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재미보다 보는 재미? ‘숙취 해소 젤리’ 불티나네
국내외서 부는 열풍에 기상천외한 상품 쏟아져
젤리(jelly)에 미친 사람이 있다. 편의상 ‘젤리맨’이라고 하겠다. 회사 생활이 고달픈 그는 매일 밤 술에 절어 보낸다. 그런데 술을 먹는 방법은 특별하다. 곰 모양 하리보 젤리를 도수 높은 소주에 1시간쯤 재운다. 날렵한 몸매의 곰이 술을 머금어 뚱뚱해지면 ‘술과 안주를 동시에 먹다니, 대(大)이득’ 같은 생각을 하며 씹어 먹는다. 젤리술인 셈. 하지만 소주파는 아니다. 편의점에서 파는 ‘코코넛 젤리가 들어간 소다맛 하이볼’을 가장 좋아한단다. 전체 용량의 7% 이상이 젤리로 채워진 알코올 도수 3.5%짜리.
다음 날 출근길엔 숙취 해소를 위해 ‘컨디션 젤리’를 한 봉지 산다. “젤리로 만드니 더 맛있다”고 감탄하며 먹는다. 과일이 먹고 싶을 땐 망고·포도 등 과즙이 들어간 젤리를, 아이스크림이 당기면 ‘메로나’ ‘죠스바’ 맛으로 출시된 젤리를 먹는다. 제약사가 만든 ‘비타500′ ‘박카스’ 젤리로 건강도 살뜰히. 젤리맨은 아마 국밥 젤리(!)도 언젠가 출시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최근 탕후루, 두바이 초콜릿에 이어 젤리 열풍이 불고 있다. 기상천외한 게 쏟아진다. 젤리 술, 아이스크림 젤리, 건강 기능 젤리, 숙취 해소 젤리는 시중에서 파는 제품이다. 그의 하루는 정체불명의 젤리를 직접 제조해 먹기까지 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실제 젤리맨처럼 사는 사람은 없겠지만, 원하면 젤리맨처럼 살 수도 있는 세상, 젤리 천하.
◇들어는 봤나, 바삭한 젤리
과일인가, 젤리인가? 젤리에 과즙을 넣는 걸 넘어 요즘은 실제 과일 크기와 먹는 방법까지 재현한다. 지난 12일 출시된 ‘까먹는 점보 망고 젤리’는 과일 망고와 비슷한 성인 손바닥 크기다. 젤리의 겉면과 속살의 식감을 다르게 만들어 ‘껍질을 까서’ 먹는다. “그럴 거면 과일을 먹어라” 할 수 있지만, 젤리는 까 먹는 맛도 있다고.
과일 크기의 대형 젤리는 그나마 평범한 편이다. 스틱이나 구미형의 숙취 해소제 젤리, 아이스크림 등을 넣어 ‘쌈 싸 먹을 수 있도록’ 나온 납작하고 얇은 롤업 젤리, 아이스크림 외형에 안에 든 시럽까지 재현한 아이스크림 모양 젤리, 인기 아이스크림의 맛을 젤리로 만든 젤리 아이스크림….
쫄깃한 식감을 버린 제품까지 나왔다. 일명 ‘동결건조’ 젤리. 동결건조는 영하에서 진공 상태로 만든 뒤 수분을 증발시키는 방법이다. 전투 식량을 만들거나, 과일·야채 등을 오래 보존하기 위해 쓴다. 수분을 없애 바삭한 식감이 특징. 젤리인지 칩(chip)인지 모를 이 제품은 지난 3월 ‘동결건조 지구젤리’ 이름으로 출시됐고, 유튜브에서 ASMR(소리로 심리적 안정을 유도하는 영상)용 제품으로 인기를 끌며 약 50일 만에 누적 판매 100만개를 돌파했다.
◇젤리로 하나 되는 지구촌
경쟁적으로 독특한 젤리를 내놓는 이유는 ‘잘 팔리기’ 때문이다. GS25에 따르면 올해 1~8월 기준 젤리 매출은 지난해 동기 대비 28% 늘었다. 전문가들은 “최근 치솟는 젤리의 인기는 맛에 더해 ‘먹는 재미’ ‘보는 재미’를 추구하는 MZ 세대의 특징이 반영된 결과”라고 말한다. 오리온이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에 문을 연 ‘알맹이네 과일가게’ 젤리 팝업스토어에서는 시식용 ‘알맹이 젤리’ 100인분이 오픈 1시간 만에 동났다. 포도나 자두, 리치, 키위 등의 맛이 나는 지름 2~3cm짜리 젤리로 이중 식감이 특징.
우리나라에서 만든 젤리가 해외에서 인기를 끄는 경우도 있다. 알맹이 젤리는 중국에서 ‘궈즈궈신(果滋果心)’, 베트남에서 ‘붐타크’, 러시아에서 ‘젤리보이’로도 출시됐다. 지난 2월 세계 최대 제과 전시회인 ISM에서는 국내 기업이 낸 떡볶이 맛 ‘떡복희 젤리’가 혁신적 신제품으로 전시돼 바이어들의 눈길을 끌었다고. 젤리로 하나 되는 지구촌이다.
◇젤리 한 봉에 8만원
젤리 인기는 올해 말까지 지속될 것으로 업계는 관측한다. 세상의 모든 식재료로 젤리를 만들 수 있는 만큼 ‘희한한 젤리’를 먹으려는 수요는 당분간 이어진다는 것. 김치 젤리가 대표적이다. 한 김치연구소가 제시한 ‘복분자주스젤리김치’ 레시피는 최근 까나리 액젓에 식혜, 다진 마늘과 고춧가루를 넣어 만든 양념에 젤리를 무쳐 먹는 영상과 함께 화제가 됐다.
유튜버들의 젤리 먹방도 유행을 만드는 이유 중 하나다. 최근 다양한 맛의 젤리로 구성된 ‘스웨덴 캔디’ 제품은 유튜버 사이에서 “마시멜로와 껌이 섞인 듯한 쫀득함” “캔디 옷을 입은 젤리” 평을 받으며 250~500g 제품 가격이 5만~8만원인데도 인기 폭발. 국내에 정식 수입되지 않아 해외 직구를 하기 위해 줄을 섰단다.
탕후루처럼 반짝 떴다가 곧 인기가 꺼질 수 있다는 시각도 많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탕후루 가게 1200여 곳이 문을 열었지만, 올해 개업한 가게는 77곳에 불과하다. 반면 폐업한 가게는 지난해 72곳에서 올 들어 397곳으로 치솟았다. 업계 관계자는 “디저트류는 비교적 가격 접근성이 낮아 유행에 민감한 소비자의 지갑을 쉽게 열 수 있다”며 “뒷돈을 받고 홍보를 해 주는 일부 유튜버도 있기 때문에 무조건적 유행 추구는 위험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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