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이 트럼프' 많은 펜실베이니아, 여론조사도 못 믿는다

2024. 9. 28.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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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석의 미 대선 워치] D-38 관전 포인트
조 바이든 대통령의 민주당 대선후보 자리를 물려받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예상 밖의 선전을 하고 있다. 당초 인지도가 낮았던 해리스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박빙의 대결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진 누가 최종 승자가 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해리스의 지지율에는 트럼프와 바이든에 대한 비호감이 반영돼 있다고 분석한다. 해리스는 한때 트럼프를 제법 앞서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 지지율은 지난 8월 19일 민주당 전당대회와 9월 10일 TV 토론에 따른 컨벤션효과(convention effect)에 따른 것이다. 현재 해리스의 지지율 상승세는 꺾였으며, 경합주에서 오차 범위 안에서 트럼프와 경쟁하고 있다.

트럼프는 선벨트, 해리스 러스트벨트 우세
지난 25일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펜실베이니아주 카네기 멜런대 유세장에서 경제정책에 관한 연설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로 인해 트럼프가 다시 선거판을 주도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는 평가도 있다. 두 번에 걸친 트럼프에 대한 살해 위협도 이런 분위기 조성에 한몫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번 대선의 승패는 전국 지지율과 관계없이 6개 경합주에서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조지아, 네바다, 애리조나는 선벨트 지역 내 경합주다. 그리고 위스콘신, 미시간, 펜실베이니아는 러스트벨트 지역에 속하는 경합주다. 선거 40일가량을 앞둔 지지율 조사에서 트럼프는 선벨트에서 우세하고 해리스는 러스트벨트에서 앞서고 있다. 트럼프 우세 지역의 선거인단 수는 33명, 해리스 우세 지역 선거인단 수는 44명이다. 수치상으로는 해리스가 앞서고 있지만, 펜실베이니아가 승패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경합주 중 가장 많은 19명의 선거인단을 갖고 있는 펜실베이니아에서 확실한 승기를 잡은 후보가 없기 때문이다. 해리스가 근소하게 앞서고 있지만, 이곳은 트럼프 지지를 드러내지 않는 ‘샤이 트럼프’ 유권자가 많은 지역이다. 지난 2016년 민주당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도 여론조사 지지율을 믿었다가 낭패를 봤다. 2020년에는 바이든이 선거를 앞둔 두 달 동안 평균 5%포인트 이상의 격차로 앞서고 있었지만, 실제 선거에선 1.2%포인트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최근 펜실베이니아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37%가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투표했다고 답했다. 이는 트럼프가 펜실베이니아에서 실제로 얻은 49%에 훨씬 못 미치는 수치였다. 그 차이만큼 샤이 트럼프 유권자가 있다는 해석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어느 후보든 펜실베이니아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패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와 해리스가 펜실베이니아 곳곳을 훑으면서 유세에 총력을 기울이는 이유다.

다음날 뉴욕에 있는 트럼프 타워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EPA=연합뉴스]
해리스는 시카고 전당대회와 TV 토론을 거치면서 자신감이 붙었다. 해리스가 11월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새로운 역사가 쓰여질 것이다. 미국의 근현대사에서 많은 부통령이 대통령이 되었지만, 현직 부통령이 대통령으로 선출된 적은 단 한 번뿐이었다. 1901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1923년 캘빈 쿨리지, 1945년 해리 트루먼, 1963년 린든 존슨, 1974년 제럴드 포드와 같은 부통령들은 현직 대통령의 사망이나 사임으로 인해 대통령직을 맡았다. 앨 고어와 리처드 닉슨은 재선한 대통령 밑에서 부통령을 지내면서 출마했지만 실패했다. 닉슨의 경우 퇴임 8년 후에 다시 출마해 당선됐다. 따라서 1836년 이래 대통령에 당선된 유일한 현직 부통령은 1988년 아버지 부시(조지 HW 부시) 대통령뿐이었다. 이처럼 미국 유권자들은 같은 당에서 대통령을 세 번이나 연속해서 맡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에 불구 아버지 부시가 대통령이 된 데는 이유가 있다. 당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인기가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그의 세 번째 임기를 원했다. 이에 힘입어 현직 부통령인 아버지 부시가 당선된 것이다. 레이건의 퇴임 때 지지율은 63%에 달했다.

