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탱한 대하, 살이 꽉 찬 꽃게… 천수만 가로질러 싱싱한 초가을을 맛봤다
홍성&서산으로 떠난
가을 제철 여행
하루아침에 가을이 훅 들어온 것 같다. 9월 말에 초가을 여행에 나선다. 충남 서부 또는 서북부를 아우르는 내포 지역, 그중에서도 홍성과 서산은 서해와 내륙을 오가며 가을을 만끽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제철 맞은 꽃게와 대하를 핑계로 떠났다. 가을 별미와 드라이브 코스, 섬과 산을 모두 즐길 수 있는 그곳으로.
◇대하·꽃게 제철 맞은 서해 어장
기록적인 더위를 견디고 혀끝으로 맛본 가을은 달기만 하다. 파닥파닥 튀어오르던 대하가 냄비 안 천일염 위에서 힘을 잃고 장렬하게 소금구이로 전사(?)해 가는 동안 창밖 홍성 남당항 앞바다는 조금씩 펄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대하가 익어갈 때쯤 한 손엔 가위, 한 손엔 집게를 들고 나타난 ‘미소수산’ 주인이 능숙한 솜씨로 대하 머리와 몸통을 해체·분리해주며 한마디 한다. “싱싱한 가을 대하는 이렇게 껍질도 잘 까지고, 살이 탱탱하며 감칠맛이 살아 있어서 한번 맛본 손님들은 매년 대하 축제에 맞춰 다시 찾곤 하드라고유~.”
10월 31일까지 대하 축제가 열리는 남당항은 요즘 식당마다 대하구이 향이 가득하다. 꽃게와 전어도 있지만, 이맘때 이 구역 주인공은 대하다. 70여 개의 점포가 모여 있는 ‘남당항 해양수산복합센터’(남당항 수산 시장) 내 수족관과 판매대마다 대하가 “남당리 자연산 대하 나왔슈~” 하며 풍년을 알리는 것 같다. 수산 식당 주인들은 “올여름에 높은 수온이 이어져 걱정이 컸는데, 다행히 작년보다 자연산 대하 어획량이 늘고 씨알도 굵은 편”이라고 했다. 날마다 가격 변동이 좀 있지만, 9월 25일 기준 1kg당 양식 대하는 5만5000원(포장 3만5000원) 선, 자연산 대하는 6만~7만원(포장 5만5000원) 선에 판매됐다.
9월 초 대형마트들 사이에서 가격 인하 경쟁이 치열해 일명 ‘꽃게 대전’이라는 말까지 나왔던 꽃게는 알려진 것과 달리 평년 수준. 1kg당 3~4만원 선이다. “딱히 싸지도 않은 것 같다”는 손님의 말에 상인은 “꽃게 어획량이 작년보단 못하지만, 살이 제법 꽉 차고 맛있다”며 흥정을 건넨다.
상인들 말처럼 남당항 수산 시장도 고수온 여파가 반영되고 있다. 해양수산부 수산정책실에 따르면 최근 몇 년간 수온이 계속 오르면서 작년 꽃게 어획량이 최고치를 기록했기 때문에 어획량으로 따지면 작년에 못 미치지만 9월 둘째 주 기준 어획량은 평년 수준이다. 오히려 작년 대비 몸값이 비싸진 건 전어다. 어획량이 대폭 줄어 남당항 수산 시장 ‘시세’는 1kg당 4만~5만원(포장 3만5000원) 선으로 귀한 취급을 받고 있다. 일부 시장 상인들 사이에선 “가을 전어 실종”이라는 말까지 오가는 중이다. 이렇다 보니 식당마다 전어구이를 단일 메뉴로 내세우기보단 대하구이에 맛보기용 전어가 포함된 세트 메뉴(2인 8만원부터)를 추천한다.
남당항 해양수산복합센터 내 식당들은 대부분 바다 전망 좌석이 있다. 창가에 앉아 대하, 전어구이를 맛보고 대하와 꽃게를 추가한 해물칼국수까지 곁들이면 서해 가을 별미를 코스식으로 즐길 수 있다.
◇죽도 둘레길 걷고, 어사리공원서 캠크닉
천수만에 있는 남당항은 계절에 따라 꽃게·새조개·주꾸미·바지락·바다 송어 등이 풍부한 국가 어항으로 꼽힌다. 대하 축제 기간엔 축하 공연과 대하 잡이 체험, 대하 까기 대회, 대하 경매, 야시장 등이 펼쳐진다. 번잡한 축제장을 벗어나 시원한 바닷바람 맞으며 짧고 굵게 섬 여행을 즐기고 싶다면 홍성 유일의 유인도인 ‘죽도’로 가볼 만하다. 남당항 죽도 매표소에서 배를 타고 10분, 직선거리로는 2.7㎞ 떨어져 있다. 20여 가구 40여 명이 사는 죽도는 무공해 청정 섬으로 걷기에 그만이다. 특히 주변의 작은 섬들은 물이 빠지면 걸어서 오갈 수 있다.
