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벌이 욕망과 죽음의 저류조 : 전주 리싸이클링타운 폭발사고의 전말

김성수 2024. 9. 2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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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일, 전주시의 음식물 쓰레기 처리 시설인 전주 종합리싸이클링타운에서 폭발이 발생해 노동자 5명이 중화상을 입었다. 이 가운데 한 명은 6월 18일 치료 도중 숨졌다. 지하 공간에 메탄가스가 누출된 상태에서 토치를 사용하다 폭발이 발생했다고만 알려져 있을 뿐, 정확한 사고 원인과 경위 및 책임 소재에 대해선 고용노동부의 조사가 진행 중이다. 

뉴스타파는 중화상을 입고 치료 중인 폭발 사고 피해자 2명을 만나 사고 당시의 상황을 촘촘하게 재구성했다. 나아가 뉴스타파는 그날의 폭발을 일으킨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원인은 무엇이었는지 추적했다.

▲ 전주 종합리싸이클링타운 전경

'민간기업이 장기간 독점 운영하는 공공시설' 전주 리싸이클링타운

전주 리싸이클링타운은 전주시에서 배출되는 음식물 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 생활하수 찌거기를 재처리하는 시설로 2016년 11월부터 가동 중이다. 공공시설이지만 운영은 민간기업이 맡는다. 민간기업이 투자해 시설을 짓고 소유권만 공공기관에 넘긴 뒤 장기간 독점 운영하는 BTO(Build-Transfer-Operate), 즉 민간투자사업 시설이다. 이에 따라 전주 리싸이클링타운의 소유권은 전주시에 있지만, 1,100억 원을 투자해 시설을 지은 태영건설과 에코비트워터, 한백종합건설, 성우건설 등 4개 민간기업이 2036년 말까지 20년 동안 운영권을 가진다.

▲ 전주 리싸이클링타운의 소유권은 전주시에 있지만, 회사 운영은 20년 동안 민간기업이 맡는다. 

전주 리싸이클링타운의 핵심 기능은 음식물 쓰레기의 재처리다. (아래 '재처리 공정도' 그림을 참조)

음식물 쓰레기가 반입되면 1차 탈수 과정을 거쳐 약 30%의 '탈수 케이크'와 약 70%의 '음폐수'(음식물 쓰레기 폐수)로 분리한다. 탈수 케이크는 건조시켜 딱딱하게 만들어 소각한다. 음폐수는 대형 혐기성 소화조(무산소 상태에서 미생물에 의한 생분해성 유기물의 분해가 진행되는 반응조)로 들어간다. 여기서 음폐수와 미생물이 반응하면 메탄가스가 발생한다. 이 메탄가스로 발전기를 돌려 시설 운영에 필요한 전기를 생산하고, 남는 가스는 태워 버린다. 소화조 속에서 미생물 반응을 마친 침전물, 즉 '슬러지'는 배관을 타고 이동해 지하층의 저류조에 모인다. 이 소화 슬러지는 추가 탈수 과정을 거쳐 하수 슬러지 처리장으로 보내진다.

▲ 전주 리싸이클링타운의 음식물 쓰레기 재처리 공정도

지난 5월 2일 폭발이 발생한 곳은 소화 슬러지가 모인 지하층 저류조의 바로 위 공간이었다. 리싸이클링타운 직원 5명은 이날 소화조에서 저류조로 이어지는 배관을 교체하던 중 사고를 당했다. 기전팀장 전 모 씨가 숨졌고 음식물팀장 오 모 씨와 차석 이 모 씨, 소각팀장 진 모 씨, 그리고 실험실 직원 김 모 씨 등 4명은 중화상을 입어 치료받고 있다.

그날 전주 리싸이클링타운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서울의 한 화상전문병원에 입원 중인 음식물팀 차석 40살 이 모 씨를 만났다. 그는 폭발 직후 의식을 잃었다가 한 달 반만에 깨어났다. 온몸의 80%에 중화상을 입었다. 지금도 팔다리를 제대로 쓰기 힘든 상태다. 이미 10차례가 넘는 피부 이식 수술을 받았지만 화상 부위가 워낙 넓어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수술이 필요할 지 가늠하기 어렵다. 이식이 끝난 뒤에도 피부가 정상적인 기능을 하도록 재건하고 외관상 흉한 흔적을 최소화하는 수술도 해야 한다. 사실상 평생 치료와 재활이 필요한 상태다.

