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나면 안 되는 안동찜닭·간고등어…“인자부터 대목이라예”

김규현 기자 2024. 9. 27.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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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소문나면 곤란한데
경북 안동시 하회마을 솔밭식당
매일 장본 제철 식재료 반찬 일품
솔밭식당 ‘4인 세트’ 구성. 김규현 기자
관광객을 상대하는 북적이는 ‘TV 맛집’은 사절합니다. 지역의 특색있는 숨은 맛집, 누가 가장 잘 알까요? 한겨레 전국부 기자들이 미식가로 이름난 지역 터줏대감들에게 물었습니다. “어디 가서, 뭘 먹어야 합니까?” 대답을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한두 군데 마지못해 추천하면서 꼭 한마디를 덧붙이네요. “여기, 소문나면 곤란한데.”

“촌에 반찬이 맵고 짜고 그렇지. 뭐가 맛있다꼬 이까지 왔니껴?”

지난 25일 오후 찾은 경북 안동시 하회마을 ‘솔밭식당’. 사장 금용봉(70)씨가 어색한 미소를 띠며 기자를 맞았다. 하회마을로 들어가는 어귀에서 하회장터 쪽으로 들어가면 식당가가 나온다. 솔밭식당은 하회장터 가운데 있는 정자를 돌면 바로 뒤편에 있다. 초가집과 기와집이 이어진 독특한 형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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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청 대변인실이 자신 있게 추천한 ‘소문나면 안 되는’ 맛집이라고 해서 찾아 왔는데, 사장님의 미적지근한 반응에 잠시 당황했다. 이내 대구에서 찾아온 기자에게 쑥스러운 마음에 건넨 말이란 것을 알아차렸다. “도청 직원들이 많이 오기는 오지예. 맛이 있을랑가 함 잡사 보이소.” 미리 주문해둔 ‘4인 세트’가 한 상 가득 차려졌다.

경북 안동시 하회마을 앞 하회장터. 이곳으로 가면 식당가가 나온다. 김규현 기자

‘소문나면 안 되는’ 맛집을 소개할 차례가 돌아와 도청 대변인실에 “공무원들이 자주 가는” “방송 등에 알려지지 않은” “스토리도 있고 맛도 있는” 맛집을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대변인실 한 직원은 한 치의 고민 없이 솔밭식당을 추천했다. 검색을 해보니 다행히 방송이나 광고로 알려진 곳은 아니었다. 다만 메뉴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뉴가 너무 평범한 것 아닌가요?”라고 되물었지만, ㄱ주무관은 자신있게 답했다. “안동의 맛을 모두 맛볼 수 있는 식당으로 이만한 곳이 없어요. 우리가 자주 가는 집인데, 밥도 먹고 하회마을도 한 바퀴 걷고 오시죠.”

솔밭식당 메뉴는 말 그대로 ‘안동의 맛 풀세트’였다. 2∼4인 세트를 주문하면 안동찜닭, 고등어구이, 식혜까지 한 번에 맛볼 수 있다. 일정이 짧아 바쁜 여행자에게 딱이다. 기자가 주문한 4인 세트에는 도토리묵무침과 오징어부추전이 함께 나왔다. 오이무침, 두부 조림, 고추조림 등 11가지 밑반찬까지 놓이니 4인 식탁이 비좁아졌다. 하회마을 식당가에는 비슷한 구성을 파는 곳이 많지만, 솔밭식당이 특별한 이유는 재료와 밑반찬에 있다.

솔밭식당 ‘4인 세트’ 구성. 김규현 기자

금씨의 며느리 류미영(38)씨는 “시장에서 매일 장을 봐와서 제철 재료로 반찬을 직접 만들어 내놓는다. 메인 메뉴는 같아도 반찬은 철마다 달라진다. 조금 비싸도 국산 재료만 쓰니 더 맛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관광객도 아닌 공무원들이 이곳을 자주 찾는 이유가 단번에 설명됐다.

부추전을 애피타이저 삼아 먹고 있으면 찜닭과 고등어구이가 올라온다. 소금으로 간을 해 구워진 고등어 살을 한 점 떼 입에 넣었다. 바싹 구운 고등어의 껍질은 바삭했고, 속은 촉촉하고 담백했다. 생선도 당일 잡아온 것만 쓴다고 한다.

솔밭식당 사장 금용봉(70)씨(오른쪽)와 며느리 류미영(38)씨. 김규현 기자

야채가 듬뿍 들어간 달달한 안동찜닭을 이어서 먹었다. 살짝 매콤하기까지 해 질릴 틈 없이 먹을 수 있는 맛이다. 모든 음식이 나무랄 데 없이 맛있었다. 무엇보다 도토리묵무침은 기자의 ‘인생 도토리묵무침’이 됐다. 양념장을 듬뿍 묻힌 배추, 오이, 양배추가 아삭한 식감을 그대로 유지한 채 달고 상큼한 맛을 냈다. 간간이 씹히는 청양고추 덕분에 기분이 좋았다. 운전을 해야 해 동동주 한 모금 할 수 없는 현실이 슬펐다.

솔밭식당은 애초 하회마을 안 금씨의 집 근처 솔밭 앞에 있었다. 1990년대 초 하회마을이 입소문을 타고 관광객들이 찾자, 이들에게 뭐라도 대접하고 싶었던 주민들이 소소하게 내 집 앞 마당에 식당을 열기 시작했다. 당시 메뉴는 파전과 동동주가 전부였다. 그러다 2010년 8월 하회마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마을을 온전히 보존하기 위해 안동시가 마을 앞 쪽에 식당 공간을 따로 마련해줬다. 류씨는 “1997년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 2세가 오시고, 이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관광객들이 많이 오기 시작했다. 한 번에 안동의 먹거리를 먹을 수 있도록 세트 구성을 만들었다. 주말에는 여행객, 평일에는 공무원들이 주로 온다”고 말했다.

경북 안동시 하회마을 솔밭식당. 김규현 기자

결혼 뒤 식당 일을 조금씩 돕던 류씨는 자연스럽게 하던 일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식당 일에 뛰어 들었다고 한다. “원래 다른 일을 하고 있었어요. 어머님을 도와드리다 보니까 재밌더라구요. 외국인도 많이 오고 정말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어요. 제가 여행을 가지 않아도 손님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여행하는 기분이 들어요.”

오는 27일 안동 지역의 가장 큰 축제인 ‘2024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개막을 앞두고 식당은 분주하다. 가을을 맞아 일반 여행객들도 많이 찾은 시기이기 때문에 더 바쁘다. “우리는 인자부터 대목이라예. 손님들 우리 집에 마이 찾아 주이소∼∼.” 어색함이 풀린 듯 사장 금씨가 말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어스름히 해가 지고 있었다. 초가지붕 위로 노을이 걸터 앉았다. 하회마을 산책은 다음을 기약하며 발길을 돌렸다.

김규현 기자 gyuhy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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