죽도(竹島)란 이름처럼 대나무가 많다. 서해와 동해에 동명의 섬이 여럿 있지만, ‘신증동국여지승람’ 속 죽도는 “홍주현의 서쪽 19리에 있으며 토산품으로는 대나무와 죽전(대나무 화살)이 많이 난다”고 기록돼 있다. 섬 전체가 하늘을 향해 곧게 자란 대나무로 둘러싸여 절경이다.
3km의 섬 둘레길은 죽도 선착장에서 시작해 제1조망대, 댓잎소리길, 파도소리길, 제3조망대, 죽도 쉼터를 거치는 코스다. 전체적으로 완만한 구간이 이어져 남녀노소 함께 걷기에도 부담 없다. 깜찍한 형상의 한용운 조형물, 등대, 해안 산책로 등이 다양하게 등장해 걷는 재미가 있다. 그늘이 부족하니 모자나 양산을 챙기는 게 좋다. ‘홍주해운’이 휴무일인 화요일을 제외하고 평일 하루 5차례, 주말 6차례 남당항과 죽도 선착장을 오간다. 승선료는 대인 왕복 1만원이며 기상 상태에 따라 운항 여부가 달라질 수 있으니 승선 전 문의(041-631-0103) 필수.
남당항에서 궁리항 방향으로는 임해관광해안도로가 이어진다. 북상하면 지난 5월 문을 연 서해 전망대 ‘홍성 스카이타워’와 ‘어사리노을공원’을 지난다. 어사리노을공원은 홍성 캠크닉(캠핑과 피크닉의 합성어) 성지다. 간이 캠핑 테이블과 의자를 펴고 노을을 감상하는 이들이 흔하다. 서해랑길 63코스에 있어 자전거 동호인들에겐 지나칠 수 없는 ‘오션 뷰’ 쉼터. 지난 8월 궁리항 바다 위 5000여 ㎡ 규모의 해상 테마파크인 ‘놀궁리해상파크’도 개관했다. 궁리항 낙조를 색다르게 감상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전망대이니 지나가는 길에 들러볼 만하다.
◇숨은 전망대 ‘백월산’으로
홍성의 바다와 실컷 마주했다면 내륙으로 시선을 돌릴 차례다. 가을의 시작과 함께 오서산에 이어 백월산(白月山)으로 등산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궁리항에서 백월산까지는 차로 20~30분 거리. 백월산은 홍성읍 월산리, 구항면 오봉리, 홍북읍 중계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 394.3m다. 등산으로만 정상에 닿을 수 있는 오서산과 달리, 백월산은 임도를 따라 차로 정상부까지 진입해 코끼리바위 인근에 주차(최대 5대 정도) 후 1~3분만 걸으면 된다. ‘1분 컷 정상 정복 코스’로 불릴 만큼 접근성이 좋아 ‘등산은 싫지만, 전망 감상은 포기할 수 없다’는 젊은 층의 발걸음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백월산 정상을 찾은 김하나(28)씨는 “홍성 여행의 ‘최애(가장 사랑하는)’ 코스”라고 했다.
정상에 서면 동쪽으로 홍성 시내가, 서쪽으로 간척지의 황금 들녘 등 천수만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많이 알려진 오서산처럼 방향에 따라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볼 수 있는 전망대다. 운이 좋으면 운해도 만날 수 있다. ‘내포역사인물길’ 2코스 중 하나로 정상에서 남쪽으로 2.8km 지점에 병오의병비가, 북쪽으로 2.8km 지점에 이응노의 집(고암 이응노 생가 기념관)이 있다.
털썩 주저앉아 노을까지 감상한 뒤 하산하고 싶어도 길이 좁아 운전에 주의해야 한다. 해 지기 전에 내려오는 게 상책. 등산을 택할 경우 ‘용화사’ 부근을 출발점으로 삼으면 정상까지 2~3시간 걸린다. 백월산에서 차로 20~30분 거리에 한용운 생가지 역사공원, 김좌진 장군 생가 백야기념관도 있어 역사 인물 코스를 짜는 것도 알차다.
◇천수만 가로질러 간월암, 벌천포까지
홍성 궁리항과 서산 간월암은 천수만로 ‘서산A지구 방조제’로 이어져 연계 관광을 즐기기에 만만하다. 차로 방조제를 통하면 10분 거리 이내다. 천수만로를 달리다 보면 차창 너머 파란 가을 하늘 아래 평야가 펼쳐지고, 길가엔 코스모스가 군무를 추며 반긴다. 양옆으로 바다를 두고 달릴 땐 스트레스가 바람과 함께 날아가는 기분이다.
간월도에 있는 간월암은 서산의 9경 중 하나로 꼽힌다. 홍성 궁리항과 함께 서해 낙조로 유명하다. 물때에 따라 다양한 풍광이 펼쳐진다. 바닷물이 들어오면 작은 섬이 되고 빠지면 육지가 된다. 밀물 때 바다에 뜬 듯한 암자나 썰물 후 펄에 고인 바닷물에 투영된 암자의 풍경 사진을 얻기 위해 사진동호인들이 수시로 발걸음 한다.
