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편 대결: 한국선 비틀쥬스2 실패, 에이리언 로물루스 성공 이유
‘로물루스’는 요즘 떠오르는 감독으로서 원작 ‘에이리언’ 시리즈의 열렬한 팬임을 밝힌 페데 알바레즈가 메가폰을 잡았다. 국내에서 지난달 14일 개봉해 200만 명에 가까운 관객을 모았다. SF 호러는 한국에서 인기 장르가 아닌 데다가 극장가가 팬데믹 이후 OTT에 밀려 침체기인 상황을 감안하면 꽤 흥행한 셈이다. 올해 국내 개봉작 전체에서 9위(외국영화 중에서는 4위)에 해당하는 성적이다. 반면에 이달 4일 개봉한 ‘비틀쥬스 2’는 원작의 감독인 팀 버튼이 직접 메가폰을 잡았음에도 11만 관객이라는 미약한 성적을 남기고 스크린에서 거의 사라졌다. 북미에서는 ‘비틀쥬스 2’가 우리 돈으로 약 3000억원의 티켓 판매를 기록해 ‘로물루스’ 판매의 두 배였던 것과 대조적이다. 세계 전체 판매는 ‘로물루스’가 약간 앞서며 두 영화 모두 4500억원 전후의 성과를 거뒀다.
한편 퀄리티에 대한 평으로 말하면 ‘로물루스’가 앞서기는 하지만 그 차이가 극단적으로 큰 것은 아니다. ‘로물루스’는 미국 영화평 플랫폼 ‘로튼토마토’에서 전문가 평점 100점 만점에 80점, 관람객 85점을 얻었고, ‘비틀쥬스2’는 전문가 77점, 관람객 80점이다. 둘 다 원작보다는 못하지만 준수한 속편이란 평가다. 국내에서도 네이버 영화 실관람객 평점에서 ‘로물루스’는 10점 만점에 8.7점, ‘비틀쥬스2’는 7.6점 정도다. 그런데 관람객 수는 왜 이렇게 극단적으로 차이가 날까?
이에 대해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두 영화는 각각 SF와 판타지인데 둘 다 우리나라에서 대중적으로 친숙한 장르는 아니다”라며 “그런 경우에 대중과 접점을 이루는 요소가 있고 입소문이 날 만큼의 재미를 주느냐가 대중적인 성패를 가르게 된다. ‘로물루스’의 경우에는 작품 자체를 잘 만들었다는 평이 많고 홍보를 특별히 크게 하지 않았음에도 입소문이 많이 난 것으로 안다. 요즘은 이런 입소문이 정말 중요하다”고 평했다.
영화·영상미학 전문가인 정혜진 경희대 교수는 “시의성이 강한 영화”라며 “특히 캐릭터들의 인종이 더 다양해진 점, 원작에서 AI가 철저히 거대기업 편에 서서 인간을 위협하던 것에 반해 인간과 가족 같은 관계를 형성한 AI를 새로이 등장시켜 AI의 양면성을 다룬 점, 그 AI가 흑인의 모습인 점 등등이 인상적”이라고 했다.
반면에 ‘비틀쥬스2’는 원작의 감독과 주연 배우들이 주축이 되어 원작 팬들의 향수를 만족시키는 데 주력한다. 문제는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원작 팬 자체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원작 ‘비틀쥬스’의 경우 한국에서는 극장 개봉도 하지 않고 비디오로만 출시되었던 것으로 안다”며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 고스 서브컬처(고딕 호러에서 영감 받아 어둠의 미학을 추구하는 하위문화)를 즐기는 사람들도 거의 없는 데다가 36년 만에 속편이 나왔으니 팬덤이 구축되었을 수가 없다. ‘에이리언’은 꾸준한 속편으로 프랜차이즈와 세계관이 형성되면서 팬들이 커뮤니티를 통해 그 세계관을 탐구하고 토론하며 충성도가 높아진 것과 대조적이다.”
정덕현 평론가도 “팀 버튼 작품세계의 특징은 괴기함과 코믹함의 접목인데 그것에 열광하는 마니아들도 있지만 대중에게는 진입 장벽이 상당히 느껴지는 편이다”라며 “원작은 다소 조악하면서도 기발한 상상력이 놀라운 것이 매력이었는데 속편은 좀더 세련되어졌지만 원작을 뛰어넘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대중과의 접점도 약하다”고 평했다.
결국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팬덤의 유무와 그 확장성이 한국에서 두 영화의 희비를 가른 셈이다. 한국 영화 제작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문소영 기자 sym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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