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은 먹고 김여정은 춤추고… MZ들은 北 가지고 논다
오물 풍선 내려보내자
AI 딥페이크로 맞대응
“오물 풍선 날려서 죄송합네다.”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이 사과했다. 한번이 아니고 여러 번이다. 혼자도 아니고 동생 김여정과 함께. 무슨 말이냐고? 실제 일어난 일은 아니다. AI(인공지능) 딥페이크 안에서다. 현실에서야 북한은 지난 5월부터 22차례, 5500여개의 쓰레기 풍선을 남쪽으로 띄워 보내고도 당연히 사과 한마디 없다.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지 이유도 말해주지 않는다.
우리 군은 참다 못해 ‘군사적 조치’란 단어까지 꺼냈다. “국제적으로도 망신스럽고 치졸한 행위로 우리 국민에게 불편과 불안감을 조성해 남남 갈등을 유발하려는 저급한 행위다. 우리 국민 안전에 심각한 위해가 발생하거나 선을 넘었다고 판단될 경우 우리 군은 단호한...(이하 생략).”
이런 상황이지만, AI로 만들어진 김정은은 인터넷 세상에서 사과도 하고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먹방도 한다. 여기에 MZ들이 환호한다. 영상마다 수백만 조회수는 기본이고 댓글도 넘쳐난다. 일각에선 10대, 20대 사이에서 김정은이 너무 가볍게 소비되면서 주적(主敵)에 대한 환상을 갖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지만, 이런 현상이 북한을 향한 MZ들의 분노 해소법이라는 분석이 더 많다.
유튜브에서 ‘김정은 먹방’을 치면 여러 개의 영상이 뜬다. 이 영상은 진짜는 아니지만 진짜보다 더 진짜 같다. 여기서 김정은은 미국의 유명 프랜차이즈 회사의 치킨을 쌓아두고 먹는가 하면, 김이 솔솔 나는 먹음직스러운 자장면을 단무지 곁들여 숨도 쉬지 않고 먹는다. 인기 배달 음식인 벌꿀집과 과일을 올려 먹는 ‘요아정’도 먹는다. 탕후루, 햄버거, 냉면, 마라탕도 여느 먹방 크리에이터 못지않게 맛깔나게 흡입한다.
이뿐인가. 김정은은 북한 말투를 써가며 진짜처럼 노래한다. 최근 한 유튜버가 만든 딥페이크 영상에서 그는 뮤지컬 ‘킹키부츠’의 주연배우처럼 꾸미고 삽입곡 ‘Land of Lola’를 열창한다. “자본주의는 딱 질색이라우. 워우워. 핵 날리자. 단숨에 넌 놀라. 우린 매일이 우위, 마치 왕놀이~.”
김정은은 K팝 걸그룹 뉴진스 멤버 하니가 일본에서 불러 뜨거운 반향을 일으킨 ‘푸른산호초’도 개사해서 불렀다. 천진난만한 얼굴로 노래를 하지만 가사엔 ‘아오지’ ‘학살’ 등이 담겨 살벌하다. 노동당 부부장인 김여정도 “우리 오라버니 주무시는 사이에 해보겠습네다”라며 불닭볶음면 먹방을 하거나 미니스커트를 입고 우리나라 가수 조현아의 신곡 ‘줄게’를 부르는데 이것도 꽤 그럴싸하다. “줄게. 줄게. 오물 다 줄게. 내 남은 쓰레길 남녘에.”
이 밖에도 딥페이크 속 김정은과 김여정은 SNS에서 유행해온 슬릭백, 하이디라오, 이머전시, 삐끼삐끼 춤을 춘다. 일론 머스크가 지난 7월 X에 올린 김정은 패션쇼 영상도 딥페이크, 가짜였다. 여기서도 김정은은 ‘KIM’이 크게 새겨진 힙합 느낌의 후드와 금색 체인 목걸이를 착용하고 등장했다. 이 영상은 수억 조회수를 기록했다. 김정은을 비롯해 북한 관련 영상은 미국, 일본 등에서도 인기다.
