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에 무력했던 이스라엘 스파이들, 헤즈볼라 상대론 압도
"2006년 한차례 전쟁 후 헤즈볼라 상대로 칼 갈아 온 결과"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수뇌부가 표적 공습에 속수무책으로 사망하면서 이스라엘의 해외정보 수집 및 공작 역량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작년 10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공격 징후를 놓쳐 1천200명 가까운 자국민과 외국인이 살해되고 253명이 납치되는 최악의 정보실패를 기록한 것과 극명히 대조되어서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스라엘 해외정보기관 모사드와 군정보부대들이 헤즈볼라 지휘부에 막대한 손실을 입히고 무장 수준을 약화시켰다"고 27일(현지시간) 평가했다.
지난 17∼18일 레바논 전역에서 무선호출기(삐삐)와 무전기 수천개가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해 대량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이 시작이었다.
익명의 헤즈볼라 당국자는 이 공격으로 시력을 잃거나 신체 일부를 잃어 전투불능 판정을 받은 무장대원이 1천500명이 넘는다고 로이터 통신에 전했다.
이어 19일부터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남부를 중심으로 헤즈볼라 군사시설을 겨냥한 대대적 공습에 착수했다.
20일에는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 표적 공습을 가해 헤즈볼라 특수작전 부대 라드완의 지휘관 이브라힘 아킬 등 핵심 지휘관 10여명을 제거했고, 23일에도 베이루트를 재차 폭격해 헤즈볼라의 미사일·로켓 부대 사령관 이브라힘 무함마드 쿠바이시를 살해했다.
이후 현재까지 이스라엘군이 타격한 레바논 내 헤즈볼라 관련 목표물은 2천개소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고, 수뇌부가 거의 통째로 교체되는 수준의 타격을 받은 헤즈볼라는 제대로 반격에 나서지 못한 채 피해 수습에 급급한 듯한 모양새다.
지난 7월 헤즈볼라의 수장 하산 나스랄라의 오른팔이자 1983년 베이루트 미 해병대 막사 폭탄 테러 사건의 배후인 푸아드 슈크르가 표적 공습에 적합한 장소로 유인돼 피살되는 과정에서도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마스를 상대로는 이스라엘 기습 공격을 사전에 막아낼 기회를 번번이 놓쳤던 것과는 달리 헤즈볼라에 대해서는 은밀한 내부 사정까지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WSJ은 "이러한 차이는 이스라엘이 지난 20년간 어떻게 시간과 자원을 투자해왔는지를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은 2006년 이미 한 차례 레바논 남부에 지상군을 투입, 이스라엘군 병사 2명을 납치한 헤즈볼라와 전면전을 치렀으나 헤즈볼라의 게릴라 전술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압도적 전력을 지닌 이스라엘을 막아내는 데 성공한 헤즈볼라는 이후 군사·정치적 역량을 크게 확대했다. 이스라엘은 그런 헤즈볼라의 동향을 면밀히 지켜보며 칼을 갈아왔다고 한다.
이스라엘 싱크탱크 국가안보연구소(INSS) 소속 전문가 카르미트 발렌시는 "우리의 초점은 헤즈볼라와의 대결을 준비하는 데 맞춰져 있었다"면서 "남부 지역과 가자지구의 하마스와 관련한 상황 변화에는 다소 소홀했다"고 말했다.
하마스가 이스라엘과의 전쟁보다는 팔레스타인 내부 권력 투쟁에 몰두할 것이라며 방치하는 태도를 보여온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정책도 문제로 지적된다.
가뜩이나 2005년 이스라엘 정착촌을 철수시키고 가자지구를 분리장벽으로 둘러싼 이후 이스라엘 정보당국은 하마스와 관련한 정보를 얻는 데 어려움을 겪어왔다고 한다.
전직 이스라엘 정보 당국자 우지 샤야는 "모두가 서로를 알고 이방인은 곧장 티가 나는 조밀하고 좁은 지역인 가자에서 휴민트(HUMINT·인간정보)를 구축하는 능력은 삶을 매우 힘들게 만든다"면서 레바논 안팎에서 헤즈볼라 관련 정보망을 구축하는 게 훨씬 쉬운 작업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수비보다는 공격에 능한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특징도 이러한 차이를 만들어냈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때 이스라엘 국가안보위원회 선임국장으로 재직했던 아브네르 골로프는 "이스라엘 안보 교리의 핵심은 적에게 전쟁을 가져다준다는 것"이라면서 "가자지구는 이와는 전혀 달랐다. 우리는 기습을 당했고 실패했다"고 말했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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