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국제영화제 내달 2일 개막…키워드 7 아시아 최대 영화 축제인 부산국제영화제가 10월 2일 개막한다. 지난해 내홍 끝에 수뇌부 없이 간신히 치러졌지만, 2월 위촉된 박광수 이사장 체제로 무사히 29회 째를 맞게 됐다. 올해는 국고보조금이 반토막 났지만 대중성을 강화하고 트렌드를 반영해 오히려 화제작이 풍년이다. 지난해보다 8% 늘어난 63개국 224편의 공식 초청작이 11일까지 영화의전당 등 7개 극장에서 상영된다. ‘부국제 2024’의 관전포인트는 뭘까. 방대한 라인업을 7개의 키워드로 분석하고, 정한석·박가언 부산영화제 프로그래머가 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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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
박찬욱의 ‘전, 란’ 넷플릭스 첫 개막작
시작부터 플랫폼 파괴다. 박찬욱 각본·제작 ‘전, 란’(감독 김상만)이 넷플릭스 영화 최초로 개막작을 차지한 건 OTT 헤게모니를 방증하는 사건이다. ‘전, 란’은 임진왜란기 엇갈린 두 남자의 운명을 화려한 전투 액션으로 포장한 장대한 서사다. 강동원·박정민의 연기 대결이 주목되는 ‘역대 가장 대중적인 개막작’이다.
OTT 시리즈 부문인 ‘온스크린 섹션’도 확장됐다. 일본 톱스타 사카구치 켄타로의 ‘이별, 그 뒤에도’, 대만 배우 겸 감독 옌이원의 ‘스포트라이트는 나의 것’ 등, 일본과 대만의 넷플릭스 시리즈가 처음 공식 초청됐고, ‘비밀의 숲’ 스핀오프 시리즈인 ‘좋거나 나쁜 동재’ 등 티빙 오리지널도 2개다. 연상호 감독의 ‘지옥2’는 사이비교주 역에 유아인 대신 투입된 김성철의 연기가 관전포인트다.
시리즈 부문 시상식인 아시아콘텐츠어워즈 & 글로벌OTT어워즈(10월 6일)도 강화된다. 주·조연상 부문에 더해 관객이 직접 참여하는 ‘피플스 초이스상’과 ‘음악상’을 신설, 15개 부문을 시상한다. ‘선재업고 튀어’의 변우석, ‘아이러브유’의 채종협이 신인상 후보에 오르며 화제성을 담당한다.
●정한석: 이제 OTT는 문화의 중요한 일부가 됐고, 세계 많은 영화제들이 OTT 작품들을 무리 없이 상영하고 있다. 최근 전통적인 영화의 영역을 대표해 온 많은 한국 영화인들도 OTT 영화와 시리즈에 활발히 참여 하고 있다. 이런 흐름에서 부산국제영화제도 다양한 방식으로 영화 창작자들과 관객의 문화 속에 깊이 자리 잡은 OTT 작품을 중요 상영작으로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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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
고메스 전작, 구로사와 신작 2편 소개
올해 영화제가 집중 조명하는 거장은 포르투갈 감독 미겔 고메스다.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대작 ‘그랜드 투어’는 도망친 약혼자를 찾아 미지의 세상으로 떠나는 이야기로 단선적 내러티브에 집착하는 할리우드적 관습을 박살냈다는 평가다. 장편 전작 8편을 소개하는 특별기획 프로그램과 마스터클래스도 연다.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은 ‘봉준호가 사랑하는 호러 거장’ 구로사와 기요시(사진)에게 준다. 올해 ‘뱀의 길’과 ‘클라우드’ 등 신작을 2편이나 냈다. 13년 만에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미국영화로 주목받은 숀 베이커 감독의 ‘아노라’는 성매매 노동자의 결혼 소동을 통해 뿌리깊은 계급 사회의 초상을 유쾌하게 폭로한다.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스페인 거장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첫 영어 영화 ‘룸넥스트도어’는 삶과 죽음에 대한 가치관이 다른 두 여성(틸다 스윈튼·줄리언 무어)이 안락사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박가언: 올해는 특정 국가전이 아니라 특정 아티스트의 작품 세계를 집중 조명한다. 전작 전을 마련한 미겔 고메스는 ‘타부’(2012) 이후 구축한 뚜렷한 세계를 확인할 수 있고, 영화제가 오래 전부터 공들여 온 구로사와 기요시의 진면목을 신작 2편으로 만날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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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성
오픈시네마로 고독한 미식가 극장판
대중적인 라인업도 탄탄하다. 한국 상업영화 프리미어를 5편으로 확장했다. 장동건·설경구·김희애·수현이 미묘한 가족 케미로 인간의 자격을 묻는 허진호 감독의 ‘보통의 가족’, 송중기 주연의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 정우·김대명 주연의 형사 누아르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 등이다. 일본의 인기 시리즈 ‘고독한 미식가’ 극장판은 5000석 규모 오픈시네마에서 상영하고, 주연 배우 겸 감독 마츠시게 유타카도 내한한다. 데미 무어가 파격 누드로 열연한 ‘서브스턴스’는 젊음과 아름다움을 향한 잔혹한 욕망을 그려 칸영화제 관객을 열광시키며 13분간 기립박수를 받고 각본상을 수상했다. 올해 인도 최고의 흥행작 ‘칼키 AD2898년’는 인도 역사상 가장 큰 1000억원의 제작비를 투입한 SF영화로, 인도 신화와 디아스포라 세계관을 엮어 북미까지 열광시켰다.