하지만 당시와 지금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 현재 바이든의 지지율은 40% 수준에 머물고 있다. 아버지 부시가 대통령에 출마했을 땐 미국 경제가 성장하고 있었고 인플레이션은 적절하게 통제되고 있었다. 세계는 미국의 주도로 평화로웠다.

현재 미국인들은 역사적인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으며 10명 중 6명꼴로 식료품과 생필품을 지불하기 위해 기록적인 신용카드 빚을 지고 있다. 또 두 대륙에서의 전쟁으로 세계는 불타고 있으며 통제 불능의 중국이 심각하게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 해리스가 처한 상황은 오히려 1968년 존슨 대통령의 대선 후보 사퇴를 이어받은 휴버트 험프리 때와 유사하다. 엄청난 인플레이션과 월남전으로 인한 혼란 등으로 존슨의 인기는 바닥이었다.

해리스 ‘옥토버 서프라이즈’ 차별화 필요
미국 유권자들이 바이든을 대선 후보에서 사퇴시킨 것은 고령과 신체적 허약함도 문제였지만 그의 정책적 무능도 감안된 것이다. 해리스는 바이든이 내놓은 인기 없는 정책들의 공동 설계자다. 그래서 해리스의 당면 과제 중 하나는 인기 없는 바이든 정부가 계승되지 않을 것임을 유권자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바이든의 정책과 과감한 차별화해야 한다. 해리스의 지지율이 상승세를 타고 현 수준까지 올라온 것은 유권자들이 그를 부통령으로 보기보다는 새로운 리더십으로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리스가 승리하기 위해선 ‘옥토버 서프라이즈(October Surprise)’를 만들어야 한다. 유권자들의 표심을 끌어들일 깜짝 효과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주요 경합주 현황
지난 21일 앨라배마주 버밍햄에서는 총기 난사로 4명이 숨지고 18명이 부상을 당했다. 앞선 4일에는 조지아주 애틀랜타 외곽의 한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으로 4명이 숨지고 9명이 다쳤다. 이는 미국에서 종종 벌어지는 총기 사건으로 총기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비영리단체인 ‘총기폭력아카이브(GVA)’에 따르면 올해 미국에서 4명 이상이 숨지거나 다친 총기사건이 최소 403건이 발생했다. 대통령 후보인 트럼프마저도 총격에 피습을 당했고 암살을 가까스로 모면했다. 이 정도면 선거판에서는 총기규제 논란이 핫 이슈가 돼야 하지만 현실과는 온도 차가 있다. 선벨트와 러스트벨트 유권자들의 정서가 모두 총기 휴대 허용을 당연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백인 노동자들 사이에선 이런 정서가 더욱 강하다. 두 후보 모두 경합주의 부동표 잡기 위해 총기 휴대 반대를 외칠 수 없는 상황이다. 예년 같으면 총기 규제에 열을 올려야 할 해리스가 “나도, 부통령 후보인 팀 월즈도 총기를 소유하고 있으며 신변의 위협을 느끼면 총을 쏠 것”이란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이번 대선의 막바지로 갈수록 ‘경제와 국경 이슈’ 싸움이 치열해지고 있다. 두 가지 모두 해리스에게 불리한 사안이다. 경제는 트럼프 집권 때만 못하다는 여론이 많고, 국경 문제는 난민 유입을 차단하기 위한 트럼프의 장벽 쌓기가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경제 문제는 펜실베이니아에서, 국경 문제는 선거인단 수 11명을 보유한 애리조나에서 뜨거운 이슈다. 해리스는 펜실베이니아에서는 생활비 절감 정책에, 애리조나에서는 난민보다는 이민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반면, 트럼프는 해리스(바이든 정부)가 불법 이민을 억제하는 데 실패했다고 비난하면서 펜실베이니아에서는 세금 감면과 수입품에 대한 관세 인상을 약속했다. 뉴욕타임스(NYT)의 지난 24일 펜실베이니아 여론조사에서 해리스는 겨우 1%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거를 앞둔 마지막 한 달은 지난 10개월보다 훨씬 중요하다. 이번 대선처럼 승패를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경우엔 더욱 그렇다. 해리스의 전략은 지지층을 확대하겠다는 것이고, 트럼프는 해리스의 지지층 이탈을 유도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누가 성공하지는 두고 볼 일이다.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가 학업을 마치고 1996년 한인유권자센터를 설립해 한국계 교민·교포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 활동해 왔다. 2008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대선 캠프에 참여하는 등 워싱턴 정계에 인맥이 두텁다. 한·미관계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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