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성격·목소리까지 판박이… 복제한 ‘나’를 키워보세요
[김동식의 기이한 이야기]
내게 완벽한 삶을 선물한다
‘나 자신 키우기’ 게임 열풍
“책임질 자신이 없어 반려동물 키우지 못했던 분들! 이제 ‘인공지능 반려동물’을 기르시지요! 사막여우, 검은발살쾡이 같은 희귀 동물도 가득합니다.”
출사표는 던졌지만 이 회사의 인공지능 반려동물 서비스는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살아 있는 동물과 똑같은 모습을 구현했음에도 사람들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진짜’를 선호했다. 그동안 수많은 스타트업이 그러했듯 이 회사 또한 나무위키의 한 줄짜리 기록으로 사라질 듯했다. 그때, 대표가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직원들 모두 ‘그게 말이 되나?’ 우려했지만 대표는 모든 걸 쥐어짜 추진했다. 그리고 신제품은 그야말로 초대박이 났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육성 시뮬레이션, 바로 ‘나 자신 키우기’였다. 자기 자신을 복사해 가상 서버에서 키운다는 개념. 진짜 살아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인공지능. 많은 사람이 앱을 설치해 ‘나’ 생성을 실행했다. 스스로를 촬영한 동영상을 업로드하면 이를 스캔해 캐릭터 이미지가 자동 형성됐다. 개인 성향과 지능 등은 MBTI 검사 같은 설문을 통해 이뤄졌는데, 그 내용이 상당히 상세해 신뢰를 줬다. 사람들은 감탄했다. “우와, 진짜 나랑 너무 똑같네? 목소리와 말투도 판박이잖아.”
‘많이 먹으면 살이 찌고, 운동하면 근육이 붙고, 공부하면 지식이 늘어납니다. 추우면 감기에 걸리고, 피곤하면 입술이 부르트고, 종이에 손가락을 베이기도 합니다. 현실과 완벽하게 똑같은 환경 속에서 ‘나’를 멋지게 키워보세요!’ 이 제품은 사회적인 현상이라고 해도 될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거의 모든 사람이 휴대폰 화면 속 나’를 키우는 데 열중했다. 어느 학자는 이렇게 분석하기도 했다. “완벽해야 한다는 우리 사회의 강박이 ‘나 자신 키우기’ 열풍을 일으켰다고 봅니다. 사람들은 그곳의 ‘나’에게 완벽한 삶을 만들어 주는 것으로 대리 만족을 얻는 거죠.”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사람들이 휴대폰 너머 키우는 ‘나’의 일과만 봐도 그랬다. 미러클 모닝으로 일어나 운동을 하고, 짬짬이 아침 독서를 끼워 넣었다. 아침 식단 조절에, 술·담배는 허용하지 않았다. 출근·등교해서도 매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았고, 저녁이 되면 사교 활동이나 자기 계발로 스케줄을 채웠다. 집에 돌아오면 칼같이 샤워를 하고, 책을 읽다가 숙면에 들었다. 시간을 극한까지 쪼개가며 완벽한 삶을 추구했는데, 결정적으로 스마트폰 들여다보는 시간이 ‘0분’에 가까웠다. 현실의 자기 자신은 절대 하지 못할 생활을 ‘나’에게 추구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얻게 되는 대리 만족은 취향에 따라 다양했다. 누구는 회사에서 인정받는 인재가 되는 것을 즐겼고, 누구는 외적인 관리로 이성과 접점이 일어나는 걸 즐겼으며, 누구는 만화가나 스튜어디스처럼 못다 이룬 꿈을 이뤄내는 과정을 즐겼다. 중독성이 강한 탓에 사회적 우려를 불러오기도 했다. 누군가에게는 현실의 나보다 이 가상의 ‘나’가 더 중요해졌다. 현금까지 동원했다. “제대로 잘 키우려면 ‘나’한테 투자를 해야 돼. 현질(게임에서 유료 아이템을 사는 일)을 해야 한다고.”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은 이것이었다. 물론 현실의 환율과는 달랐지만, 비싼 금액이었다. 회사 측의 변명은 있었다. “그곳에서 쓰이는 돈은 그곳에서의 노동으로 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사실 무료로도 얼마든지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현실에서 치이는 것만으로 족했다. 내가 키울 ‘나’는 풍족하길 바랐고, 얼마든지 금수저 부모가 될 각오가 돼 있었다. 현실의 내가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더라도 ‘나’는 청담동 피부 숍을 다녀야 했고, 해외 어학연수에 가야 했다. 이런 위험한 자아 의탁 현상은 사회적 문제로 대두했지만, 개발사는 제재를 당하지 않았다.
오히려 돈을 쓸어 담으며 승승장구했다. 상장 후 주가는 폭발했고, 판교와 제주도에 사옥도 지었다. 회사가 부유해질수록 고객들은 가난해졌다. 보통의 다른 앱들과는 달랐다. ‘나 자신 키우기’는 종료가 거의 불가능했다. 부모가 아이를 버리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이유였다. 아무리 힘들어도 ‘나’를 죽일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빚을 지는 한이 있어도 ‘나’를 계속 키워야만 했다. 그때 회사의 마수가 파고들었다. “여러분의 모든 개인 정보를 활용하는 것에 동의하시면 현금 전환 비율 30% 할인을 상시 적용해 드리겠습니다.”
고객들은 자신의 모든 정보를 회사에 넘겼다. 머리부터 발끝까지의 생김새, 추구하는 삶의 형태, 꿈과 정체성까지. 회사는 이런 고밀도 개인 정보를 활용해 큰돈을 벌었고, 두 번째 마수를 뻗었다. ‘나 자신 판매하기’ 기능을 도입한 것이다. “유지비가 감당 안 되는 분? 잘못 키운 것 같아서 새로 키우고 싶으신 분? ‘나’를 팔아보세요. 안전 거래를 위한 수수료 10%를 내시면 ‘나’를 판매할 수 있습니다.”
진짜 살아 있는 사람을 본떠 만든 그 인공지능은 수요가 많았다. 게임 회사나 영화사 등의 기업이 원했고, 부유한 개인들도 개인적인 목적으로 원했다. 그러자 많은 이가 ‘나’를 팔아댔다. 나중에 벌어질지 모를 소름 돋는 일에 대해서는 인지하지 못했다. 판매가 늘수록 ‘나’는 계속 흔해졌다. 그런 시대였다.
※픽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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