●박가언: 영화제에도 어렵지 않고 직관적인 영화에 대한 니즈가 있다. 코로나 이후 극장 개봉 수익으로 재투자가 이뤄지는 선순환 구조가 깨지고 장기 침체에 빠진 한국영화를 응원하는 차원에서 상업영화 프리미어를 확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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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vs 고양이
고스트캣 앙주·플로우 애니 2편 격돌
칸 영화제에 초청됐던 고양이 주연 애니메이션 2편이 맞붙는다.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고스트캣 앙주’는 엄마를 그리워하는 소녀와 아재 고양이 요괴의 만남으로, 지브리 고전 ‘이웃의 토토로’가 떠오르는 일본 애니다.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 등 총 4개 부문을 수상한 ‘플로우’는 대홍수 이후 고양이와 동물 친구들의 모험담인데, 대사 없이 음악과 영상으로 승부하는 예술적인 영화다. 라트비아의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이 ‘미야자키 하야오를 이을 애니메이션 거장’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박가언: 세계적으로 동물영화가 많아지는 추세를 반영한다. 칸영화제에선 가장 연기를 잘한 개에게 주는 ‘팔므 도그’라는 상이 경쟁이 치열할 정도로 동물영화가 사랑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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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BTS RM 다큐, K팝 영화 첫 초청작
야외극장에서 대규모 상영되는 오픈시네마 섹션에 BTS RM의 다큐멘터리 ‘알엠: 라이트 피플, 롱 플레이스’가 선정되어 화제다. 솔로 2집을 만드는 음악적 여정과 진솔한 인터뷰가 담겼다. K팝 영화가 공식 초청작으로 선정된 것은 최초로, K팝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셈이다. 아티스트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매체로 뜨고 있는 K팝 다큐가 이로써 엄연한 장르가 됐다.
●박가언: 음악 다큐는 콘서트 필름이 많고 최근 국내외에서 출품 문의가 많지만, RM 다큐는 군 입대를 앞두고 솔로 앨범을 완성하는 과정을 따라가는 성장영화라 결이 다르다. 다양한 음악 다큐가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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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균
대표작 6편에 스페셜 토크로 추모장
고 이선균이 ‘올해의 한국영화공로상’을 받고, 특별기획 프로그램 ‘고운사람, 이선균’에서는 대표작 6편을 상영하고 스페셜 토크를 진행한다. 영화 ‘파주’(2009)부터 ‘기생충’(2019), ‘행복의 나라’(2024), 드라마 ‘나의 아저씨’까지 스크린으로 일부 상영된다. 이선균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는 추모의 장이다.
●정한석: 동시대 한국영화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이선균 배우가 지난 해 말 갑작스럽게 타계했다. 유가족의 전적인 동의와 지인·영화계·관객의 응원과 지지를 바탕으로 특별전을 마련했고, 이미 매진 사례다. 그는 칸 영화제 감독 주간에 초청 되었던 ‘끝까지 간다’를 시작으로 작년 한 해만 해도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잠’ 두 편으로 칸 영화제에 방문하며 한국 영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한 만큼 한국영화공로상 수상자로 적합하다 판단되었다.
━ 동남아 천만명 울린 태국 걸작 ‘할머니가…’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인 동남아의 기세도 확인할 수 있다. 태국 스타 빌킨 푸티퐁이 주연한 ‘할머니가 죽기 전에 백만장자가 되는 법’은 태국을 넘어 7개국 1000만 명을 울리며 역대 태국 영화 수익 1위를 기록했다. 유산 상속을 둘러싼 할머니와 손자의 휴먼 드라마가 눈에 고춧가루를 팍팍 뿌려준다. 폐막작인 ‘영혼의 여행’도 상징적이다. 가수와 팬의 영혼이 사후에 만나는 이야기로, 싱가포르의 에릭 쿠 감독이 프랑스 배우 카트린느 드뇌브 주연으로 일본에서 찍은 3국 공동 제작이다. 에릭 쿠는 싱가포르 최초로 칸·베를린·베니스영화제에 모두 초청돼 문화훈장을 받았다.
●박가언: 변방 취급 받던 동남아에서 유럽 시장까지 진출하는 창작자가 나오는 상황에 부산영화제가 크게 기여했다. 초창기부터 아시아 영화를 간판으로 걸고 아카데미 등을 통해 동남아 신인들의 네트워킹과 공동제작을 지원한 결과 동남아 영화는 지금 폭발 직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