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들의 연기부터 욕망의 춤까지…다양한 무대 언어 실험
가장 이색적인 실험은 올해 유일한 커미션 작품인 알오티씨의 ‘새들의 날에’로, 예술과 기술, 과학이 만나는 무대다. ‘아해’라는 이름의 13개의 이족보행 로봇이 철판으로 만든 무대 위를 걸으며 철판과 자석의 물성을 활용한 색다른 움직임을 실험하면서 인간이 땅에 발을 붙이고 걷는 행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걸음마를 배우는 듯한 ‘아해’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관객은 새로운 종의 탄생을 목격한다. 권병준 연출은 “향후 10년간 로봇들이 연기하는 공연을 시리즈로 제작할 것”이라며 “로봇들이 만든 생태계에 ‘새’라는 자연물이 안착하는 과정을 끈질기게 탐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다큐멘터리 연극의 선두 주자인 독일의 실험 극단 리미니 프로토콜은 연극과 외교를 결합한 ‘이것은 대사관이 아니다’로 요동치는 국제 정세 속 국가의 상황을 묘사한다. 대만의 국가양청원과 공동 제작한 작품으로, 하나의 국가로서 지위가 끊임없이 의문시되는 영토의 외교 상황을 탐구해 국가의 존재와 대표성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폐막작인 지젤 비엔의 ‘사람들’은 명품 주얼리 브랜드 반클리프 아펠의 현대무용 후원 프로젝트 ‘댄스 리플렉션’의 일환이다. 인간에게 내재된 폭력과 관능에 집중해온 오스트리아 안무가 지젤 비엔의 고민이 집약된 작품으로, 15인의 무용수가 격렬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춤으로 분출하며 카타르시스를 터뜨리는 무대다.
그밖에 아랍 사회의 남성 중심적 시스템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투쟁을 그린 오페라 ‘우먼, 포인트 제로(사진)’, 청각장애인 안무가 미나미무라 치사토가 원폭 피해 청각장애인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춤, 소리, 빛, 애니메이션, 수어, 진동을 통해 표현하는 ‘침묵 속에 기록된’ 등, 여성과 장애에 관한 서사도 여럿 눈에 띤다. 소외된 주변부의 이야기를 공연 예술가들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포착해 사색의 시간을 제공하는 장이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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