간월도(看月島)의 옛 명칭은 ‘피안도(彼岸島)’. 1300년 전 원효가 창건하고 조선 초 무학대사가 중창하며 달빛을 보고 득도했다고 해 ‘간월암’으로 이름 붙였다고. 암자의 역사는 ‘무학대사 지팡이’라 불리는 250년 수령의 사철나무 앞에 자세히 기록돼 있다. 사방이 천수만 전망대나 다름없다. 범종 뒤로 빨간 등대가 원근감 있게 보이는 풍경도 색다르다. 물때에 따라 입도 시간이 달라지기에 간월암 홈페이지에서 공지 사항을 확인하고 방문하자.
간월암을 빠져나오면 도로 주변으로 굴 요리 전문 식당들이 촘촘하게 이어진다. 아름다운 풍경에 힐링하고, 양념장 넣고 슥슥 비벼 먹는 든든한 영양굴밥 한 그릇은 보약이나 다름없다.
해가 느슨하게 기울기 시작할 즈음 상경길에 서산의 숨은 낙조 코스를 찾는 것도 방법이다. 그중 ‘벌천포’는 캠핑과 차박 성지로 소문났다. 평일에도 바닷가 주변으로 ‘노을 1열 감상’을 위한 차들이 빼곡하다. 해변을 품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쪽으로는 노을이 지고, 동쪽으로는 흰발농게 조형물 아래로 물이 차오른다. 흰발농게는 이곳에 서식하는 멸종위기종. 찰랑찰랑 밀려드는 소리를 들으며 ‘물멍’ 할 때쯤 근처 풀숲 어디선가 귀뚜라미가 울기 시작한다. 늦게 온 가을밤이 깊어간다.
[ 읍성에서 디제잉, 바비큐 파티까지? ]
가볼만한 홍성&서산 읍성 축제
충남 서산의 대표 명소인 ‘서산해미읍성’에서는 10월 2일부터 5일까지 ‘서산해미읍성축제’가 열린다. 전북 고창읍성, 전남 낙안읍성과 함께 원형이 잘 보존돼 3대 읍성 중 하나로 꼽히는 서산해미읍성은 1421년(세종 3년)에 완성돼 600년 넘는 역사를 간직해오고 있다. 올해 주제는 ‘고성방가(古城放佳) 시즌2′. 고성방가란, ‘옛 성에서 아름다움을 풀어놓다’는 뜻이다. ‘읍성을 열고 지혜를 만나자’는 슬로건에 맞게 해미읍성에 숨어 있는 선조들의 지혜를 알리고, 읍성을 함께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청허정’에선 조선시대 화가 안견의 ‘몽유도원도’에서 영감을 얻은 미디어아트 ‘몽유송원’과 힐링 요가 프로그램이, ‘지혜 공연 마당’에선 가수 김희재와 린, 한이재, 비와이 등이 출연하는 ‘해미 지혜 콘서트’와 배우 박해미의 뮤지컬 콘서트, 클래식, 세계 민속 공연 등이 기다린다. ‘동헌 무대’는 충남무형유산과 지역 예술 공연장으로 변신하고, ‘해미지혜마을’은 전통문화 체험장이 된다. 읍성을 무대로 EDM DJ 공연을 펼치는 ‘고성 댄스파티’도 이색적이다. ‘1935년 해미읍성 사진 전시’ 등 역사와 정체성을 알리는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축제 기간 해미읍성 ‘진남문’ 앞엔 ‘해미해피테이블’ 150개가 들어서 지역 유명 맛집의 음식들도 한자리에서 맛볼 수 있다. 뻥튀기를 활용한 ‘주먹뻥밥’ 등 전투식량도 선보인다.
11월 3~5일 홍성읍 홍주읍성 일대에서 열리는 ‘글로벌 바비큐 페스티벌’도 눈여겨볼 일이다. 홍성의 한우·한돈·닭 등 축산물을 알리고 바비큐를 즐기는 축제다. 조선후기 화로에 고기를 구워 먹던 풍습을 재현한 ‘조선 바비큐 난로회’ 체험을 비롯해 홍성 마늘 소시지 만들기 체험, 바비큐 인생 사진 체험 등 이색 체험뿐 아니라 바비큐 해체 쇼 등 볼거리가 풍성하다. EDM DJ 파티, 뮤지컬, 버스킹, 트로트 공연은 덤. 깊어가는 가을밤에 야외에서 바비큐 실컷 먹으면서 공연까지 즐길 기회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朝鮮칼럼] 이 대표의 민주주의 對 재판부의 민주주의
- [태평로] 6개월 되도록 연금 논의기구도 못 만든 국회
- [데스크에서] 한국은 ‘트럼프 취약국’ 아니다
- [김윤덕이 만난 사람] 끝나지 않은 ‘정율성 공원’… 민주화 聖地가 왜 6·25 전범 추앙하나
- 페이커로 본 리더의 자격 [여기 힙해]
- [민태기의 사이언스토리] CQD와 SOS… 타이태닉 침몰엔 과학이 숨기고 싶은 얘기가 있다
- [조용헌 살롱] [1470] 일론 머스크의 神氣
-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237] 패자의 승복
- [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45] 가을
- [기고] 자녀 많으면 배우자 상속세 늘어나는 불합리 바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