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레놀 성분 의약품 70종 넘는데…팬데믹 때 품절대란 부른 이유는?
환자들 성분명 구분 못해 특정 제품만 품귀
복용 약 성분 몰라 과다복용 위험도 커
WHO “국제일반명 도입해 환자가 성분명 알아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한창 유행하던 2021년 전국에서 타이레놀이 품귀 현상이 일어났다. 백신 주사를 맞고 몸살과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자 수요가 급증했다. 타이레놀은 국내에서 1985년부터 판매된 미국 존슨앤드존슨(J&J)의 자회사 얀센의 해열진통제 브랜드로, 아세트아미노펜 성분 의약품 가운데 가장 유명하다. 당시 타이레놀과 같은 성분의 의약품은 70종이나 있었지만, 성분명을 알 리 없는 일반인들은 타이레놀만 찾았다.
의약계와 소비자 단체는 이러한 불편을 줄이기 위해 국제적으로 통일된 국제일반명(INN)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박혜경 차의과대 임상약학대학원 교수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네릭(복제약)의약품의 INN 도입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팬데믹 당시 성분명과 제품명을 구분하지 못해 타이레놀 품절 대란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라며 “국민들이 복제약의 개념은 물론 성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보니, 아무리 보건당국이 홍보해도 국민 불안은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는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 경기도약사회 주관으로 열렸다.
실제로 타이레놀과 성분이 같으면서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승인을 받은 의약품은 많았다. 삼진제약의 게보린과 종근당 펜잘, 한미약품 써스펜, 경보제약 이알펜, 동화약품 트리스펜, 부광약품 타세놀 등이 타이레놀과 동일한 아세트아미노펜 성분 의약품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성분명을 알고 구별하기는 쉽지 않다. 이들이 받는 처방전이나 제품 포장에는 약품이 주로 상표 중심으로 표시됐기 때문이다. 환자들이 자신이 복용하는 약물 성분을 모르면 혼동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여러 질환이 있는 환자의 경우 여러 의료기관에서 처방받다 보면, 똑같은 성분의 약물을 중복으로 처방받아 과다복용 위험이 높다.
이에 세계보건기구(WHO)는 1953년 보건의료인과 환자가 의약품의 성분을 잘 구별할 수 있도록 국제적으로 통일해 쓰는 INN을 개발했다. 저마다 다른 제품명을 쓰는 대신 의약품을 개발한 회사(제약사) 이름에 성분명을 붙이는 방식이다. 타이레놀의 INN은 ‘얀센아세트아미노펜’이다.
WHO는 1993년부터 제네릭(복제약) 의약품들에 상표명이 아닌 INN을 쓸 것을 권고하고 있다. 새로 개발된 오리지널 약물의 특허가 끝나면 다른 제약사들이 이 약물의 성분과 같은 복제약을 개발할 수 있다. 현재 미국, 영국, 프랑스, 캐나다, 일본 등 주요 국가들은 WHO 지침대로 INN을 사용하고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상표명이 우세하다.
우선 제약사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적다. 규모가 큰 제약사는 홍보·마케팅 능력이 있어 성분명보다 상품명을 부각시키는 게 효과적이다. 대형 제약사는 INN을 도입하면 경쟁력이 약화된다고 우려한다. 박 교수는 “자발적으로 INN을 도입한 소수 제약사들을 보면 대부분 중소 또는 영세하다”며 “INN을 도입하면 규모가 작은 제약사들의 제품명 검토 심사기간이 줄고, 제품명에 대한 비용 또는 다른 회사들과의 과다 경쟁이나 분쟁도 감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약사들이 자발적으로 INN을 쓰도록 유도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연제덕 경기도약사회 부회장은 “수익을 내야 하는 제약사들에 무조건 INN을 쓰라고 하는 것은 무리”라며 “정부가 INN을 도입한 제약사들에 약가 인하를 유예해주거나 세금 감면 등 다양한 유인책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제네릭 제품들을 INN으로 통일시키려면 의약품의 유사도를 입증해야 하는데 이를 담당할 부서나 평가 기준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박 교수는 “식약처 안에 담당부서를 설정하고, 유사도를 포함한 평가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며 “우선 시범사업을 통해 단계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시범사업의 대상도 허가 예정인 신규 제네릭 또는 기허가 의약품 중 혼동 가능성이 큰 의약품을 우선 대상으로 좁혀 진행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소비자 단체 대표로 참석한 조윤미 사단법인 미래소비자행동 상임대표는 “INN은 환자에게 최소한 약의 성분을 알 권리를 주는 것”이라며 “이를 도입하면 의사들을 대상으로 한 제약사들의 리베이트(약품 채택 대가 제공)를 근절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INN 도입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이 좁혀지고 관련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고 밝혔다. 남후희 보건복지부 약무정책과장은 “환자 입장을 고려하면 INN이 약물에 대한 오해도 부작용도 없앨 수 있는 해결책”이라면서도 “바로 도입했을 때 혼선을 줄이려면 시스템과 여건을 만드는 게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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