▲ 전주 리싸이클링타운 폭발 사고 피해자 이 모 씨

이 씨는 지난해 11월 전주 리싸이클링타운에 사무직으로 입사했다. 그러나 회사는 일상적으로 온갖 잡무를 시켰다. 설비가 고장나면 담당 직원들과 함께 수리해야 했고 바닥 곳곳에 널린 음식물 쓰레기를 치웠다. 건물 외벽 청소에도 투입됐다. 이 씨는 회사에서 일하는 모습을 아내에게 자주 카카오톡 사진 메시지로 보냈는데, 아내가 "사무직 맞아?"라고 물어볼 정도였다.

▲ 전주 리싸이클링타운 폭발 사고 피해자인 이 씨와 그의 아내가 주고받은 카톡 메시지

사고 당일에도 이 씨는 오후부터 소화 슬러지 배관 교체 작업에 투입됐다. 지상의 소화조에서 지하층 저류조로 이어지는 소화 슬러지 배관은 약 2년에 한 번 꼴로 교체 주기를 맞는다. 배관을 오래 사용하다 보면 내부에 찌꺼기가 쌓이며 점점 좁아져 슬러지 이송(처리)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 소화 슬러지 배관 내부에 낀 협착물

배관 교체 작업은 5월 2일과 3일, 이틀에 걸쳐 계획됐다. 음식물팀장 오 모 씨가 2일 오전부터 일용직 외국인 노동자 4명을 지휘하며 기존 배관 해체 작업을 진행했다. 이 씨를 포함한 내부 직원 4명이 중간에 잇달아 합류했다.

오후 4시 반쯤 외국인 노동자 4명이 퇴근했다. 하지만 직원들은 본래 다음날 하려던 배관 교체 및 설치 작업을 이어갔다. 이 씨는 "5명 중 팀장급 3명은 그날 안으로 배관 교체를 완료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 전주 리싸이클링타운 폭발 사고 피해자 김 모 씨

온몸의 50%에 중화상을 입고 대전의 한 화상전문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인 26살 김 모 씨. 전주 리싸이클링타운은 김 씨의 첫 직장이었다. 재작년 3월 실험실 직원으로 입사했지만, 역시 일상적으로 온갖 잡무에 동원됐다. 작업장 바닥 청소는 물론 회사 마당의 잡초를 제거하거나 나뭇가지를 쳐내는 일까지 했다. 김 씨는 사고 당일 오전에도 가지치기 작업을 하던 중 배관 교체 작업에 투입됐다.

이들이 교체하고 있던 배관은 PVC(폴리염화비닐) 재질의 청호스였다. 지상에 있는 3개 소화조 하단부터 지하층 저류조까지 전체 길이가 200미터 가까이 됐다. 약 15미터 단위의 청호스를 계속 이어 붙였는데, 청호스 끝부분에 철제 연결장치를 끼워 넣은 뒤 체결시키는 방식이었다. 이 연결장치를 쉽게 끼워 넣으려면 청호스 끝부분을 토치로 가열해 흐물흐물하게 만들어야 했다. 실내에서 토치나 용접기 같은 화기를 사용하는 작업은 반드시 안전관리자의 입회 하에 진행되어야 했지만, 안전관리자는 이미 오후 4시쯤 현장을 떠난 상태였다.

