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G, 전세사기 엇갈린 판결…유사 소송에 혼란 전망
재판부, HUG 보증 계약 성질 달리 봐
세입자들 "임대인과 HUG에 두 번 속아"
[부산=뉴시스]권태완 기자 = "국가에서 하는 전세 보증보험을 믿지 못하면, 이제 누가 전세에 들어가 살겠습니까."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 보증을 믿고 있었던 A씨가 한 말이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부산지법 동부지원 민사2부(부장판사 서근찬)는 지난 11일 열린 '부산 190억원대 전세사기' 피해자 A씨 등 5명이 HUG를 상대로 제기한 보증채무금 소송에서 HUG의 손을 들어줬다.
반면 지난 5월 부산지법 동부지원 민사6단독 최지경 판사는 세입자 1명이 HUG 상대로 제기한 임대차 보증금 반환 소송에서 세입자에게 보증금 1억45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두 판결이 엇갈린 이유는 HUG의 임대차 보증금 보증에 대한 계약 성질을 달리 봤기 때문이다.
민사2부는 HUG의 보증 계약을 '보증보험계약'이라 보기 어렵고, 민법상 '제3자를 위한 계약'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이 사건 보증계약은 보증서가 발급된 후에도 보증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보증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고, HUG가 B씨와의 보증계약 취소는 적법하다"면서 "제3자를 위한 계약인 이 사건 보증계약이 소급해 무효가 된 이상 HUG가 수익자인 원고(세입자)에게 임대보증금을 지급할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원고(세입자)들이 주장과 같이 사기 또는 허위의 조건으로 체결된 보증계약의 경우에도 HUG가 임대보증금 지급 책임을 부담한다면 임대보증금 보증 요건 자체가 무의미해지게 된다"면서 "아울러 HUG가 보증계약을 체결한 민간임대주택에 대해 무조건 임대보증금 지급 책임을 부담하게 되는 결과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시했다.
반면 민사6단독은 HUG의 보증 계약을 '보증보험' 계약으로 봤다. 이 경우 HUG가 B씨에게 속아 보증계약을 체결한 것이라도 세입자가 HUG의 보증을 신뢰해 새로운 이해관계를 가졌기에 보호받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최 판사는 "보증보험 계약의 경우 보험자가 이미 보증보험증권을 교부해 피보험자가 그 보증보험증건을 수령한 뒤 이에 터잡아 새로운 계약을 체결하거나 혹은 이미 체결한 계약에 따른 의무를 이행하는 등 새로운 이해관계를 가지게 됐다면 그와 같은 피보험자의 신뢰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두 재판부의 엇갈린 판결은 이어지는 세입자와 HUG 간의 유사한 민사소송에 큰 혼란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세입자들에 따르면 이와 같은 비슷한 재판들이 모두 17건이 진행 중이며, 이번 민사2부 판결의 결과를 지켜보기 위해 여러 단독부 민사 재판들의 선고가 연기됐다.
A씨 등은 무자본 갭투자로 이른바 '깡통주택' 100여 가구를 취득해 임차인 150여명으로부터 전세보증금 193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재판을 받는 B(40대)씨의 집에서 거주했었다.
B씨는 담보채무와 보증금 합계가 건물 가치보다 많아져 HUG 보증보험 가입이 어려워지자, 보증금 액수를 낮추는 등 위조한 전세 계약서 36장을 HUG에 제출해 보증보험에 가입했다.
이 과정에서 HUG는 B씨로부터 확정일자조차 확인받지 않았던 것으로 감사원의 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이후 뒤늦게 허위 서류임을 인지한 HUG는 B씨의 명의로 된 건물의 보증보험을 무더기로 취소했다. 이때 A씨 등 세입자들이 HUG로부터 받은 연락은 보증보험이 취소된다는 1건의 알림톡뿐이었다.
보증 보험을 믿었던 세입자들은 HUG의 일방적인 보험 취소로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 이 때문에 세입자 87명은 울며 겨자 먹기로 정부 기관인 HUG 상대로 민사소송(총 17건)을 줄지어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가 HUG 측의 손을 들어주자 세입자들은 "HUG도 임대인으로부터 속았다고 한다. 그러면 임대인과 HUG의 보증보험에 두 번 속은 세입자들은 누가 보호하냐"고 입을 모아 호소했다.
패소한 세입자들은 항소 여부에 대해 변호사와 논의한 뒤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kwon9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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