민주당)은 “공사비 인상으로 인해 추정분담금이 상승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오른 추가분담금을 과연 주민이 납득할 수 있느냐가 큰 문제”라며 “(시의회에서) 서울시에 용적률 추가 상향, 기부채납 비율 완화 등을 제안하고 있으나 추진 동력이 약화한 것도 사실”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서울시 관계자는 “공급 목표대로 순항하고 있다”며 “기획 이후 주민 갈등까지 서울시가 관여할 수는 없다”고 답했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신통기획의 성공 여부는 서울시가 얼마나 합리적인 타협책을 내놓느냐에 달려 있다”며 “임대주택이나 기부채납 비율을 양보할 수 없다면 임대주택 매입 단가를 현실화하는 등 사업 이탈을 막을 현실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오유진 기자 oh.y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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