▲ 전주 리싸이클링타운 소화 슬러지 배관으로 사용된 청호스
▲ 청호스 끝부분에 끼우는 배관 연결 장치

오후 6시 38분쯤 직원 5명은 지하층 저류조 뚜껑 주변에 모였다. 3줄기의 청호스 배관 중 2줄기의 마지막 부분만 저류조 뚜껑에 연결하면 모든 작업이 끝날 예정이었다. 기전팀장 전 씨는 저류조 뚜껑 위에, 음식물팀장 오 씨는 뚜껑 바로 옆에 앉아 각각 청호스 배관 끝부분을 붙잡았다. 그때까지 해온 것처럼 토치를 켜고 가열하기 시작했다. 다른 직원들은 그 옆에 대기하고 있었다. 얼마 뒤, 오 씨가 가열하던 청호스 끝부분에 갑자기 불이 붙는가 싶더니 불길이 수직으로 길게 치솟아 올랐다. 당황할 틈도 없이 '펑' 소리와 함께 폭발이 발생했다. 오후 6시 43분이었다.

▲ 폭발이 발생한 지하층 저류조 뚜껑 부근
▲ 폭발 사고 발생 5분 전 토치로 청호스 끝부분을 가열하고 있는 음식물팀장 오 모 씨

직원 5명은 작업복에 불이 붙은 상태로 계단을 뛰어 올라 건물 밖으로 빠져나왔다. 기전팀장 전 씨와 음식물팀 차석 이 씨는 그대로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실험실 직원 김 씨는 불이 붙은 작업복을 간신히 벗어던진 뒤 바닥에 주저앉았다. 야근 중이던 다른 직원들이 폭발음을 듣고 뛰어 나왔다. 119에 신고한 뒤 생리식염수를 가져와 부상자들에게 뿌려줬다.

▲ 폭발 사고 직후 현장, 119 대원들이 출동해 부상자들에 대한 구급 조치를 하고 있다. 

"회사 지시 없이 작업...토치 쓰는 줄 몰라" 회사의 변명과 궤변

사고 발생 다음날인 5월 3일, 태영건설과 에코비트워터, 한백종합건설, 성우건설 등 전주 리싸이클링타운 공동 운영사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주관 운영사인 성우건설의 김학수 부사장은, 당시 야간 작업이 회사의 지시 없이 진행된 것이라며 "그날 배관 교체를 완료하면 다음날부터 시설 운영을 할 수 있다는 본인들의 판단 하에 애사심이나 사명감으로 작업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사고 피해자 이 씨는 "정말 어이가 없고 화가 난다"며 "직원이 회사에 보고 없이 작업을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피해자 김 씨는 "회사가 직원들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려는 것 같다"면서 한숨을 쉬었다. 

▲ 사고 다음날 열린 전주 리싸이클링타운 공동 운영사 기자회견 (24년 5월 3일)

회사는 당시 안전관리자 없이 지하층에서 토치가 사용된 데 대해서도 방어 논리를 폈다. 전주 리싸이클링타운 현장 책임자인 한달수 소장은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당시 배관 교체 작업 매뉴얼에는 청호스 끝부분에 연결장치를 끼워넣을 때 토치가 아니라 윤활유를 사용하게 되어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만약 토치를 꼭 사용해야 한다는 걸 미리 알았다면 야외에서만 쓰도록 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 해명은 명백한 거짓으로 확인된다. 취재 결과, 사고 발생 8일 전인 4월 24일 지상부의 청호스 배관 일부가 찢어져 야간까지 긴급 보수 작업이 진행됐다. 사고 피해자 이 씨는 이날도 야간 작업에 투입돼 많은 사진을 찍었다. 사진들 가운데는 청호스 끝부분을 토치로 가열하는 모습이 있었다. 이 사진을 근거로 ‘청호스 배관 교체 작업에 토치가 사용된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던 게 아니냐’고 물었지만, 한 소장은 "(사고 이전) 4월 24일 밤에 청호스 배관이 찢어져 바로 조치했다는 보고를 받았던 것은 사실"이라고만 답했다. 

▲ 폭발 사고 발생 8일 전 청호스 배관 일부가 찢어진 모습
▲ 폭발 사고 발생 8일 전 청호스 배관 일부 교체 작업 중 토치 사용 모습

사고 발생 이후 민주노총 전북본부와 전주 지역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공동대책위원회가 출범했다. 대책위는 지난 7월 9일 리싸이클링타운 소유주인 우범기 전주시장, 그리고 협약서상 '대표 운영사'로 기재돼 있는 태영건설의 최금락 대표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고용노동부 전주지청에 고발했다.

