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통은 언제 만들어졌을까
로만 쾨스터 지음
김지현 옮김
흐름출판
쓰레기는 인간이 만들어 낸 가장 정직한 기록물. 인간이 있는 곳에는 늘 쓰레기가 있었고, 쓰레기통을 들여다보면 그 시대 사람들의 일상과 사회를 알 수 있다. 선사 시대를 연구하는 고고학자들이 쓰레기 더미를 발굴하는 이유다.
독일의 역사가인 저자는 쓰레기를 중심으로 세계사를 새롭게 해석했다. 쓰레기가 단순히 쓰고 버리는 폐기물이 아니라 인류 문명의 진화와 사회 변화를 설명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 쓰레기를 통해 시대를 읽어내는 저자의 관점은 역사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게 만든다.
쓰레기의 역사는 인류가 정착하며 비로소 시작됐다고 저자는 말한다. 한 곳에 자리 잡게 되면서 인류는 배설물과 음식 찌꺼기, 부서진 도구들과 마주하게 됐다. 현재 우리가 넘쳐나는 쓰레기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처럼 고대 로마도 시시각각 쌓이는 쓰레기를 처리하고자 고군분투했다. 저자가 인용한 소설가 올더스 헉슬리의 말대로 도시를 쓰레기장으로 만들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기술은 끊임없이 발견됐다. 그래야만 했다.
산업 시대에 들어서며 도시는 급성장했고, 쓰레기의 양도 급격하게 늘었다. 기존의 처리 방식은 한계에 부딪혔다. 이때 등장한 것이 쓰레기통. 새로운 수거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표준화된 쓰레기통이 필요했다. 이렇게 19세기 후반부터 쓰레기통과 쓰레기 수거 시스템이 많은 도시로 확산됐다.
17~18세기 부유층이 넓은 의미의 재활용에 참여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당시 빈이나 베르사유 궁전에서는 반짝이는 금사의 수요가 높았다. 이에 귀족 부인 사이에는 옷에서 금실을 뽑아내 작은 주머니에 모으는 소일거리가 유행했다고 한다. 귀족들 사이에서는 중고 거래가 활발했고, 이렇게 번 돈으로 외상값을 갚거나 새로 유행하는 물건을 구매하기도 했다.
쓰레기는 식민주의 지배 논리로 활용되기도 했다. 식민주의자들은 쓰레기 처리 인프라를 갖춘 깨끗한 도시, 질병 없는 선진적 도시라는 이상을 식민지에 제시했다. 일제강점기 당시 서울(경성)에서는 쓰레기와 배설물이 주기적으로 수거됐는데, 일본의 식민 지배자들은 1914년부터 비용을 물리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저항이 커지자 일본은 크게 화를 내며 ‘똥의 도시’라는 멸칭으로 서울을 모욕했다고 한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쓰레기 문제는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대량 소비 시대에 접어들며 쓰레기의 양은 폭증했고 종류도 다양해졌다. 1970년대에는 다이옥신의 존재가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사람들은 쓰레기가 일으키는 보이지 않는 위협을 알게 됐고, 위생 문제에서 나아가 환경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전자 폐기물(E-Waste)이 환경 오염의 새로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렇게 쓰레기가 복잡해지면서 쓰레기 처리 문제도 점점 해결하기 어렵게 꼬여가고 있다.
저자는 두 가지 해법을 제시한다. 첫째로 수거 및 처리 인프라를 개선해 쓰레기로 인한 환경 오염을 줄이는 것. 이와 동시에 생산과 소비를 강요하는 경제를 돌아봐야 한다고 말한다. 쓰레기는, 다시 말해 저렴한 가격에 대량 생산해 수리할 필요 없이 쓰고 버리는 재화는 우리의 일상을 간편하게 만들고 시간과 노동을 덜어준다. 문제는 효율성 증가에 집중하느라 어쩔 수 없이 포장에 의존하고, ‘수리’할 필요가 없는 물건을 끊임없이 생산해낸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고갈되는 세상에서 쓰레기는 유일하게 증가하는 자원이다. 바다에는 거대한 쓰레기 섬이 떠다니고, 인간은 매일 5g의 미세 플라스틱을 먹는다. 더럽고, 위험하고, 성가시고, 쓸모없다고 여기는 쓰레기의 역사를 새로이 마주해야 할 때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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