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움 두 배, 행복도 두 배? ‘애개 육아’의 현실은…
요즘 육아 핫콘텐츠
애와 개 함께 키우기
장밋빛 볼이 통통한 아기가 꼼지락대다 나비잠에 빠져든다. 이를 지켜보던 갈색 털에 까만 눈망울의 강아지가 같은 베개에 머리를 얹고 스르르 눈 감는다.
그 평온함과 달콤함에 보는 이의 심장이 녹아내린다. 댓글 창에 불이 난다. “어머, 이제 쿠키가 ‘남동생’을 재우네요! 누나라고 엄마를 돕나 봐요.” “남매가 같이 있으니 귀여움 폭발이네요. 애개 육아 너무 부러워요~”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블로그와 숏폼 등 소셜미디어에서 ‘애개 육아’ 인기가 뜨겁다. 애개 육아는 애와 개, 즉 어린 자녀와 반려견을 함께 키우는 것을 뜻한다. 이 해시태그를 단 콘텐츠가 하루 수백, 수천 개씩 쏟아진다. 사진 한두 장, 몇 초 동영상에도 조회 수 수십만 개는 가뿐하다. 주로 20~40대 여성들 취향을 저격한다.
광고업계엔 Baby(아기)·Beast(동물)·Beauty(미인) 삼박자가 소비자의 본능적 관심을 끌고 호감을 준다는 ‘3B 불패’ 법칙이 있다. 애개 육아엔 두 개의 B가 갖춰져 있다. 애개 육아를 한다는 여자 연예인들이 예쁜 외모까지 내세워 흥행 삼위일체를 만들기도 한다.
요즘 육아는 장비발이다. 대가족 도움 없이 홀로 육아를 해내는 젊은 부모들은 육아템부터 갖춰야 애든 개든 키운다. 그래서 애개 육아 시장도 급성장한다. 아기와 강아지를 함께 태울 수 있는 애개 유모차가 출시됐다. 개 접근을 차단하는 아기 안전문과 펜스, 기어다니는 아기와 슬개골 탈구가 염려되는 소형견을 동시에 보호할 수 있는 애개 전용 바닥 매트도 나왔다.
유명 호텔은 ‘애개 패키지’를 내놓는다. 어린이와 반려동물을 받아주는 애개 카페와 식당, 캠핑장도 들어선다. 아기 키우는 집의 개를 훈련하는 전용 트레이너들도 있다. 한 반려견 조련사는 최근 ‘애개육아지도연구소’란 업체를 세우고 애개 전도사로 나섰다.
애개 육아 콘텐츠는 가뜩이나 희귀한 경험이 된 육아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배경엔 심각한 저출산이 있다. 세계 최고 속도로 추락하는 한국 합계출산율은 올해 0.7명대, 신생아는 연 24만명을 밑돈다. 반면 반려동물은 매년 급증해 1100만마리 이상으로 추산된다. 유모차보다 개모차가, 분유·이유식보다 사료가 더 많이 팔린다. 자녀의 대체재인 반려동물이 대세가 됐는데, 그중 일부가 진짜 자식을 낳으면서 독특한 육아 환경이 되는 것이다.
실제 애개 육아족은 십중팔구 싱글 또는 신혼 시절부터 수년간 자식처럼 키워오던 반려견을, 이후 진짜 자식을 낳고도 계속 키우는 이들이다. 돈과 시간, 에너지를 총동원해도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신생아 재우는데 개가 산책시켜 달라고 낑낑댈 때, 개털 날리는데 아기가 아무거나 집어 입에 넣을 때, 영어 유치원 보내고 싶은데 개가 CT 찍고 수술받아야 할 때, 고민은 커진다.
이런 부담을 감수하고 애개 육아를 하는 이들은 큰 이점이 있다고 믿는다. 아이의 정서 안정과 사회성 발달에 좋고, 반려동물과 뛰놀며 활동량과 책임감이 커진다는 것. ‘반려견과 산 아이들이 면역력이 강해져 천식·아토피 걸릴 위험이 낮고 지능은 더 높다’는 외국의 연구 결과도 근거로 든다.
이걸 위해 분당의 한 30대 부부는 올 초 ‘장녀’인 4세 푸들과 직접 낳은 돌쟁이 ‘남동생’의 첫 만남부터 엄청난 공을 들였다고 한다. 출산 전 개를 훈련소에 보내 주인에게 철저히 복종하는 훈련을 시켰고, 아기 손수건과 배냇저고리를 노견에게 둘러줘 새로운 체취에 익숙해지게 했다. “비밀스러운 이불에 싸인 작은 생물체는 개의 추적 본능을 자극할 수 있으니 절대 둘만 둬선 안 된다” “개가 사랑을 빼앗겨 스트레스를 받으니 아기 앞에서 절대 혼내지 마라”는 조언도 꼭 지킨다.
그러나 사람과 같은 생활을 하며 애정을 독차지하던 응석받이 개들은 ‘사람 동생’이 생긴 뒤 우울증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주인의 관심을 되찾으려 과잉 행동을 하거나, 아기 음식(혹은 배설물)을 먹는 등 섭식과 운동 패턴이 무너져 응급실에 가기도 한다.
진짜 문제는 아기의 안전이다. 아기가 개똥이나 사료를 집어 먹거나, 장난감을 두고 개와 다투다 머리 찧는 정도는 애교 수준. 개 물림 사고가 가장 위험하다. 한 부부가 7년간 키운 개가 이들의 돌쟁이 딸을 물어 죽인 일이 2017년 있었다. 걸음마하는 아기가 개 꼬리를 잡아채자 얼굴을 물어뜯은 것이다. 이들은 방송에 나와 “세상 순한, 절대 안 무는 개였다”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당 있는 주택에서 가족이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은 서구 선진국 가정에선 아이와 개가 뒤엉켜 노는 풍경이 익숙하다. 그러나 사람과 동물이 좁은 아파트에서 함께 산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특히 개는 집에 나중에 들어온 어린이를 자기의 아래 서열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아, 주인에게 보이던 애정·충성과는 다른 공격성을 언제든 드러낼 수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도 코로나 자택 격리가 시작된 2020년 이후 가정 내 반려견 물림 사고가 폭증했는데, 피해자 대부분이 10세 미만 아동이었다.
서울의 직장인 남성 A씨는 애개 육아를 고집하는 아내 때문에 고민이 크다. “아내가 5개월 된 아기와 강아지를 매일 밤 한 침대에서 끼고 잔다. 애와 개만 놔두고 자리를 비우거나, 아기 이유식 먹던 숟가락을 개에게 빨게 하고 젖병과 개 밥그릇을 같이 식기세척기에 돌린다”는 것이다.
애개 육아 하는 여성들은 집안 어른들이 “애와 개는 같이 키우는 게 아니다”라고 하면 “가족의 의미가 확대된 것을 모르느냐”며 반발한다. 당연하게도, 결국 개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유기견이 급증하는 이유 중 하나다. 애개 육아로 인기를 끌던 한 유튜버는 얼마 전부터 슬그머니 아이 영상만 올리고 있다. “댕댕이는 어디 갔느냐”는 댓글엔 답하지 않는다. 어쨌든 사람이 먼저라는 건데, 사람인 줄 알았던 개에겐 이 또한 못 할 짓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