지하층에는 왜 메탄가스가 있었을까

사고 발생 다음날인 5월 3일, 경찰과 고용노동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이 현장 조사를 벌였다. 국과수 감식 결과, 지하층 저류조에서 상당량의 메탄가스가 검출됐다. 폭발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농도였다. 사고 피해자들의 진술까지 종합해 보면, 지하층 저류조 속의 고농도 메탄가스가 뚜껑 틈새로 새어 올라왔고, 그 뚜껑 위에서 토치를 켜자 폭발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 피해자 진술과 국과수 감식 결과를 토대로 추정한 폭발 발생 경위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전주 리싸이클링타운의 설계와 음식물 쓰레기 처리 공정 상 메탄가스는 음폐수와 미생물이 반응하는 혐기성 소화조 안에서만 발생한 뒤 포집된다. 소화가 끝난 슬러지에서도 미량의 메탄가스는 발생할 수 있지만, 정상적이라면 폭발에 이를 정도의 농도는 아니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 공동대책위 측은 전주 리싸이클링타운이 일상적으로 전주시 이외 지역의 음폐수를 과도하게 반입해 처리해 왔던 게 근본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소화조 속에 너무 많은 음폐수를 밀어 넣은 탓에 미생물 반응이 덜 끝난 슬러지가 저류조로 내려가 계속해서 많은 메탄가스를 발생시켰다는 것이다. 이태성 민주노총 전북평등지부 전주 리싸이클링타운분회장은 "전주시 이외 지역의 음폐수 운송 차량이 많게는 하루에 10대(약 250톤) 이상씩 들어오곤 했었다"면서 "소화조 내에서 음폐수와 미생물이 충분한 반응을 하는 데 30일 정도가 필요한데, 일상적으로 음폐수를 과도하게 밀어넣다 보니 소화가 덜 완료된 슬러지들이 저류조로 내려가 계속 누적됐을 것이고, 그것이 폭발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 공동대책위는 음폐수를 과도하게 투입한 것이 지하층에 메탄가스가 누출된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이 타당성을 가지려면 사고 발생 이전 30일 정도 기간에 적정 처리 용량을 크게 넘어서는 음폐수가 투입됐어야 한다. 그러나 취재 결과, 4월 한 달간 전주 리싸이클링타운에 반입된 외부 음폐수 양은 적정 처리 용량인 '일 평균 121톤'을 준수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과도한 음폐수 반입을 폭발 원인으로 지목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 사고 발생 전 1개월 간 음폐수 반입 현황 자료 (출처는 전주시청)

그렇다면 저류조에서 뚜껑 틈새로 누출될 만큼 많은 메탄가스가 발생했던 원인은 뭘까. 전주 리싸이클링타운의 설계 도면을 살펴본 전문가들은 지하층 저류조에 가스 배출 설비가 없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론적으로 저류조에 모인 소화 슬러지에선 언제든 혐기성 소화가 재개될 여지가 있다. 이때 미량의 메탄가스 발생은 불가피하다. 그런데 소화 슬러지가 하수 슬러지 처리장으로 보내지지 않고, 저류조에 오랜 시간 체류하면 메탄가스가 축적될 수밖에 없다.

배재근 서울과학기술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저류조에 모인 소화 슬러지의 체류 시간이 길어지면 상층에 얇은 유막이 생기면서 공기층과 분리돼 혐기성 소화 반응이 일어나 메탄가스를 발생시키게 된다"며 "소화조에서 발생하는 메탄가스는 즉각 뽑아내 가스 저장소로 옮겨지는 반면, 저류조 내의 메탄가스는 비록 미량이라고 해도 외부로 배출시키는 설비가 없다면 계속 축적될 수밖에 없어서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저류조에 가스 배출 설비가 있었다면 폭발을 야기할 정도의 메탄가스가 지하층에 퍼지는 일은 예방할 수 있었다는 의미다.

