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치대 마다하고 과학자 길 택한 대학생들...“하고 싶은 공부 할 수 있게 지원 필요”
대한민국 이공계 인재들의 ‘의대 쏠림’ 현상은 날로 심해지고 있다. 서울대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 최상위권 대학에서도 의대에 진학하기 위해 휴학을 하고 재수, 반수 등에 뛰어든다. 이번 입시부터 의대 증원이 확정되면서 이 같은 경향은 더 거세졌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거꾸로 의대·치대를 마다하고 과학자가 되기 위해 KAIST 진학을 선택한 학생들이 있다. 26일 KAIST 대전 본원에서 만난 김성원(22) 학생과 장지연(21) 학생은 “원하는 공부를 하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며 “후회는 없다”고 했다.
김성원 학생은 2021년 연세대 치대에 진학했다가 2023년 KAIST에 다시 입학했다. 원래도 화학에 대한 흥미가 컸지만 고등학생 시절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굉장히 컸고 고민 끝에 치대로 진학했다. 김성원 학생은 “막상 진학을 하고 나니 좋아하던 공부가 아니고, 안정적인 미래만 보고 들어온 것이다 보니 학업에 흥미를 가지지 못했다”며 “학원 아르바이트를 통해 화학을 가르치는 것이 더 좋았고, 스스로 화학을 정말 많이 좋아한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수능 공부를 해서 KAIST에 입학하게 됐다”고 했다.
장지연 학생은 의대와 약대를 모두 합격했지만 KAIST를 선택했다. 원래도 꿈이 수학자였지만 막상 의대와 약대에 합격하고 나니 고민이 많아졌다고 한다. 부담감도 컸고, 주위에서도 의대를 가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장지연 학생은 “의대를 가도 KAIST를 가도 후회가 생기기는 하겠지만,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것이 후회가 적을 것 같다는 생각에 결심을 하게 됐다”고 했다.
이들 역시 이공계 대학생으로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KAIST의 부총학생회장을 맡고 있는 김성원 학생은 “1년에 100명 정도가 자퇴를 하고 있는데, 대부분이 의학 계열에 진학하기 위함인 것으로 보인다”며 “학업적인 적성을 떠나서 이공계 진로에 대한 불안감과 사회적 처우가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장지연 학생은 “1학년 때는 주변 친구 5명 중 1명 꼴로 의대 준비를 할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며 “아직 연구를 적극적으로 하는 단계는 아니지만,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때문에 선배들이 연구와 교류 등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얘기를 듣고 고민과 걱정이 들었다”고 했다.
이들은 이공계 인재 양성을 위해서는 꾸준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장지연 학생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이공계 진학을 돕는 장학회의 장학금을 받았는데, 비슷한 목표를 가진 친구들과도 만나고 교수님들과도 만나면서 수학을 공부하겠다는 꿈이 구체화됐다”며 “학생들이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갖지 않게 해줘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김성원 학생 역시 “대학원생 월급 깎였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꿈보다 현실의 벽을 마주하게 된다“며 “연구 현장의 최일선에 있는 대학원생들의 처우가 조금 더 개선돼야 한다” 고 했다.
의대 쏠림 개선을 위해선 초중등 교육이 변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장지연 학생은 “의대 진학을 많이 희망하는 이유는 본인이 진짜 하고 싶은 것이 없어서라고 본다”며 “한국 교육과정 12년을 소화하면서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장지연 학생의 경우 인도에서 중학교를 다녔는데, 수학 수업에서 다양한 풀이를 친구들과 공유하고 소통하는 과정에서 수학에 관한 꿈을 키웠다고 한다. 장지연 학생은 “한 사람이 정말 하고 싶은 것을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 찾을 수 있게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김성원 학생은 유기화학을 공부해 신약을 개발하는 것이 꿈이다. 장지연 학생은 위상 수학 등 딱딱한 수학 개념을 일반인들도 일상 속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소통하는 ‘수학 커뮤니케이터’가 되고 싶다고 한다. 장지연 학생은 “공부하고 싶은 학생들이 방해받지 않고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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