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숙적’ 이시바 日 자민당 총재 당선… “전향적 역사인식” 한일 관계 영향은 [특파원+]

강구열 2024. 9. 27.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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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이 27일 열린 일본 집권여당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했다. 그는 1차 투표에서 154표로 181표를 얻은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보상에 뒤졌으나 결선투표에서 215표를 얻어 당선됐다. 다카이치 경제안보상은 결선투표에서 194표를 획득했다. 정치 입문 이후 오랜 세월 자민당 내 비주류에 머물렀던 이시바 신임 총재는 마지막으로 여겼던 5번째 도전 만에 역전승을 거두어 다음달 1일 일본 총리로 취임한다. 한국과의 과거사 문제 등에 전향적인 태도로 보여 온 이시바 총재의 새로운 정권이 한·일관계에 어떤 영향을 줄 지 주목된다. 일본 방위력 증강에 적극적인 태도가 한국은 물론 중국과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집권여당 자민당 신임 총재가 27일 총재 선거 승리가 확정되자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아베 숙적’…비주류 정치인생

이시바 총재는 지난 40년간 지역구 돗토리현에서 내리 12선에 오른 베테랑 정치인이다. 1957년 도쿄에서 태어난 그는 돗토리현 지사가 된 아버지 이시바 지로를 따라 돗토리현으로 이사해 유년 시절을 보냈다. 게이오기주쿠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뒤 미쓰이 은행(현재 미쓰이스미토모 은행)에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1981년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1983년 퇴직하고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1986년 7월 총선에서 자민당 공천으로 출마해 29세로 최연소 당선하면서 시작은 화려했다. 하지만 1993년 여당 의원으로서 내각 불신임 결의안을 지지했다가 탈당한 뒤 1997년 재입당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 일은 자민당 주류에서 배척당하고 비주류의 정치인생을 걷는 계기가 됐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EPA연합뉴스
2002년 방위청 장관으로 처음 입각해 이후 방위상, 농림수산상 등을 역임했고 자민당에서는 간사장, 정조회장 등 요직을 지냈다. 소신이 뚜렷해 쓴소리를 마다 않는 성향은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숙적으로까지 불리는 정치적 위상의 토대가 됐지만 비주류에 머무는 족쇄가 됐다. 2012년 총재 선거에서 1차 투표에서 1위를 하고도 결선투표에서 아베 전 총리에 역전패하며 비주류의 설움을 뼈저리게 겪기도 했다.   

이번 선거 역시 비주류라는 위치엔 변함이 없었으나 지난해 말 불거진 파벌 비자금 스캔들로 수렁에 빠진 자민당 의원들이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그의 개혁성에 주목한 것이 승리 요인으로 분석된다. 경쟁자였던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의 경험부족, 다카이치 경제안보상의 지나친 보수성을 우려한 선택으로도 해석된다. 

◆과거사 전향적 입장, 한·일 관계 영향은  

“과거 수차례 역대 총리가 사죄의 뜻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수용되지 않은 것에 대한 좌절감도 크다. 그럼에도 (한국이) 납득할 때까지 계속 사죄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도쿄 지요다구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이시바 총재가 2017년 한국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역사문제, 주변국과의 관계에 대해선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일본의 태평양전쟁을 ‘침략전쟁’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적이 있다. “위안부 문제는 여성의 존엄을 침해했다는 점에서 사죄해야 마땅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2차대전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2019년 한국 정부가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를 결정하자 “일본이 전쟁 책임을 스스로의 손으로 밝힌 독일과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일본 정부를 비판하기도 했다. 이런 발언은 이시바 총재를 친한파로 분류하는 근거가 된다. 

이번 총재 선거 과정에서 한·일관계가 주요 이슈로 다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과거 발언만으로 이시바 총재의 한국 정책을 전망하는 데 한계가 있지만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만든 관계 개선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한 전문가는 “기시다 총리가 한일관계 개선으로 한·미·일 협력을 이끌어내는 등 국내외에서 외교적 리더십을 발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공고화되고 정치적으로 유용한 자산을 차기 총리가 굳이 포기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고 전망했다. 회복된 한·일관계를 토대로 한 한·미·일 협력 프레임을 존중할 것이란 예상도 강하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집권여당 자민당 신임 총재. AP연합뉴스
그러나 자민당의 정책적 입장이 있기 때문에 이시바 정권이 들어서도 역사 문제에서 일본 정부가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움직임을 보이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있다.  

◆헌법개정·방위력 증대, 동북아 3국 갈등 변수될까 

일본 정계에서 손꼽히는 국방 전문가인 이시바 총재는 평화헌법 개정과 ‘집단적 자위권’(인접 국가의 분쟁에 개입하여 실력을 행사하는 권리) 확보에 적극적이다. 자위대 해외 파병과 재무장 등도 주장하며 안보 강화, 방위력 증대를 후보들 중 가장 적극적으로 주장했다. 헌법 개정과 관련해서는 전력 보유를 금지한 9조 2항을 삭제하고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미국과 핵 공유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는 한 토론회에 참가해 “핵 공유는 일본이 핵 보유나 관리권을 갖는 것이 아니라 의사결정 과정을 공유하자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핵 공유는 미국의 핵무기를 자국 영토 내에 배치해 공동 운용하자는 의미로 ‘핵무기를 제조하지도, 보유하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일본의 비핵 3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있다. 아베 전 총리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 일부가 채택 중인 핵 공유를 일본에서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시바 총재는 ‘아시아판 나토’ 창설도 제안했다. 중국을 염두에 두고 아시아에 나토와 같은 집단방위체제를 만들자는 것이다. 

도쿄=강구열 특파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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