전주 리싸이클링타운은 저류조 뿐 아니라 시설 전반의 급기와 배기, 환기 설비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 사업장으로 꼽힌다. 매일 수백 톤의 음식물 쓰레기가 반입되고 각종 폐기물을 대량 소각하는 탓에 현장 노동자들은 평소 엄청난 악취와 유해가스 속에서 일할 수밖에 없었다. 이태성 분회장은 "특히 여름철에 작업장에 들어서면 숨을 쉬는 것 자체가 어려울 정도로 악취가 심했다"면서 "대부분 노동자들이 눈이 따가워 제대로 뜨지 못하거나 만성적인 두통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이에 노동자들은 급·배기 및 환기 설비를 확충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회사는 설비를 늘리기는커녕 고장난 설비들을 제때 수리해 주지도 않았다. 심지어는 밖으로 악취가 나간다면 골치 아픈 민원이 들어 온다는 이유로 "셔터를 내리고 일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했다.

▲ 흡입구가 막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배기 시설

만약 전주 리싸이클링타운이 충분한 급·배기와 환기 설비를 갖춘 사업장이었다면, 설령 지하층 저류조에서 메탄가스가 새어 올라왔다고 해도 금세 흩어져 버려 폭발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지하층에서 왜 토치를 써야만 했을까

전주 리싸이클링타운 폭발 사고를 부른 근본 원인으로 또 하나 주목해야 하는 건 소화조와 저류조를 잇는 청호스 배관이다. 피해 직원들이 불가피하게 토치를 사용할 수밖에 없던 배경에는 바로 청호스가 있다. 

▲ 지상의 3개 소화조에서 지하층 저류조까지 이어지는 청호스 배관

2016년 9월 전주 리싸이클링타운이 준공될 당시, 시설 내의 모든 배관은 스테인리스 재질이었다. 2017년 12월 환경부가 발간한 기술지침서에 따르더라도 음식물 쓰레기 재처리 시설의 이송 배관은 '내식성과 내구성을 가진' 스테인리스 배관을 사용하도록 규정돼 있다.

▲ 스테인리스 배관을 쓰도록 규정한 환경부의 기술지침서 (2017년 12월)

그러나 전주 리싸이클링타운은 2020년 2월 소화조와 저류조를 잇는 스테인리스 배관 내에 협착물이 끼어 효율이 떨어지자 모조리 청호스 배관으로 교체해 버렸다. 스테인리스 배관을 분해해 내부를 청소하는 방법 혹은 새로운 스테인리스 배관으로 교체하는 방법 등이 있었음에도 끝내 청호스 배관을 고집했다. 청호스 배관은 설치 비용이 스테인리스에 비해 훨씬 저렴한 것은 물론, 시공 시간이 짧다는 특징이 있다. 하루면 가능한 청호스 시공에 반해 스테인리스 시공엔 여러 날이 소요된다. 이때 소화조 가동은 중단되고, 회사가 얻는 이윤은 그만큼 줄어든다. 결국 기존 스테인리스가 아닌 청호스 배관을 선택한 이유는 비용의 문제였던 셈이다.

▲ 2020년 2월, 협착물이 낀 스테인리스 배관을 해체하는 모습

스테인리스 배관이 청호스로 바뀌고 2년여 뒤인 2022년 5월, 지상부의 청호스 배관 일부가 찢어지며 소화 슬러지가 대거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전주 리싸이클링타운은 다시 청호스 배관 전체를 해체하고 새 청호스로 교체했다. 이때도 배관을 연결시키기 위해 토치로 청호스 끝부분을 가열했다.

그리고 다시 2년 뒤인 올해 4월 24일 밤, 지상부 청호스 배관 일부가 또 찢어져 긴급 보수 작업이 진행됐다. 이번에도 전주 리싸이클링타운은 청호스 배관 전체를 새것으로 교체하기로 하고 5월 2일 오전부터 저녁까지 작업을 벌였다. 그 결과, 폭발 사고가 났다. 만약 환경부 기술 지침대로 스테인리스 배관을 계속 유지했더라면 배관 교체를 위해 토치를 사용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설령 지하층에 메탄가스가 누출된 상태였다고 해도 폭발 사고가 일어나진 않았을지 모른다.    

