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韓 반도체 혼란 부추긴 증권사들
모건스탠리는 15일 “겨울이 온다”는 보고서를 통해 SK하이닉스를 비롯한 국내 반도체 산업에 부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AI 반도체 성장률이 앞으로 둔화될 수 있다는 이유였다. 8일 뒤 대만 TSMC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분석을 했는데, 근거는 AI 반도체 성장은 당분간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AI 반도체 시장이 성장은 하지만 속도는 둔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반영된 것인데, 두 보고서 각각 한쪽만 부각시키는 아전인수식 해석으로 정반대의 결론을 낸 것이다.
모건스탠리 보고서로 한국 반도체 기업 주가는 휘청였다. SK하이닉스는 하루 만에 6% 급락했고, 삼성전자 주가도 일주일간 하락세가 이어지며 3% 이상 떨어졌다. 두 보고서를 쓴 애널리스트는 달라도, 한 증권사에서 나왔기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선 “한국 기업을 일부러 깎아내리려는 것”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반도체 기업 투자 비중이 높은 국내 개인 투자자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럴 때 중심을 잡아줄 만한 전문가는 국내 증권사 반도체 애널리스트다. 하지만 우리 애널리스트들은 제 역할을 못한 듯하다. 지난 3일 ‘단기 고비를 잘 넘기면’이란 제목의 삼성전자 분석 리포트를 낸 다올투자증권 A애널리스트가 19일 낸 리포트 제목은 ‘단기보다 중기’로 바뀌었다. 이전 보고서는 고비를 넘기면 내년부터 나아질 수 있다는 낙관적인 전망을 담았지만, 이번 보고서에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강조됐다.
다른 증권사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1일 ‘3분기 실적에 주목’이란 제목의 삼성전자 분석 리포트를 냈던 신영증권의 B 애널리스트는 20일 같은 기업을 분석하며 ‘악재는 반영됐지만 상승 모멘텀이 필요’란 제목으로 보고서를 냈다. 그러면서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3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를 9조4000억원에서 5조6000억원으로 크게 낮췄다. 지난달 ‘메모리 반도체 수익성 개선 본격화’란 제목의 보고서를 냈던 유안타증권의 C애널리스트는 23일 ‘레거시(범용) 반도체 단기 실적 부진 불가피’ 제목의 보고서를 냈다.
8월 초 “하반기엔 예상보다 긍정적인 메모리 가격 흐름과 함께 실적 상향 조정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던 NH투자증권의 D애널리스트는 20일에는 “예상보다 더딘 수요 회복으로 하반기에는 시장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실적 회복이 예상된다”고 입장을 바꿨다. 이에 대해 D애널리스트는 “지난달 초 예상한 전망보다 PC와 스마트폰이 안 팔렸기 때문에 전망을 바꾼 것”이라고 했다. 시장 변화나 새로운 변수가 등장하면 증권사 애널리스트도 얼마든지 입장을 바꿀 수 있다. 하지만 시장 전망이 엇갈리고 혼란스러울 때 풍향계 역할을 해줘야 할 애널리스트가 단기간에 입장을 바꾸는 듯한 모습을 반복한다면 스스로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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