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태의 스물일곱의 나에게 ⑧] 바보 같은 삶에 대하여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현대 환상문학의 거장 이탈리아 작가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존재하지 않는 기사'를 읽고 나면 백치와 바보를 구별하게 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백치, 하나밖에 모르는 사람은 바보다.
"나는 완전 바보 그대는 반절 바보/ 오경에도 시를 지어 그댈 부르네/ 기다려도 오지 않아 꿈에까지 찾았건만/ 그대 와서 읊조릴 적 나는 알지 못했노라."
나는 바보, 너는 반바보라 말하지만 어리석거나 모자라 보이지 않는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바보의 삶은 힘들지만
좋고 편한것만 찾기보단
가야 한다면 주저말길
현대 환상문학의 거장 이탈리아 작가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존재하지 않는 기사'를 읽고 나면 백치와 바보를 구별하게 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백치, 하나밖에 모르는 사람은 바보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을 '무엇'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자유롭지만 되는 일은 없다. 하나밖에 모르는 사람은 하나밖에 모르기 때문에 자신을 그 하나를 향한 '무엇'으로 안다. 그 하나를 위해 전부를 건다.
사람들은 간혹 바보를 존경할지언정 바보의 삶은 필사적으로 피한다. 바보의 삶은 피곤하고 힘들 수밖에 없으므로. 그럼에도 타인의 행복에서 그 '무엇'을 찾은 분들, 김수환 추기경, 이태석 신부 같은 분들을 오래도록 기억한다.
범접하지 못할 영역 같지만 돌아보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영화 '범죄도시'의 마석도 형사의 경우도 그렇겠다. 시리즈2의 한 장면에서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는 질문에 "이유가 어딨어. 나쁜 놈들은 그냥 잡는 거지"라고 답한다. 핵심은 '그냥'이다. "나쁜 놈은 잡아야 한다"는 한 가지를 확실히 알고 있다.
나는 아직 내 삶의 '무엇'을 분명하게 깨닫지는 못했다. 어렴풋하게 아는 정도다. 살아오면서 이런저런 결정의 순간에 스마트하게, 이것저것 따져가며 계산하지도 못했다. 멀티태스킹, 무한반복 계산이 가능한 인공지능 시대에 살면서도.
다만 원칙 혹은 기준 같은 게 있다. 좋은 것, 편한 것보다 '해야 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생각한다는 것. 심지어 딸의 대학을 같이 고를 때도 그랬다.
그 덕분에 딸아이는 '재미가 와서 죽는 곳(where fun goes to die)'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다녀야 했다. 스물여섯 해 전 내 결혼도 그랬다. 최근을 포함해 이직할 때도 그랬다.
이런 결정은 상당 기간 부담이 된다. 피곤은 자주 나비처럼 다가오고 후회는 가끔 벌처럼 쏜다. 종종 위태롭다.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끌고 간다. 직장을 옮겼던 나의 모든 선택에 대해 아내와 딸은 흔쾌히 지지하면서도 커다란 걱정을 묻어뒀었다.
다시 살 수 있다면 다른 결정을 할 것인가? 아마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더 잘하려고 '더더더' 애쓸 것이다. 선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결정은 바보처럼 하고, 일은 반(半)바보처럼 할 것 같다.
"나는 완전 바보 그대는 반절 바보/ 오경에도 시를 지어 그댈 부르네/ 기다려도 오지 않아 꿈에까지 찾았건만/ 그대 와서 읊조릴 적 나는 알지 못했노라."
이병연의 시 차사반치옹(次謝半癡翁)이다. 첫 구절(我是全癡君半癡·아시전치군반치)이 유명한 그 작품이다. 이병연은 실학자 이덕무가 영조조 첫째가는 시인이라 평했던 인물.
그분들에게 효율성이나 가성비는 안중에 없다. 해야 할 일 혹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벗과 나눈다. 나는 바보, 너는 반바보라 말하지만 어리석거나 모자라 보이지 않는다. 그렇겠다. 바보가 과하면 반쯤 바보로 사는 것도 괜찮겠다. 바보 혹은 반바보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그 친구가 배우자라면 더 좋겠다.
마무리 전에 한 말씀 더. 바보로 살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자신이 아는 한 가지를 '그냥' 밀고 갈 수 있는 힘 말이다. 신앙이든 뚝심이든 슈퍼파워든.
일본의 히어로 만화 '원펀맨(One-Punch Man)'의 주인공 사이타마. 너무 강해서 어떤 적이든 한 방에 끝내는 그의 힘은 훈련에서 나왔다. 매일 팔굽혀펴기 100번, 윗몸일으키기 100번, 스쿼트 100번, 그리고 10㎞를 뛰었다. 3년간 어느 종목 단 한 개도, 하루도 빼먹지 않았다. 대신 머리카락을 모두 잃었다.
힘은 그렇게 얻는 것임을 나는 안다.
[김영태 티맥스에이엔씨 총괄사장]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정환아 대한민국이 날 버렸어”…홍명보 한탄에 안정환의 빵터진 한마디 - 매일경제
- “결혼 전 대시받은 적 있냐” 질문에…배우 한가인의 깜짝 놀랄 답변 - 매일경제
- 오늘의 운세 2024년 9월 27일 金(음력 8월 25일) - 매일경제
- “공장폐쇄로 2만명 이상 해고된다”...1인당 평균소득 2억 넘던 도시의 몰락 왜? [필동정담] - 매
- “아버지 간병비 450만원, 처자식은 어쩌나”…고민많던 가장이 결국 가입한 ‘이것’ - 매일경
- 대법원서 승소했는데…유승준, 한국행 또 거부 당했다 - 매일경제
- [속보] 日 차기 총리에 ‘한일 역사인식 비둘기파’ 이시바 시게루 - 매일경제
- 정치권 ‘나혼자산다’ 또 저격?…尹 “방송서 홀로 사는게 복인 것처럼 한다” - 매일경제
- 이영애, DJ 동교동 사저 재매입 위해 5000만원 기부 - 매일경제
- 오타니 50-50 완성한 홈런공, 경매 시장 나온다 - MK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