악취, 음폐수 과다 반입, 보복성 해고에 폭발까지...문제 투성이 공공시설

전주 리싸이클링타운은 이번 폭발 사고 이전에도 여러 문제로 논란을 일으킨 시설이다. 특히 악취와 유해가스 저감 설비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아 인근 주민들과 내부 직원들은 수년 동안 만성적인 고충을 겪어야 했다.

지난해 7월엔 '타 지역의 음폐수가 과도하게 반입되고 있다'는 내부 고발까지 나왔다. 당시 노조는 회사가 수익에 도움되는 외부 음폐수 반입에만 골몰해 정작 전주시에서 발생하는 음식물 쓰레기 처리를 뒷전으로 미루고 있다고 폭로했다.

▲ 경기도 지역의 음폐수가 전주 리싸이클링타운에 반입되는 모습

논란이 커지자 전주시는 즉각 전주 리싸이클링타운의 외부 음폐수 반입을 잠정 중단시키고 감사를 벌였다. 감사 결과, 2019년 1월부터 8월까지 전주시의 승인 없이 외부 음폐수가 무단 반입된 사실이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2019년 이후에도 승인된 양을 크게 초과해 외부 음폐수를 계속 반입해 온 사실이 추가로 확인됐다. 지난 5년간 전주 리싸이클링타운이 반입한 외부 음폐수는 모두 20만 톤, 이에 따른 매출은 110억 원에 달했다.

▲ 전주 리싸이클링타운의 외부 음폐수 반입에 대한 전주시의 감사 결과

전주시는 지난해 8월부터 한국환경공단 등 음식물 쓰레기 재처리 시설 전문가가 포함된 심의위원회를 구성하고, 전주 리싸이클링타운이 처리할 수 있는 외부 음폐수의 적정량을 재산정했다. 그 결과 하루 평균 121톤이 적정하며, 아무리 많아도 150톤을 넘겨서는 안 된다는 기준을 정했다. 이 기준에 따라 올해 1월부터 외부 음폐수 반입이 재개됐다.

그러나 이 기준의 타당성에 대한 의문이 뒤따른다. 외부 음폐수를 일정 정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는, 소화조 속 미생물의 먹이가 너무 부족하면 시설이 안정적으로 가동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전주 리싸이클링타운의 운영 실적을 보면, 혐기성 소화조에서 생산된 대략 9,100루베(N㎥)의 메탄가스 가운데 5,000루베 정도만 발전기 가동에 사용되고 3분의 1 이상인 3,100루베는 잉여가스로 태워졌다. 정의당 한승우 전주시의원은 "생산된 메탄가스의 상당량을 공기 중에 태워버리고 있다는 것은 소화조 속에 음폐수를 지금처럼 많이 투입할 이유가 없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현재 전주 리싸이클링타운은 노조원에 대한 보복성 해고 논란에도 휩싸여 있다. 외부 음폐수 과다 반입 논란 직후인 지난해 12월 전주 리싸이클링타운은 갑자기 주관 운영사를 기존의 에코비트워터에서 성우건설로 변경하겠다고 전주시에 신고했다. 성우건설은 폐기물 처리 사업 경험이 전무한 전주 지역의 소형 건설사다. 이에 대해 정의당 한승우 전주시의원은 "전주 리싸이클링타운 설립 당시 전주시와 맺은 협약에 따르면 4개의 민간투자 기업 중 폐기물 처리 전문인 에코비트워터가 주관 운영사가 되는 건 아무 문제가 없지만 성우건설 같은 업체는 주관 운용사가 될 수 없게 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격 논란에도 불구하고 전주시는 주관 운영사 변경을 승인했다.

