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러닝’, 스포츠에 문화와 감성을 더하다
‘호카 오네오네’, ‘온 러닝’, ‘살로몬’ 등도 인기
‘고프코어 룩’ 대신 ‘러닝코어 룩’이 대세
내 주변에는 평소 즐겨 달리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러닝이 곧 트렌드이기에 그렇다. 이제 달리기는 뛰며 숨을 내쉬는 것 외에도 많은 문화적 의미를 내포하기 시작했다.
요즘 가장 ‘핫’한 운동 트렌드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다. 그건 바로 ‘러닝’이다. 물론 러닝이 갑작스레 트렌드로 자리한 건 아니다. 운동으로서의 러닝은 아주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 과거의 달리기와 지금의 러닝은 많이 다르다. 어딘가를 뛰고, 달린다는 건 변함없지만 감성적, 정서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일단 러닝이 트렌드로 자리매김했던 건 2010년대 초, 중반이었다. 그때의 러닝은 굉장히 ‘힙’한 것이었다. 모델, DJ, 패션 에디터, 디자이너 등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졌던 ‘PRRC1936’과 같은 러닝 크루가 대표적이었다. 일종의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그 속에서 단체 행동으로 러닝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달리기를 했고, 또 문화적으로 외부와 소통도 했다.
러닝 크루와 트랙형 러닝
우리 팀의 막내는 20대 중반이다. 그는 스포츠 브랜드에서 운영하는 러닝 크루에 속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정기 모임이 있고, 현재 이 크루의 목표는 오는 10월에 개최되는 춘천마라톤의 10Km 코스다. 그걸 위해 1~2주에 한 번씩 훈련을 하고 있단다. 이 방식은 2010년대 초반부터 핫하고 힙하게 생겨나기 시작한 러닝 크루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어떤 크루는 나이키의 후원을, 또 어떤 크루는 아디다스로부터 후원을 받았다. 최근에는 이외에도 아식스, 뉴발란스, 살로몬 등의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들이 러닝 크루를 조직하거나, 외부 크루와 협업하고 있다.
그는 러닝 크루에 속한 지인에게 주 2회가량 특별 훈련을 받고 있다. 그는 집 근처 대학교에 좋은 트랙이 있어 거기서 러닝을 한다고 했다. 아직은 러닝 초급자라 한 번에 5Km 정도 달린다고. 이 거리를 주파하는 시간을 물어보니 약 30분 정도 걸린다고 했다. 러닝을 하니 어떤 것 같아?”라고 후기를 묻자 “솔직히 말해 죽을 거 같아요! 그런데 막상 다 뛰고 나면 엄청 개운해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러닝의 형태별 분류 중 마지막은 도시 러닝이다. 시쳇말로 복잡한 도시를 러닝이라는 방법으로 관통하는 형태다. 나는 이런 경우가 직접적 예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몇 개월 전 나는 팀원 한 명과 파리 패션위크 출장을 다녀왔다. 출발 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그가 내게 말했다. “전 여행지에서 러닝을 해보려고요.” 그렇게 하면 매번 가던 파리가 조금 더 새롭게 보일 것 같다는 게 이유였다.
누차 이야기하듯, 러닝이라는 형태의 운동 방식은 아주 오래 전부터 지속되어 온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달리기는 진짜 건강을 위한 운동이라고 정의하는 게 옳겠다. 지금의 달리기는 그 위에 문화적이고, 감성적인 의미가 덧씌워진다. 그래서 러닝은 고독하고 치열한 운동이면서도, 어우러지고 둘러보는 라이프스타일이 된다.
개인적으로 파리, 밀란 패션위크를 연 2회씩은 다녀오는 편이다. 지난해 6월의 출장길에서 무리 지어, 혹은 홀로 도시를 달리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작년 6월보다는 올 1월이 조금 더 많아졌고, 올해 6월의 파리 도심 속에서 달리는 사람들을 더 많이 볼 수 있었다. 러너의 연령대도 꽤 낮아졌다. 예전에 비해서 말이다.
이렇게 러닝이 완전한 문화 트렌드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은 러닝을 위한 물품 소비 증가를 통해서도 입증할 수 있다. 일단 러닝화 시장이 굉장히 커지고 다양해졌다. 그중 ‘호카 오네오네’, ‘온 러닝’, ‘살로몬’이 중심에 있다. 호카 오네오네는 미국 브랜드이고, 애초 트레일화가 주요 품목이었다. 하지만 패션 아이템으로서뿐만 아니라 일반 러닝화까지 영역을 넓혔고, 현재 가장 주목받는 러닝화 브랜드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스위스 기반의 러닝화 브래드인 온 러닝은 최근 로에베 같은 명품 브랜드, 또 포스트 아카이브 팩션 등과 같은 핫한 로컬 브랜드와 협업하며 주목받았다. 실제로 유럽의 많은 이들이 이 브랜드를 착화하고 있는 것을 자주 보았다. 살로몬 역시 전통적인 트레일 러닝화의 강자였다. 이들 역시 일반 러닝화까지 출시하며 소비자들로부터 다시금 트렌디한 브랜드로 인식되고 있다.
최근 미디어 뉴스 중 러닝과 관련된 흥미로운 기사를 접했다. ‘러닝 조끼에 빠진 미국 Z세대’라는 것이었다. 한 번이라도 러닝을 해 본 사람이라면 달릴 때 모바일 기기, 물병 등 소지품의 수납에 관해 불편을 느껴봤을 것이다. 단거리의 도시 러닝이나 트랙 러닝을 위해선 일종의 복대처럼 생긴 허리 가방이 보편적으로 사용되곤 한다. 하지만 수납의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서울을 비롯한 각 지방 도시에서는 전통적 마라톤 행사 이외에도 각종 달리기 이벤트들이 많이 개최되고 있다. 전문적 마라토너가 되기 위한 수련이기보다는 일종의 문화이자 놀이가 된 셈이다. 러닝은 어떤 도구를 이용하지 않고, 오롯이 인간의 몸을 도구화하는 원초적 행위다. 이를 통해 유사 취미를 가진 또 다른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가쁜 숨을 토해낸다. 이것이 새로운 세대가 러닝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글 이주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사진 픽사베이, 게티이미지뱅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48호(24.10.01)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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