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승효상이 영남서 찾은 '영성의 공간' 9곳

정주원 기자(jnwn@mk.co.kr) 2024. 9. 27.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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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승효상 자신이 지었거나 가본 우리나라 영남권에 있는 사유의 공간 총 9곳을 기록한 건축 에세이다.

'빈자의 미학' '묵상' '지문'(Landscript) 등 이전 저서에서 자기 건축 철학을 글로도 풀어냈던 그는 이제 '영성'의 공간을 탐색한다.

승효상은 사유원 안에 거주 목적의 집이나 방문객을 위한 식당 등을 지으면서도 수목을 전면에 내세우고 자기 건축물은 되도록 눈에 띄지 않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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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목원·건축물 내부의 창 등
150장 넘는 흑백사진 담아
궁극의 본질에 대한 성찰 다뤄
솔스케이프 승효상 지음, 한밤의 빛 펴냄, 2만3500원

건축가 승효상 자신이 지었거나 가본 우리나라 영남권에 있는 사유의 공간 총 9곳을 기록한 건축 에세이다. '빈자의 미학' '묵상' '지문'(Landscript) 등 이전 저서에서 자기 건축 철학을 글로도 풀어냈던 그는 이제 '영성'의 공간을 탐색한다. 종교적 색채가 풍기는 듯도 하지만, 저자는 자본주의·물신주의와 대비되는 비물질성, 자기 존재 궁극의 본질과 윤리, 사유와 성찰을 회복하기 위한 건축으로 '영성'을 다룬다.

책의 절반은 경북 군위에 있는 수목원 '사유원'에 할애했다. 이곳은 태창철강 설립자인 유재성 회장 소유지로, 12만평에 달하는 거대한 자연 속에 조경과 건축이 어우러진 곳이다. 저자는 유 회장의 집 별채를 설계한 것을 계기로 수목원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고, '생각하는 동산'이란 뜻의 이름인 '사유원'도 지어줬다. 승효상은 사유원 안에 거주 목적의 집이나 방문객을 위한 식당 등을 지으면서도 수목을 전면에 내세우고 자기 건축물은 되도록 눈에 띄지 않길 바랐다. 그는 건축이 사라지고 자기 존재가 대자연 속에 완전히 녹아든 순간, 스스로 자연의 한 조각이라고 깨닫는 때를 철학자 하이데거의 말을 빌려 '지극히 고독한 순간이며 철학을 할 시간'이라고 표현한다. 직접 짓지는 않았지만 사유를 일깨우는 공간에 대한 통찰도 담았다.

조선시대 중종 때 성리학 거두 이언적이 낙향해 지었다는 '독락당'은 경북 안강에 있다. 저자는 이 집의 사랑채, 안채, 사당 등 제각각 공간이 모두 독립적으로 지어져 있는 점에 주목한다. 하나의 중심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모두가 주인공인 다원적 공간이라는 얘기다. 그는 "우리가 지금 민주주의 시대에 산다면 우리가 사는 건축과 도시 모두 이런 다중심 공간의 구조로 이루어지는 게 옳지 않을까"라고 질문한다.

이 밖에 책에는 승효상이 지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사저인 경남 양산의 만취헌, 고 정기용 선생이 지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남 김해 봉하마을 사저에 관한 이야기도 담았다. 작은 교회, 수도원, 사찰 등 영성이 담긴 건축물도 소개했다.

글과 함께 150장 넘는 사진·그림이 쓰였는데, 모두 흑백이다. 수목원의 나무들, 멀리서 바라본 산과 집의 풍경, 건축물 내부에서 찍은 창문과 벽 등에서 색채를 덜어내니 빛과 그림자가 도드라진다. 이들 공간에 가면 어지러운 감정과 유혹을 비워내고 정신적인 힘을 채울 수 있을 것이란 메시지는 이런 방식으로도 전달된다.

저자는 직접 쓰고 그린 '여행 지도'도 책에 실었다. 이 장소들을 한 줄로 이으면 400㎞에 달한다는데, 저자가 동선을 고려한 3박4일 일정도 제시하고 있으니 여행의 가이드로 삼기에도 적합하다. 또 저자는 "어쩌면 한 장소를 찾아 오래 머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스스로 말미암는 게 자유"라고 제안한다.

[정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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