▲ 성우건설의 고용승계 거부로 해고된 노조원 11명이 전주시의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렇게 올해 초부터 전주 리싸이클링타운의 주관 운영사가 된 성우건설은 기존 직원 90여 명 가운데 노조원 11명에 대해서만 고용 승계를 거부했다. 사실상 노조가 음폐수 과다 반입 문제를 내부 고발한 데 따른 보복성 해고로 볼 여지가 충분했다. 그러자 해고 조합원 11명은 올해 1월부터 전주시청 앞에서 농성을 벌였다. 전주 리싸이클링타운의 소유주인 전주시가 문제 해결에 나서라는 요구였다. 그러던 중 지난 9월 12일 민주당 전북도당의 중재로 전주시와 성우건설은 11명의 해고 노동자들을 재고용한다는 협약서에 서명했다. 그러나 구체적 일정 등이 빠진 원칙적 합의 수준이어서 실제로 이행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2년 전 평택에코센터 폭발과 판박이...'재래식 사고'는 왜 반복되나

전주 리싸이클링타운에서 발생한 여러 문제와 논란들은 궁극적으로 공공시설의 운영을 민간기업에 떠넘긴 데 따른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노동자의 안전보다는 비용 절감과 수익 극대화가 더 우선인 민간기업에게 환경보호, 자원 재순환과 같은 공적 역할을 기대하긴 어렵다. 그럼에도 인화성 가스가 퍼진 공간에서 화기를 사용하다 폭발로 사람이 죽는 이른바 '후진국형 재래식 사고'가 발생한 건 참담한 일이다. 그날의 폭발을 미리 막을 방법은 정말 없던 걸까.

지난 2022년 6월 12일, 경기도 평택시의 음식물 쓰레기 재처리 시설인 평택에코센터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지하 3층의 소화 슬러지 저류조 바로 위에서 배관 교체 작업을 하던 20대 노동자가 용접기를 사용하던 중 폭발이 발생했다. 이 노동자는 폭발 발생 9시간 만에 저류조 속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전주 리싸이클링타운 폭발사고와 판박이처럼 닮은 중대재해다. 만약 2년 전 평택에코센터 폭발 사고의 정확한 원인과 경위, 책임 소재가 동종업계에라도 충분히 전파됐다면 이번 폭발 사고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방법은 없었다.

▲ 2022년 6월 폭발 사고가 발생한 평택에코센터 지하층 소화 슬러지 저류조 부근 

어떤 사업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고용노동부가 즉각 조사에 나선다. 이때 산업안전 전문가들로 구성된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협조를 받는다. 공단은 자체적인 조사를 벌여 '재해조사의견서'를 작성해 노동부에 제출한다. 노동부는 이 의견서를 참고해 조사를 완료하고, 경영진의 중대재해법 위반 사항이 확인되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다. 그러니까 산업안전보건공단의 재해조사의견서는 중대재해의 정확한 발생 원인과 경위, 책임 소재를 정리한 최초의 공식 자료인 셈이다.

▲ 중대재해 발생시 조사 절차. 산업안전보건공단이 작성한 재해조사의견서를 기초로 조사가 진행된다. 

문제는 이 자료가 공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공개될 경우 검찰 수사에 영향을 줄 수 있고 기업의 영업비밀이 유출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심지어 국회도 특정 중대재해의 책임자가 검찰에 기소되기 전까지는 노동부와 산업안전보건공단으로부터 관련 재해조사의견서를 제출 받을 수 없다. 2년 전 평택에코센터 폭발 사고에 대한 재해조사의견서 역시 이런 이유로 아직까지 공개되지 않았다. 판박이처럼 닮은 산업재해가 반복되는 중요한 원인이다.

노동부는 재해조사의견서를 공개할 수 없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이러한 비공개 경향은 재작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더욱 강화되었다고 한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소속 박다혜 변호사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기업의 방어 논리가 강력해지면서 노동부가 법적 분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 몸을 사리고 더욱 조심하려는 측면이 있어 보인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해조사의견서는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 중대재해의 예방이라는 본래 취지에서 볼 때 마땅히 공개되어야 하는 자료라는 정부 차원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이용우 의원도 "재해조사의견서 내에 내밀한 영업 정보가 담겨 있다면 그 부분은 가린 채 공개하면 될 일"이라면서 "기본적으로 재해조사의견서부터 공개되어 문제점에 대한 공론화를 통해 제도 개선 방안이 도출될 때 중대재해가 계속 반복되는 걸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타파 김성수 sskim@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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