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끝없는 여야 불신의 악순환
국민의힘 추천으로 한석훈 성균관대 교수를 국가인권위 비상임위원으로 선출하는 안이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반대로 부결됐다. 반면 민주당 추천인 이숙진 전 여가부 차관의 인권위 상임위원 선출안은 국민의힘 의원 대부분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여야는 당초 두 사람을 서로 통과시켜주기로 했는데 민주당이 이를 어긴 것이다. 국민의힘은 “여야 간 약속 위반이자 민주당의 사기 반칙”이라고 했고, 대통령실은 “역대 어느 국회에서도 없었던,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 일은 민주당이 약속을 깨고 상대의 뒤통수를 쳤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현재의 헌법은 헌법재판소 및 각종 정부 위원회 인사에서 대통령과 여야가 자신들 몫의 인사 추천권을 갖고 이를 인정해주는 ‘합의와 타협’ 정신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한쪽에 힘이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한 균형 원리도 작동하고 있다. 대통령과 국회는 다투더라도 각자 보장된 인사 추천권만은 존중해주는 관행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극단적 진영 정치와 팬덤, 그리고 여야 간 불신(不信)이 커지면서 이런 관행도 깨졌다. 지난 2월에도 과거사 위원 선출안을 여야 합의로 국민의힘 추천 3명, 민주당 추천 4명으로 본회의에 올렸지만, 민주당은 여당 추천 1명을 부결시켰다.
민주당은 이번 인권위원 부결에 대해 “당론을 정하지 않고 자율 투표를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당론으로 야당 추천 인사를 찬성해주고, 민주당만 자율 투표를 했다는 건 명백한 합의 위반이다. 민주당이 부결시킨 인권위원 후보는 이재명 대표를 수사한 검사에 대한 민주당의 탄핵소추를 비판하는 언론 기고를 했는데 이것이 부결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합의의 관행을 깬 건 야당만이 아니다. 민주당은 작년 3월 방통위 상임위원 5명 중 야당 몫 1명을 추천했지만, 대통령실은 결격 사유가 있다며 임명을 미뤘고 이 후보는 8개월 뒤 자진 사퇴했다. 대통령실이 관행을 깨자 민주당은 과반 의석을 앞세워 여야 추천 몫 위원 3명을 무산시켜 원래 5명인 방통위를 2인 체제로 만들어 버렸다. 여야가 합의한 인사안까지 부결시키는 비상식적 악순환이 계속된다면 의회주의는 지속될 수 없고 행정부도 국회도 정상 운영이 어렵다. 이런 악순환은 끊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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