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태 기자의 책에 대한 책] 박경리, 그는 '슬픔의 면류관'을 벗은 적이 없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박경리 소설은 광휘로 가득하지만, 그의 삶은 빛보다 어둠에 가까웠다.
그는 책에 쓴다.
만약 박경리 작가의 인생이 환희의 연속이었다면 독자는 그의 문학에 탄복했을 리 없다.
소설책을 수천 부 인쇄하더라도 예술로서의 소설은 그 자체로 하나뿐이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박경리 소설은 광휘로 가득하지만, 그의 삶은 빛보다 어둠에 가까웠다. 고통의 빈도와 총량이 컸기 때문이었다.
왜 그런가. 남편은 형무소에 수감됐다가 행방불명됐고, 곧이어 어린 아들이 사망하는 참척의 슬픔이 겹쳤다. 화재로 집을 잃었고, 사위(김지하 시인)의 투옥은 멸문에 가까운 고난이자 시련이었다. 당시 돌도 안 지난 손주를 업고 옥바라지에 전념했으니, 그는 인생의 전성기에도 슬픔의 면류관을 벗은 적이 없다.
생의 말년까지도 고통은 인간 박경리를 흔들었다. 말년엔 폐암 선고를 받았고, 몇 개월 뒤 뇌졸중이 오면서 그는 끝날까지 고통을 받았다. 따라서 온화해 보이는 박경리의 옛 사진에선 평온한 어머니상이 아닌, 한 인간의 말라버린 피눈물과 깊은 주름살부터 읽어내야 옳을 것이다.
'문학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에게'는 박경리의 연세대 원주캠퍼스 강연집이다. 강원도 사택에서 멀지 않았던 대학에서 그는 젊은 학생들을 자주 만났다고 한다. 이 책은 박경리 문학세계뿐 아니라 문학의 심부(深部)를 들여다보는 하나의 거대한 관문이다.
박경리 작가에게, 문학의 쓸모란 세상을 '바로' 보는 일이었다.
세상은 더럽고 치사하며, 협잡으로 가득한 난장판이다. 그러나 문학은 세상의 정면을 작가의 눈을 거쳐 독자에게 보여준다. "바로 보게 되면 그것은 지혜로움이며, 인생을 꽉 차게 살 수가 있다. 사람은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존엄하게 존재하기 위해 세상에 나왔다."
세상을 직시하고, 생의 의미를 짚는 문학은 어떤 문학일까.
박경리의 오랜 명문장이 여기서 나온다. 그는 책에 쓴다. "작가는 슬픔을 사랑해야 한다." 그에 따르면, 작가는 슬픔을 거부해선 안 되며, 그 슬픔을 온전히 껴안는 것이 작가의 업이다.
만약 박경리 작가의 인생이 환희의 연속이었다면 독자는 그의 문학에 탄복했을 리 없다. 작가는 모름지기 실패하고 절망하고 몰락한 자의 비애를 담아낼 때 오히려 독자의 너른 관심을 받지 않았던가.
책에는 문학이 상품인가, 아닌가에 대한 작가의 질문도 담겼다.
박경리 작가에게 문학은 '상품'이 될 수 없었다. 상품은 복제 가능하지만 문학은 복제될 수 없는 고유한 무엇이란 이유에서다. 소설책을 수천 부 인쇄하더라도 예술로서의 소설은 그 자체로 하나뿐이다. 남이 간 길, 남이 만들어놓은 틀을 뒤쫓지 말라고도 그는 말했다.
본래 그는 시인을 꿈꿨다. '소설과 진실'은 그의 본업이지만, 그는 시를 놓지 않았다. 원주 토지문화관엔 박경리의 시 한 편이 걸려 있다. 고개를 숙이게 되는 시다.
'목에 힘주다 보면/ 문틀에 머리 부딪혀 혹이 생긴다/ 우리는 아픈 생각만 하지/ 혹 생긴 연유를 모르고/ 인생을 깨닫지 못한다// 낮추어도 낮추어도/ 우리는 죄가 많다/ 뽐내어본들 도로무익(徒勞無益)/ 시간이 너무 아깝구나.'(박경리 시 '우리들의 시간' 전문)
[김유태 기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정환아 대한민국이 날 버렸어”…홍명보 한탄에 안정환의 빵터진 한마디 - 매일경제
- “내 인기 예전만 못한 탓”...장윤정, 콘서트 빈자리에 전한 심경 - 매일경제
- “오타니 50 홈런볼 내 손 비틀어 뺏었다”…소송 제기한 10대, 영상 보니 - 매일경제
- 대법원서 승소했는데…유승준, 한국행 또 거부 당했다 - 매일경제
- “갈라서자” 이혼 요구한 남편 잠들자 얼굴에 빙초산과 끓는 물 뿌린 아내 - 매일경제
- “결혼 전 대시받은 적 있냐” 질문에…배우 한가인의 깜짝 놀랄 답변 - 매일경제
- 정치권 ‘나혼자산다’ 또 저격?…尹 “방송서 홀로 사는게 복인 것처럼 한다” - 매일경제
- “20년간 정산 못받아, 나같은 후배 없기를” 이승기, 세상 바꿨다 - 매일경제
- “당첨되면 시세차익 8억”…이수 푸르지오 무순위청약에 14만명 몰려 - 매일경제
- 오타니 50-50 완성한 홈런공, 경매 시장 나온다 - MK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