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여성들의 삶으로 18세기 영국을 해부하다
곽아람 기자 2024. 9. 28. 00:35
코번트 가든의 여자들
핼리 루벤홀드 지음|북트리거|456쪽|2만2000원
1757년 런던. 당시 최고의 환락가 코번트 가든에서 희대의 베스트셀러가 탄생한다. 1795년 종간될 때까지 25만 부가 팔린 이 책의 제목은 ‘해리스 리스트’. 남자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지만, 공공장소에서 읽을 수는 없었다. 성매매 여성들의 특기와 전공, 신상 명세 등을 기술한 책이었기 때문이다.
18~19세기 영국 미시사·여성사 전공자인 저자는 ‘해리스 리스트’를 통해 당대의 성풍속을 파헤친다. ‘광택을 낸 상아에 견줄 만한 피부’, ‘얼굴은 천사 같지만 몸매는 기형적’, ‘사랑에 몰두하는 순간을 극도로 좋아함’…. 저자는 철저히 남성의 시각으로 기술된 이 여성들을 생생하게 되살려 내며, 아동학대와 빈곤, 성폭력의 희생양이었던 이들의 사연에 주목한다. ‘리스트’를 작성한 시인 새뮤얼 데릭, 책 제목에 이름을 빌려준 포주 잭 해리스 등의 이야기도 입체적으로 복원한다.
선정적인 주제를 진지하게 숙고해 지적인 문화사로 승화시킨 책. 저자의 이 문장이 ‘리스트’의 주인공들이 고단한 삶을 어떻게 버텼는지 요약한다. “사랑의 감정을 마음대로 차단하는 능력은 이 여자들의 생존에 필수적인 도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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