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 비둘기파' 이시바 … 경제·안보협력 강화 나설 듯
결선 투표서 다카이치 꺾어
"파벌은 없다, 내달 1일 개각
조기총선…국민심판 받을것"
역사문제 우익과 다른 목소리
긍정적인 한일관계 지속 기대
이시바 당선에 엔화값 반등
◆ 日 이시바 시대 개막 ◆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은 2008년을 시작으로 다섯 번째 도전 만에 자민당 총재에 당선되며 일본 총리 자리에 오르게 됐다. 27일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는 이시바를 비롯해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보담당상,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 등 총 9명이 출마해 각축을 벌였다. 이시바는 1차 투표에서 154표를 얻어 181표를 받은 다카이치에게 27표 차로 뒤지며 2위를 차지했다가, 결선투표에서 215표를 얻어 194표를 획득한 다카이치를 극적으로 역전했다. 일본 정계에서는 의원들이 총재 선임 뒤 중의원 해산 후 총선을 치러야 할 때를 생각해 '극우' 이미지가 강한 다카이치보다 '중도' 성향인 이시바에게 안정감을 느꼈을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일본 국민 상당수는 '중도 보수' 성향이라 온건파 총리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또 구파벌 기준으로 아소파 등은 다카이치를 지지했지만, 기시다 후미오 현 총리가 이끌었던 구기시다파 등은 이시바 지지로 돌아선 것으로 보인다. 의원 수가 100명이 넘어 최대 계파였던 구아베파는 적극적으로 다카이치를 지지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이시바 총재 당선에 대해 금융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주가가 급락하고 엔화가 강세로 돌아서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1차 투표에서 금리 인상에 비판적이던 다카이치가 1위로 결선에 진출하자 달러당 엔화값은 한때 146.49엔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결선투표 결과가 나오자 엔화값은 극적으로 변했다. 이시바 총재 확정 소식에 엔화값은 142.80엔까지 치솟았다. 이시바가 일본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에 긍정적이라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우려가 커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 이날 오후 3시 닛케이225 평균 주가(닛케이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903.93(2.32%) 오른 3만9829.56에 거래를 마쳤지만, 장 마감 후 총재 당선 결과가 알려지면서 닛케이 선물은 5% 넘게 하락했다.
앞서 이시바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 나서면서 2012년과 2018년에는 아베 신조와 맞붙었다. 비록 선거에서 졌지만 2016년부터 각료나 당직을 받지 않고 아베 정권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꾸준히 내면서 '아베의 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총재 선거 직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중의원 해산 시기와 관련해 "야당과 상의한 뒤 가능한 한 빨리 국민의 심판을 받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일본은 총리가 중의원을 해산할 권한이 있으며 이를 통해 조기 총선을 실시하는 방식으로 종종 국정 운영의 전기를 마련해왔다. 현 중의원 임기는 내년 10월까지다. 총선 시기를 앞당기면 투표일은 다음달 27일, 11월 3일과 10일 등으로 예상된다. 그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디플레이션 탈피를 위해 "물가 상승을 웃도는 임금 상승을 실현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러시아기의 영공 침범과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언급하며 "일본국을 지킨다는 것을 제대로 확립하겠다"고 말했다. 당의 새 지도부와 개각 일정에 대한 질문에 그는 "임시국회가 열리는 10월 1일 이전에 준비를 마쳐 1일에 개각을 단행할 것"이라며 "파벌은 없어졌기 때문에 이에 대한 안배 인사는 없고 아직까지 인사는 백지상태"라고 답했다.
한편 한일 관계에서 특히 역사 문제에 대해 이시바는 '비둘기파'로 불릴 정도로 기존 우익 세력과는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결선까지 접전을 벌인 다카이치와 달리 그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적이 없으며 참배에도 반대하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개선해온 양국 관계를 최소한 양국 간 역사 문제 때문에 악화시키지는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전향적인 변화의 모습도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오쿠조노 히데키 시즈오카현립대 교수는 "이시바가 의원 신분으로는 한일 관계에 긍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총리 신분으로는 자민당의 기본 정책을 충실히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시바가 방위 전문가라는 점을 살려 한국과의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한일은 물론 한·미·일 3각 구도로 군사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시점에서 안보 협력을 도구로 양국 간 우호적 관계를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이시바는 '아시아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만들어야 한다는 구상을 밝힌 만큼 한국과의 안보 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며 "이시바가 논리성과 합리성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성향을 지녔기에 한국으로선 큰 부담이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도쿄 이승훈 특파원 / 박대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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