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진의 민감(敏感) 중국어] 피더우
21일 왕밍위안 베이징시 개혁 및 발전연구회 연구원은 SNS에 사회적 폭력을 경고하는 글을 올렸다. 글은 1966년 쑹이 주도한 집단폭력에 희생된 볜중윈 베이징사범대 부속중학 교감의 마지막을 묘사했다. 비극은 그해 6월 쑹이 볜 교감을 첫 희생양으로 지목하며 시작됐다. “우파, 반동분자, 반공의 급선봉, 심장을 도려내고, 머리를…” 차마 옮기기 어려운 폭언이 적힌 수백장의 대자보가 내걸렸다. 비판 투쟁을 줄인 피더우(批鬪·비투)는 8월 5일 열렸다. 볜 교감은 무릎을 꿇린 채 자아비판을 외쳐야 했다. 인격모독이었다. 강제 삭발이 이어졌다. 먹물과 분뇨를 온몸에 뿌렸다. 집단구타는 마지막이었다. 여고생 손에는 못이 박힌 책걸상 다리가 쥐여 있었다. 시신은 모욕적인 대자보로 덮인 채 방치됐다. 남편 왕징야오는 사진기로 아내의 마지막을 기록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삼체(三體)’의 도입부가 무색한 현장이었다. 쑹은 2007년 개교 90주년 기념일에 볜 교감의 죽음을 사과했다. 왕징야오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부했다.
쑹은 그해 8월 18일 천안문에 올라 마오쩌둥에게 붉은 홍위병 완장을 채워줬다. 마오는 쑹에게 “무력이 필요하지 않나(要武嘛)”라며 또 폭력을 주문했다. 다시 ‘피더우’가 휩쓸었다. 24일 하루 2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문호 라오서가 참담함에 태평호에 몸을 던진 날이었다.
왕 연구원은 폭력의 원인을 헤아렸다. 우선 사회에 가상의 적이 출현할 때다.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기 쉬운 스파이·이교도·자본가는 손쉬운 대상이다. 가상적을 처리할 유일한 방식은 소멸이다. 폭력은 방식일 뿐이다. 폭력은 사회의 제어 메커니즘이 망가지기를 기다린다. 문혁 초 공안·검찰·법원은 마비 상태였다. 시민의 무관심과 방임까지 더해지면 폭력이란 맹수의 고삐가 풀린다.
23일 가미카와 요코(上川陽子) 일본 외무상이 뉴욕에서 중국 외교부장을 만났다. 근거 없고 악의적인 반일 SNS 단속을 요구했다. 중국은 정치화에 반대했다. 바로 그날 왕 연구원의 글이 검열로 사라졌다.
신경진 베이징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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