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파’ 이시바 4전5기 일 총리 되다
내달부터 일본 이끌 이시바 누구인가
이시바는 1957년 2월 도쿄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그의 정치적 ‘고향’은 보수 성향이 강한 돗토리(鳥取)현이다. 건설 관료 출신으로 돗토리현지사, 참의원을 지낸 부친 이시바 지로(石破二朗)의 기반을 물려받았다. 부친의 고향인 돗토리현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마친 그는 도쿄로 옮겨 게이오(慶應)고에 입학했고 이어 1979년 게이오대 법학부를 졸업했다.
이시바 신임 자민당 총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 중 하나는 일본열도 개조론을 주창한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栄) 전 총리다. “다나카 가쿠에이가 없다면 정치가로서 현재 이시바 시게루는 없었다”고 자평할 정도다. 다나카 전 총리와의 인연은 부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의 부친은 “다나카를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다”는 말까지 하며 자신보다 10살 아래인 다나카의 오랜 지기로 정치의 길을 함께 했다. 1981년 부친이 사망하자 다나카는 “장례식에 온 3500명의 돗토리 사람들에게 명함을 들고 인사를 돌아라. 이게 선거의 기본”이라며 정계 입문을 권한다. 이시바는 “정치를 하지 말라”는 부친의 유언을 어기고 당시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 정치의 길에 뛰어든다. 1986년 중의원에 당선돼 현재 12선 의원이다.
아베 전 총리와는 오랜 정적 관계다. 아베 정권 시절이던 2007년 자민당이 참의원(상원) 선거에서 패하자, 이시바는 ‘아베 퇴진’을 들고 나섰다. 아베 2기 정권(2012~2020년) 때에도 반(反)아베 성향은 이어졌다. 당시 그는 자민당 총재선거에 도전했지만 아베에 패했고, 2018년 총재선거에서도 아베와 1대 1로 붙었지만 쓴잔을 삼켰다. 그는 ‘자민당 내 야당’ 소리를 들을 정도로 아베와 곳곳에서 각을 세웠다. 아베를 둘러싼 후원회인 ‘벚꽃을 보는 모임’이 후원금 스캔들에 휩싸일 때 “철저한 조사”를 요구한 것도 그였다. 아베는 2014년 자신의 정적인 이시바에게 ‘안보법제담당상’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시바가 이를 거절하며 둘 사이는 완전히 멀어졌고, 이후 줄곧 당내 비주류의 길을 걸었다.
소장 의원 시절 일찌감치 방위청 부장관과 방위청 장관(현 방위상)을 지낸 이시바는 자민당 내에서 손을 꼽는 ‘방위통’이자 어릴 적부터 무기 모형 만들기를 좋아했던 ‘밀리터리 덕후’다. 의원회관 진열장에는 전투기 등 각종 무기의 플라모델이 전시되어 있다. 이번 선거에서 그는 미국의 핵무기를 일본에서 공동 운용하는 핵 공유 논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편, 중국을 겨냥한 아시아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창설을 주요 공약으로 제시했다.
밀리터리 덕후, 미국 핵공유·아시아판 나토 공약 내걸어
‘방위통’이 주는 이미지와는 달리 그는 나긋나긋한 말투에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란 평이다. 자민당 의원 사이에선 ‘공부하는 의원’으로 통한다. 비서가 편의점에서 사 온 도시락을 먹으며 사무실에 틀어박혀 정책 공부를 한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로 한국인에게도 알려진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를 좋아한다. 취미는 독서와 요리. 대학 시절 4년간 계속 먹었다고 할 정도로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카레를 꼽는다. 일본 술과 와인을 좋아하며, 철도광이기도 하다.
이시바는 특히 역사 문제와 관련해선 아베 전 총리와 시각을 달리해왔다. 이시바는 『보수정치가, 이시바 시게루』에서 “일·한 관계는 윤석열 대통령의 명확한 리더십으로 극적으로 개선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 호기를 일본도 활용해 윤 정권이 한국 내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입장이 되도록 가능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적었다.
이시바의 표현대로 ‘극적으로 개선된’ 한·일 관계 기조를 총리 취임 후 어떻게 이어나갈지 주목된다.
도쿄=김현예·오누키 도모코 특파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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