1분도 안 되는 이 짧은 영상들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다. 일단은 AI 기술에 대해 놀랍다는 내용이 많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유의 영상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짜란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영상 속 인물의 말과 입이 딱 떨어지지 않는 데다 움직임도 어딘지 모르게 어색했다. 그러나 지금은 깜빡 속아 넘어갈 정도로 기술이 발전했다.
딥페이크로 허위 음란물을 제작하는 성범죄가 최근 사회 문제가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아서다. 북한 관련 딥페이크도 마찬가지다. 김정은 영상에도 “AI, 당신은 대체 못하는 게 뭐요” “세상은 그만 좋아져도 된다” “얼굴 근육 움직이는 거 진짜 자연스럽네” “너무 실제 같아서 AI 모르는 어르신들은 진짜 먹방하는 줄 알겠어요” 등의 댓글이 넘쳐났다.
이 영상에 또 다른 반응은 북한을 향한 분노 표출과 비난이다. 간혹 “김정은 귀엽다” “다음엔 두바이 초콜릿 먹방도 해주세요” “팬 할래요” 같은 댓글도 있지만 대부분 부정적이다. “이런 걸작은 북녁 동포들에게도 널리 알려줘야 한다” “대북 확성기 대신 이거 틀면 북한 군인들 멘붕 온다” “최고 존엄인 대원수님을 경망스럽게 표현한 남조선에 분노한다고? 재밌는데 어떡할 거야. 김정은도 보면서 웃고 있을 듯” “최근 본 영상 중 제일 웃기다” “혼자 먹지 말고 인민과 나눠 먹어라” 등이다. 평범한 댓글만 써서 그렇지, 욕설과 막말은 물론 차마 옮길 수 없는 비하, 희화화가 쏟아진다.
일각에선 문재인 정부 때의 남북 정상회담 등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이 혹여나 젊은 세대가 북한을 우리와 같은 말을 쓰는 이웃 나라 정도로 생각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실제 문재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회고록에서 김정은을 “매우 예의 바른 사람” “솔직해서 좋았다” “핵을 사용할 생각이 없다” 등으로 좋게 평가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MZ는 생각보다 냉철했다.
댓글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이 영상을 만든 누군가의 신변을 걱정하는 내용이다. “전쟁 나면 공개 총살당할 1순위 유튜버” “이거 만든 분 생사 누가 하루하루 확인해주세요” “국정원이 이분 보호 좀” “제발 조심하세요” “딥페이크 때문에 전쟁 날까 무섭다”.... 김정은, 김여정 관련 영상을 만드는 크리에이터는 손에 꼽을 정도다. 이들의 구체적인 정보도 베일에 가려져 있다. 성별, 나이 등 추측만 있지 누군지 특정되지 않는다. 수십, 수백만 조회수를 감안하면 수익 창출이 어느 정도 될 것으로 추정되지만 얼마를 버는지도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런데 아동, 청소년으로 보이는 유튜버가 이들을 따라서 만든 허접한 영상이 늘고 있다. 서울 경찰에 따르면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범죄 피의자도 69%가 10대였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는 지난달 중·고등학생 1000명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이 통일·북한 관련 정보를 접하는 경로 가운데 ‘유튜브·숏츠’(25.1%)가 가장 많다고 밝혔다. 영상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북한도 이런 현상은 똑같다. 가장 무서운 게 영상이다. 그래서 더 철저하게 봉쇄한다. 최근에 한국 드라마를 봤다는 이유로 10대 소녀들을 수갑 채워 체포하고, 가족 신상까지 공개하며 비판하는 영상을 공개했는데, 이것도 주민 교육용이었다. 이 영상에서 한 어머니는 “내가 아들이 아닌 역적을 낳았구나”라며 통곡했다. 한국 영상을 ‘악성 종양’에 비유하기도 했다. 한번 퍼지면 강력하다는 뜻. 같은 이유로 북한 중학생 30여 명이 공개 처형됐다는 얘기도 솔솔 나온다. 이렇다 보니 영상을 만들 때도 주의가 필요하다. 표현의 자유가 있으니 재미로 만들 순 있지만 AI 딥페이크 기능을 이용한 여론전이 장차 어떤 무기가 될지 모를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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